12시 30분, 서울서 온 같은 답사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발권 수속을 했다. 남측 출입국 사무로 이동하기 전  핸드폰은 물론 밧데리도 다 맡기고 신문(특히 조선일보는 절대 안된단다)이나 답사기 같은 책들은 맡기란다. 그리고 가는 길에 절대로 사진은 촬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서 우리 간담을 서늘케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현대 아산 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 2박3일 또는 1박 2일 일정으로 이번에 북한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1,300명 가량 된단다. 굉장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준비가 완료 되어야만 차례차례 함께 움직일 수가 있다. 금강산까지 가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한차 한차 체크하는데 시간이 굉장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진이 빠진다.

 

  북한측 출입국 사무소로 가는 길은 10여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남쪽과 확연히 다르다. 도로 주변에 보이는 산은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 바위산들이다. 거기다가 그 바위산 허리를 줄지어 행군하는 여군들을 보니 여기가 북한땅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북측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참 신기하다. 두 계절을 동시에 보는 것 같다.오른쪽은 따뜻한 햇살이 비춰 봄날 같고, 왼쪽은 하얀 눈이 쌓인 겨울.오른쪽은 지명도 양지마을이란다. 왼쪽의 눈쌓인 금강산 자락의 능선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감호도 청명하고 아름답다. 빛바랜 갈대숲 사이로 물새들이 한가로이 헤엄쳐 다니고 있다. 낙타봉을 지나고 북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간다. 낡은 회색 기와지붕을 한 똑같은 모양, 크기의 주택 몇 채가 드문드문 있다. 문화주택. 한 집에 두 가구가 산단다.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산과 들 군데군데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차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그런데 군인들의 얼굴표정은 묵묵하다.

  

  우리가 2박 3일을 묵을 외금강 호텔에 닿았다.



  ‘동포애적 심정으로 환영한다.’는 빨간 글귀가 보인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금강산 관광을 오는 바람에 일정이 거의 다 바뀌었다. 오늘 원래 교예단 공연을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낼 오후로 옮기고 만물산 코스는 못 같단다.그래서 금강산 온천을 갔다.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느라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6시까지 모이기로 한 곳에 가려면 샤워 정도 밖에 못하겠다. 그런데다 함께 온 일행들은 해금강 호텔에 묵고 나만 외금강 호텔로 떨어져서 함께 밥 먹을 사람도 이야기 할 사람도 없다.아무리 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풍경을 보는 것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즐거움이라지만 이번에 좀 난감하다. 한 방을 쓸 언니는 함께 온 일행이 있다.

 

    대충 온천을 하고 우리 팀이 모이기로 한 백세주 마을로 갔다. 6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정시에 도착하니 낯익은 사람들이 없다. 내 앞에 온 두 사람도 두리번 거리고 있길래 물어보니 같은 답사 동호회 회원이다.  4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먹어야 된다고 하니 잘됐다. 함께 앉았다. 그런데 30분부터 식사를 시작해야 한단다.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앉아서 통성명을 했다. 어디서 왔으며 나이는 몇 살인지. 두 분은 서울서 왔고 같은 성당을 다닌단다. 한 언니는 나보다 두살,또 한 언니는 나보다 12살이 많다.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6,7년씩은 젊어보인다. 참 맑고 담백하다. 나와 이야기를 해 보더니 자신들이 아는 줄리아 수녀님과 성격도 말투도 참 많이 닮았단다. (여행 끝나고 돌아와 그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날 숙소로 돌아가서 그랬단다. 하느님이 줄리아 수녀님 대신 나를 보내주셨다고)나도 이분들과 함께 있으니 오랜 지기를 만난듯 마음이 편하고 좋다. 이런게 인연인가 참 희한하다. 이 날 이후 쭈욱 3일동안 이 분들과 넘넘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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