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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11월 내맘대로 좋은책


 
"역시. 에쿠니 가오리야."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소담출판사
 
최민식, 송강호. 이 사람이 나오면 꼭 봐야지 하는 영화가 있다. 와, 에쿠니 가오리네. 빌려줘. 읽게 하는 작가도 있다. 여러 권을 봤지만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는. 늘 비슷비슷한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공감가는.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마저도...)
 
아. 어쩜 이렇게 섬세하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늘 여자쪽 이야기를 하다 이번에는 남자들 (대학생) 이야기. 나이 어린 친구들이라 주인공에 동화되지는 않았지만 (게다가 상대방은 40대 유부녀라니! 내 취향이 아니잖아) 편안하게 두 커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멋져. 멋지다. 남자들의 그 마음을 이렇게 예민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사랑으로 가득 차 반짝반짝 빛나는 날들과 쓸쓸함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그 기분 사이를 이렇게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앞으로도 오래 오래 살면서 책을 계속 내주세요. 에쿠니 가오리.
 
경영.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편집자 추천, 열번이라도 준다!"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최희영 옮김 / 교양인
 
가끔 어느 시대, 어떤 현상을 보는 눈을 활짝 뜨이게 하는 책을 만난다.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 등이 그랬다. 그리고 여기에 가져온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이 그렇다. 뒤늦은 발견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책에 대해 샘솟는 애정을 살짝 드러내보면 얘기는 이렇다.
 
이 책은 파시즘에 대해 다룬다. (이게 무슨 당연한 얘기-_-) 그런데 히틀러나 무솔리니에 집중해 파시즘을 살피는 여는 책들과는 접근부터 다르다. 파시즘 정권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어떻게 작동했는지 이해하려면 시대의 흐름부터 파시즘이 자리잡는 구체적인 상황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까지 파고들어 진행과정 전체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말이다. (지당하셔라~)
 
책의 가장 큰 장점도 이같은 전개방식에서 생겨난다.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의 움직임을 크게 짚어가면서 보수 엘리트층이 무엇에 대한 두려움으로 파시즘 세력에 협조했는지, 사회주의 세력은 얼마나 안이했는지, 대중은 파시즘을 어떻게 묵인하거나 승인했는지 짚어가다 보면 20세기가 19세기와 어떻게 달랐는지 또 21세기가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큰 그림이 그려진다. (경험에 근거하면 이 '큰 그림'은 돈을 주고도 쉽게 못 산다.)
 
그 다음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한 호흡에 읽을만하게 풀어내는 일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19세기, 20세기 유럽의 역사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괜찮고, 역사나 사회과학에서 밀하는 용어들을 전혀 몰라도 괜찮다. 덧붙여 종종 끼어들어 읽는 흐름을 끊어놓는 각주까지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 (심지어 책이 새털처럼 가벼운데다가 장정까지 멋지다!)
 
파시즘은 그 자체의 전술이나 정치 미학에 못지 않게 동조 세력의 공모, 대중의 묵인을 바탕으로 해 자라났다. "초기에 일상적인 선택들은 외관상 정도가 덜한 악행을 용인한다거나 어떤 과잉 행위로부터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는 것 정도를 의미했다. 그러나 비록 처음에는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아 보여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것들이 결국에는 점점 더 강도가 커져서 끔찍한 파국을 낳고 말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새삼스럽게 내가 사는 시대에 눈길이 간다. 역사책의 힘이란,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가을이 어디 갔나..."
 
가을이 어디 갔나... 벌써 겨울 같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 저는 제 방의 CD들을 물갈이해줍니다. 지난 계절에 듣던 앨범은 큰 CD장으로 옮기고, 신보들과 자주 듣는 그 계절의 앨범들을 가져다놓지요.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매 시기를 보냅니다. 이번 달에는 9~10월에 나온 앨범들 중 올 겨울에도 열심히 듣겠노라 생각한 앨범들을 짤막짤막하게 모아보았습니다. 
 

 
1. Yann Tiersen - Les Retrouvailles : 소개글에 보면 '멀티인스트루멘틀리스트' 라는 둥 '에릭 사티의 재림' 이라는 둥 요란하게 써놓았습니다만; 그건 그거구요, 그간 수입으로만 유통되던 얀 티에르상의 앨범이 드디어 국내에 발매되었습니다! 2002년 작도 좋지만, 2005년 작인 이 앨범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듣고 있으면 동유럽 어느 외진 골목에서 거리의 악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런 느낌이에요.
 
2. Kazumasa Oda (오다 카즈마사) - Jiko Best : 솔직히 앨범을 들어보기 전에는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앨범을 다 듣고나서, 전 조용히 HMV Japan 사이트에 접속했고, 최근 앨범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중견 가수 중 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정보없이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달 최고의 앨범입니다!
 
3. Eldar - Eldar : 뮤지션 중 천재들은 참 많습니다. 이 아티스트도 천재라더군요. 워낙에 천재들이 많아서 시큰둥할 때도 있습니다만 이 아티스트는 시큰둥하게 넘길 수 없더군요. 음표 하나하나가 펄펄 뛰어오릅니다. 이름도 짧고... 오래 기억하려 합니다.
 
4. 정원영 밴드 - EP : 정원영은 그렇게 즐겨듣던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앨범 낸 지도 꽤 오래 되었고요. 몸이 많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소리소문없이 멋진 앨범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사실 들어보기 전에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이 정도면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 싶었어요. 이런 여유, 참 오랜만입니다.
 
5. Robbie Williams - Intensive Care : 네, 로비입니다! 2001년 윔블리에서 공연을 본 이래 저에게는 최고의 영국 팝 가수입니다. 가이 챔버스와의 결별 이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로비는 또 이렇게 멋지게 돌아왔습니다. 아아, 미워할 수가 없어요~
 
6. Yundi Li - Vienna Recital : 윤디 리는 젊은 동시대 피아니스트 중 제일 열광하는 연주자입니다. [Liszt] 앨범을 내고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연주회는 완전 콘서트 수준이었지요! 이번에 낸 앨범도 역시나 좋네요. ^^
 
쓰고나니 전혀 짤막하지 않네요;; 사실 이 외에도 수많은 좋은 앨범들이 있는데 괜히 어설픈 제 편식 때문에 조금이라도 받아야 할 빛을 덜 받을까 걱정입니다. 전 그럼, 또 쌓여있는 CD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고로 올라가지 못한 10월 내맘대로...는 한 장이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맞추시는 분께는 조용히 제가 좋아하는 앨범 한 장 보내드리지요. ㅎㅎ 밑에 댓글 남겨주세요~ 참, 힌트! 9윌에 나온 남자 솔로 가수입니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만화책만 읽는 것은 아닙니다만..."
허니와 클로버 8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
 
만화를 읽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좋다고 해서 읽은 만화 하나가 너무나 좋아서 그때부터 이것 저것 찾아읽곤 했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한 만화는 꽤 많으면서도 왠지 내 마음 속의 만화는 처음 읽었던 그 책 하나 뿐이었는데, 요즘 이 만화를 덧붙이게 되었다. 왜 좋은지 잘 모르겠다. 읽다보면 그저 '졸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기분이 든다. 화이팅 마야마, 당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화이팅 야마다, 당신이 곧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기를. 그리고 화이팅,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만화가 계속 나와주길.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개를 길렀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생각해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가지 바보 같은 일들을 벌이고, 직장을 다니고, 또 직장을 옮기는 14년 5개월간, 그 개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나의 비밀을 많이 알았으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고, 즐거운 일들을 많이 만들어주었으며, 종종 나를 물곤 했다.
 
그러나 개를 묻은 이후 나는 그 아이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비슷한 것만 떠올려도 너무나 슬퍼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그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단지 슬픔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책에서처럼 '즐거웠던 날들이 생각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했다고도 울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진짜 쿨한 건, 이런 거지."
 
SEX 섹스 1
카미조 아츠시 지음 / 북박스
 
10월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카미조 아츠시의 <섹스>가 그것으로, 북박스 측으로부터 출간계획을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 그저 기억 속에 묻어두고 있을뿐이었다. 원래 예상치 못했던 맛집이 기억에 더 강하게 남는 법이라고, 이 책 또한 나를 오래오래 기쁘게 했다.
 
유키, 나츠, 카호. 후덥지근한 오키나와는 이 만화의 주무대는 아니지만 꼬리표처럼 세 캐릭터를 따라다닌다.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에 발목이 부러져도 아찔한 하이힐을 고집하는 카호는 "남쪽 섬... 오키나와에 가고 싶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인다. 나츠(여름), 유키(눈)는 어쩐지 비슷하지만 다른 친구. 싸움은 다반사에 마약, 권총, 폭주까지. 세 명, 남들 다 겪는 사춘기치고는 끝내주게 터프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도발적이고 터프하면서도 쓸쓸한 구석 투성이인 이 만화가 해적판으로 돌았을 때, 모두들 말했다. 카미조 아츠시는 너무 빨리 태어났다고. 잘 짜여진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감각적인 컷과 구도, 속도감 있는 전개는 다시 봐도 탁월하다. bdafuck 님이 쓰신 리뷰의 마지막 문단은 팬들의 마음을 참으로 잘 대변한다.
 
'자신을 앞질러 가는 시대와의 속도전 속에서 힘들어하던 카미조 아츠시가 비록 이리도 뒤늦게, 우회해서 도착한 만화에서 팔팔 날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역시 괜찮은 경험이다.' -bdafuck 님의 리뷰 중에서.
 
감이 온다면 꼭 손에 넣기를.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죽(이)는 방법은 너무 많다"
 
코핀 댄서 - 전2권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범죄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그러나 어설픈 캐릭터, 서투른 이야기 전개로는 범죄소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독자들이야말로 최고로 까다로운 고객이니까. :)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이 등장하는 두 번째 책 <코핀 댄서>는 최고의 법의학 스릴러이다. 최고의 탐정과 최고의 범인이 대결한다. (최고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진짜 최고니까.;) 이틀 뒤에 열릴 대배심 재판에서 거물 무기 밀매상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될 증인 세 명을 제거하기 위해 '코핀 댄서'라는 킬러가 고용된다. 그를 잡기 위해 손발은 움직일 수 없지만 머리는 컴퓨터처럼 돌아가는 링컨 라임이 나선다. 탐정이 영리하면 킬러는 더 영악해진다. 킬러가 머리를 쓸수록 탐정 역시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 양쪽 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각자의 무기를 동원하여.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45시간, 미지의 암살자가 세 명의 증인을 살해하거나, 최고의 범죄학자 링컨 라임이 그를 저지하거나. 하나의 결론을 향해, 소설은 거침없이 나아간다.
 
서로 있는 힘껏 상대를 향해 공을 쳐내는 테니스 경기를 보는듯 한시도 방심할 틈이 없다. 두뇌 대결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고 빈틈없는 구성은 단연 최고. 째깍째깍 제한 시간을 두고 펼쳐지는 스릴 만점의 게임, 스케일과 박진감, 비현실적으로 영리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 거기에 최고의 반전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진짜로 재미있는 책이라는 이야기. 또다른 링컨 라임 시리즈를 빨리 읽고 싶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본 컬렉터>는 지난 여름 홍수처럼 쏟아진 추리소설 중에서 눈에 띄게 잘 씌여진 작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에 걸맞게 충분히 프로모션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명의 영화 '본 컬렉터'와는 다른 결말, 다른 분위기, 훨씬 더 나은 작품이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멋진 책. 물론,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코핀 댄서>를 읽는 데에는 거의 무리가 없다.)
 
사랑의 유산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오현수 옮김 / 대교베텔스만
 
<빨강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몽고메리가 돌아왔다. 작가의 고향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시끌벅적 한바탕 유쾌한 소동이 벌어진다. 줄거리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삼대에 걸쳐 60쌍을 배출해온 다크 집안과 펜할로우 집안. 거듭된 결혼으로 굳게 결속된 양가의 우두머리 베키 아주머니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하직한다. 가보인 '다크 단지'를 상속할 수 있는 자격조건을 써놓은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 유언장은 1년 후에야 공개된다.
 
그 덕분에 조용했던 마을은 바른 생활의 광풍에 휘말리고 처녀총각들에게는 결혼이 절대절명의 지상과제가 된다. 사실 가보는 낭만적 사연이 깃든 낡은 단지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차지하는 사람은 마을에서 존경과 예우가 보장된 삶을 살게 되기 때문. 1년의 유예기간 동안 다크 단지를 차지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고, 1년이 지났을 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다.
 
내용 전개와 결말을 다 아는 드라마를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심리처럼,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소극이다. 인물들은 정해진 제 짝을 찾아가고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놓인다. 전형적이고 뻔하지만 남의 연애 이야기, 뒷담화처럼 재미있는게 또 있을까. <빨강머리 앤>의 몇몇 에피소드와 비슷한 장면을 발견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 사람들, 가족 내 미묘한 권력 관계, 다시 안볼 것처럼 다투고 성을 내지만 종내 마음을 열고 용서하는, 결국에는 선량한 사람들. 은근히 보수적이고 아줌마스러운 루시 몽고메리의 수다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빼어난 문학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읽는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지는,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잠을 잔다고? 그게 카페인 대용이 될 거라 생각해?"
 
커피견문록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부제는 '에티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이다. 부제를 보고 나는 불쑥 화가 났는데, 언젠가 내가 세계를 여행할 기회를 갖는다면 꼭 이 주제를 탐방하리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아니, 이 작자가 알모카며 하레르, 캄푸그란데 따위를 누비며 온갖 성스러운 아라비카 커피들을 마시고 다녔단 말이야? 젠장. 부럽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음... 크게 부럽지는 않다. 매사가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알모카? 거길 가서 뭐 하게요?"
"커피요."
"커피 때문에 예멘을 간단 말이에요?" 그는 술집 사람들에게 내 말을 통역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요, 친구. 오늘은 거기 가는 배가 많지 않아요."
예멘과 에리트레아 중간 지점에 예멘 섬이 여러 개 있는데, 바로 어제 에리트레아가 그곳을 침략했다고 그가 설명했다. 두 나라 군대가 홍해로 몰려들었고, 예멘 공군은 수상쩍은 선박에 폭격을 가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은이는 왜 자기가 가는 곳마다 내전/가짜 치유사/위조 미술품 밀반출 사업 제안/공짜로 마약을 안겨주려는 사람들 등 괴상한 경험만 기다리냐고 투덜거리지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너나 잘 하세요." 당신이 어찌나 수다스럽고 엄살이 심하고 삼천포로 잘 빠지고 실없는 농담에 목숨을 거는지,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고.
 
그러니까 이건 진지하게 커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고찰하는 책이 애초 아닌 것이다. 본인도 수줍게 인정하였다. 카페인에 중독된 상태로 지껄인 말이니 좀 봐 달라고... 좋아. 봐 주지. 산만하고 간간이 '오버'한 부분도 있지만 당신 썩 웃겨.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번역된 <악마의 정원에서>도 당신이 썼지?) 하긴 나는 사실 본문 중에 커피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다 좋아하거덩. 제일 아끼는 소설 중 하나는 단지 평균 5쪽마다 한번씩 '커피'가 등장하기에 좋아하기도 하지. 나같은 독자한테 걸린 걸 감사하셔.
 
덧.
<끝났으니까 끝났다고 하지>는 반대로 밑줄을 긋거나 접어둘 곳도 없고 후루룩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인상적이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주옥같은 마이리뷰들이 달릴 때도 나는 이 사람의 충고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는데, 이제 꽤 가치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게도 언젠가 필요할지 모르니 한권 사야겠다. '다 아는 얘기 아냐, 뭘 그런 걸 다... 흥!' 절대 그게 아니다. 인생에서 결코 돈내기를 걸지 말아야할 소재라면 연애에 빠진 사람의 정신상태에 관한 것인 법이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남자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셔야겠다. 흠...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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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9월 내맘대로 좋은책


 
"내년 여름에도 꺼내들을 수 있는 음반!"
 
덥고 또 더웠던 8월이 지나가고... 이제 선선한 9월이 돌아왔다! 8월 내 귀를 거쳐간 200여장의 음반 중 내년 여름까지 나의 라이브러리에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는 음반 5장을 꼽아보았다. 
 

 
1. Depapepe - Let's Go : 두 젊은 친구가 들려주는 감각적인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시원하고 열정적이며 감각적이고 짜릿하다! 콘서트 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갈 아티스트에 또 한 팀 늘었다!
 
2. SINGER SONGER - ばらいろポップ (장미빛 팝) : 이 앨범은 발매가 며칠만 늦었으면 아마존 재팬으로 가서 구입할 뻔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는 음반! 이 좋은 앨범이 왜 이리 안팔리는지...
 
3. Rachael Yamagata - Happenstance :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면 껌뻑 죽는 나를 위한 앨범. 지금 알아두면 분명,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아티스트, 평생 함께 할 앨범이 되리라 확신한다.
 
4. Martin Stadtfeld - Bach : Goldberg Variations : 골드베르크 하면 다들 굴드나, 앙타이, 혹은 쉬프를 떠올린다. 속는 셈치고 한 번 들어보는게 어떨까. 클래식 음악은 이런 아티스트 덕에 발전하는 것이고 사랑받는 것이다.
 
5. Crazy Frog - Crazy Hits : 우하하하! 우울할 때, 청소할 때, 심심할 때, 답답할 때 언제든 꺼내 들으라! 2005년 최고의 댄스 앨범!! ㅎㅎ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지음 / 스튜디오 본프리
 
& ...8월 최고로 재밌었던 책 하나. 이 정도면, 망상도 존경할 만하다! 기가 막힐 정도의 치밀함과 황당함 내기를 하는 듯한 어이없는 생각들이 모여 이루어낸 가장 감동적인 결과물. 진심으로, '마에다건설 판타지영업부'를 존경한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8월, 알라딘엔 스밀라 열풍"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아래의 글을 여기에 꼭 가져오고 싶었다. 묵묵히 짐을 싸들고 끊임없이 방을 옮기는 사람들의 행렬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창을 다 열어 놓은 채 시끄럽고 들뜬 여름 밤을 지낸 8월, 고독에 대한 스밀라 식의 존중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른다. (덧붙여, 무한을 스밀라식으로 배웠다면 나는 지금쯤 숫자로 시를 쓰고 있을지도 -,-)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러시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일생을 보낸 수학자)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p. 22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그리고 <쾌도난마 한국경제>. 제목 그대로 시원시원하게 한국 경제의 오늘을 꼬집는다.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 - 이를테면 신자유주의나 주주 자본주의, 경제 민주화 -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찬찬히 살펴야 한다는 메시지에 200% 공감. '재벌을 타도한다고 노동 시장 유연화가 극복되고 신자유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건가?' 또는 '소액주주운동이 경제 민주화를 이끄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많이 배웠다.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모험이라면 역시 사남매!"
 
8월에는 재미있는 책들을 나름 많이 읽어서 이 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예전에 이렇게 썼더니 몇 권을 읽었냐고 묻는 분들이 꽤 여럿 계셨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본인은 기록 습관 같은 것은 애초에 없을 뿐더러 가끔씩 내 정신이 네 정신인 사람이다 -_-;;)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프란시스코의 나비>, <너는 쓸모가 없어>, 세 권의 청소년 소설은 모두 아픈 상황을 최대한 건조하게 그리고 있는 점이 좋았다. 특히 앞의 두 권, 그 내용은 때로 그만 읽고 싶을만큼 참혹했지만 작가가 너무 담담해서 나도 담담하려 애쓰며 결국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성장한다고 할 때의 '책'은 이런 책을 일컫는 말일 게다.
 
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그리고 <외출>을 읽었다. 과거와 현재를 여러 번 오가며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사랑이란 역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찰나로 끝나는 열정도, 긴 세월을 조용히 지켜봐주는 묵묵함도, 사랑은 모두, 너무, 참, 좋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영화관에는 가지 않기로 한다.
 
제비호와 아마존호
아서 랜섬 지음,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제비호와 아마존호>야말로 8월에 읽은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는데 무어라 찬찬히 소개를 쓸 시간도 없어 그저 '가슴 벅차도록 재미있다'고 써 두었다. 진심이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도 그렇듯 모험에는 역시 사남매가 제격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아이가 넷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또한 진심이다.
 

 
아, 8월에는 친애하는 동료 S씨가 지름신으로 몸소 강림하사, 재미있는 만화책을 백만 권쯤 추천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꽃이 있는 정원><그와 달>이 매우 재미있었으며, 복간본 <후쿠야당 딸들>도 고이 모아가고 있음을 말씀드리는 바이다.
 
어린이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그의 열정에 매료되어"
 
iCon 스티브 잡스
제프리 영 외 지음, 임재서 옮김 / 민음사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스티브 잡스의 열정으로 가득찬 삶을 읽고 나서, 그리고 그의 모습에 매료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스티브 잡스, 그가 품었던 '열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십대에 이미 백만장자에 오르는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회사에서 쫓겨나 끝도 없이 추락하고,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지만 암이라는 아찔한 선고를 받기도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 고비마다 선택의 순간마다 그를 일으키고 옳은 길로 인도하는 건 자신의 감각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꼭 이뤄내야겠다는 '신념'입니다. 그것들이 결과적으로 지금의 그와 성공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전에는 단순히 '대단한 천재'로만 알고 있었던 스티브 잡스. 천재를 넘어 인간으로 바라본 그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세상을 놀라게 하려고 또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그런 책입니다.
 
*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그가 했던 연설문을 함께 적어봅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그가 살아온 삶을 이보다 잘 표현해주는 말은 없는 것 같네요.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여름이여. 장르여."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아, 책이 너무 좋을 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좋은지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지 막막하다. <영웅문>을 모르는 친구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다가 말을 더듬는 것도, 를 읽어보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얼굴만 벌개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바람의 열두 방향>이 SF 독서의 마지막이었는데, 이 책이 또다시 장르에의 애정에 기름통을 부었다. 케이트 윌헬름이 어슐리 K. 르 귄과 더불어 SF의 여성시대인 70년대를 풍미했다는 사실도, 테드 창이 그녀를 사사했다는 점도, 심지어 이 책에 주어진 온갖 수상 딱지와 찬사도, 이 책 그 자체보다 훌륭하지는 않다.
 
원폭, 불임으로 예견되는 인류의 종말, 클론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작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사람'에 고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3편의 중편이 합쳐진 소설의 연결고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그녀는 속삭인다. 과학도, 사회도,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시적인 묘사가 가득한 짤막한 에필로그를 읽는다면, 이 책이 왜 SF 소설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위기의 주부들 & 나는 스밀라에게 반하지 않았다"
 
아웃
키리노 나츠오 지음, 홍영의 옮김 / 다리미디어
 
지난 여름엔 문자 그대로 미친듯이 추리소설이 쏟아졌다. 제아무리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라지만, 제발 이제 그만 좀 나와! 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그러나 정말 많은 신간 추리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6년 전에 출간된 <아웃>이다.
 
이 책은 1998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으로 2004년 미국 에드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 짜임새를 잃지 않고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내러티브를 지닌, 흡입력 100%의 추리소설. 한 권, 한 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네 여자가 있다. 구조조정으로 오래 다닌 직장에서 해고된 후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사코, 없는 형편에도 빚을 내어 과소비를 하는 탐욕스러운 성정의 쿠니코, 자리보전한 시어머니와 딸, 손녀까지 부양해야 하는 고달픈 과부 요시에, 도박과 술집 여자에 미쳐 불성실해진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은 야요이. 네 여자 모두 각자 힘겨운 삶을 견디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더이상 남편을 참아내지 못하게 된 야요이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그녀는 늘 침착해 보이는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사코는 그녀를 돕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살인을 완벽하게 은폐하고 한 남자의 시체를 처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요시에와 쿠니코마저 이 일에 말려들고,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던 네 여자는 잔혹하고 위험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살인 전과가 있는 도박과 매춘업자가 살인자로 몰리는 가운데,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하고 뒷처리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듯 리얼하게 그려진다. (상당히 자세히 묘사되므로 비위가 약한 사람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얼핏 쉽게 덮고 넘어갈듯 보이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복잡하게 뒤엉키고,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 또한 커다란 내적 변화를 맞는다.
 
얼핏 평온해보이는 일상 바로 곁에 폭력과 죽음의 세계가 놓여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지만 필요에 따라 한없이 잔인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 때때로 차마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닥쳐온다. 가족의 무관심과 몰이해에 계속해서 상처입고 무릎이 꺾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건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고 말해야 하는 게 문학-예술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간을 견뎌낸 후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면 새로운 문을 찾아서 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든, 망각을 선택하든...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결국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명제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소년이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얼음과 눈, 숫자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스밀라 외에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이웃에 사는 한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스밀라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건 스밀라,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행위이다. 아니다. 곁에 서서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전체가 통채로 '스밀라'다.
 
스밀라는 정말 특별한 여자다. 그린란드인과 덴마크인의 혼혈인 그녀는 이전 어느 소설의 캐릭터보다도 독특하고 냉정하며 (자신에게조차) 탱크 같은 행동력을 지녔다. 동시에 놀랄만큼 다정하고 다분히 감상적이며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익숙하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않는 그런 사람이다.
 
중간에 읽기를 여러 번 멈추고 책 귀퉁이를 여러 번 접으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계와의 관계 맺음에 대해 사유와 성찰과. 스밀라의 뒤에 바짝 붙어선 채, 차갑고 먼 북구의 바다를 헤매는 자신을 발견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생존해나갈 방법 찾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스밀라에게 생존의 이유는 바로 '이해'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해의 소설'이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스밀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희망'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라 표현되는 무엇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인간에 대한 고요하고 깊은 이해와 성찰이 담긴,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199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소설가 김연수의 진심이 담긴 추천글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글의 마지막 문단을 내 식으로 바꾼다면, 마지막 장면 속으로 잠시 들어가 그녀의 뺨에 가만히 손을 대고 '삶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다. 간절하게.)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고양이 - 라고 쓰는데 이십분이 걸리는 세계"
 
이집트 상형문자 - 읽기와 쓰기
스테판 로시니 지음, 정재곤 옮김 / 궁리
 
이번 달에는, 쐐기처럼 생긴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들여다볼 일이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점자책이 눈앞에 등장해 생전 처음으로 만져(아니 읽어?)보았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집트 상형문자 책이 등장했으니, 모두가 뭔가의 계시일까?
 
...싶은 심정으로 심심할 때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썼(아니 그렸?)으니,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고양이(발음은 미우)를 표현하려면 동그란 항아리 하나 + 새끼 (왜 꼭 새끼?) 메추라기 한 마리 + 그리고 이집트산답게 털이 짧은 고양이 한 마리까지 나란히 그려야 한다.
 
...무슨 고생이냐. 그러나 썩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마음에 들었다. (실은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책이 올해만 몇권 나왔다. 이상하다.) 남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수고하는 것이 실은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말들은 짧지만, 그리고 그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심장을 손에 얹어 내밀듯이 백년쯤 궁리하여 내뱉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편집팀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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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8월 내맘대로 좋은책


 
알라딘 편집팀이 2004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감감무소식이었던 '내맘대로 좋은 책 그리고 음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아무 일 없던 듯 조용히 재개하려 했지만 인사조차 않는 건 너무 능청맞겠지요. 한번 바쁘다고 넘어가니 서로 눈치만 보면서 계속 그렇게 되더라,는 게 변명입니다.
 
반년간의 좋았던 책과 음반과 영화를 돌이켜 적어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각들에 지나간 시간이 뿌듯하게도 여겨집니다. 이우일씨가 <옥수수빵파랑>에서 권한대로 일부러 멈춰서서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일, 역시 즐겁군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어떤 책들 떠오르고 있는 중일까요? ^-^
 
 
"설렁설렁.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상반기 결산을 맞아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을 쭉 소개해 드릴 계획이었는데... 무슨 책을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마도 더운 날씨 때문인듯 싶습니다. 뒤척이며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더니 머리가 멍한 느낌입니다. (늘 TV에서 한강 둔치까지 나가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오죽하면 저럴까 했는데, 올해 톡톡히 '잠 못드는 열대야(熱帶夜)'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영서 읽기도 여름이면 방학을 맞이합니다. 아무래도 신경 곤두세우고 의미를 찾아가며 읽어야 하는 경영서다 보니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대신 설렁설렁.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그런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문학책도 많이 읽고. 예전에 한번 읽었던 여행서들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문학책이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닷컴
 
주말에 시간이나 보낼 겸 꺼내들었던 <괴짜경제학>과 <서른살 경제학>은 의외의 수확이었습니다. <괴짜경제학>은 주제 선정의 '괴짜'스러움과 이국적인 표현에 왠지 모르게 첫 부분은 꺼끌꺼끌한 밥을 씹는듯 했지만, 그 고비만 넘기고 나니 (그런 표현 스타일에 익숙해지니)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정말 특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에 일조한 책이기도 합니다.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한번쯤 독특한 재미를 느끼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인물과사상사
 
<서른살 경제학>도 허름한 표지로 알짜배기를 감추고 있는 겸손한, 그래서 잘못하면 안 읽고 그냥 지나칠 뻔 했던 책입니다. 고령화 시대에 걸맞는 재테크 방법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만으로도 큰 수확입니다. 읽다가 좀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십삼 년 후 제가 40살이 되었을 때도 제가 중간 나이에 약간 못 미친다고 하네요. (40을 먹었는데도 인구의 반 이상이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아직도 날씨는 덥고 방학은 계속됩니다.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그때 지금 받아두었던 책들을 꺼내 읽어야겠네요.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2005년 상반기 나만의 베스트"
 
알라딘에서 상반기 주문한 건수는 총 30건. 금액은 1,659,000원. 이 주문 중, 그리고 이리저리 알게 된 많은 작품들 중 나의 상반기 베스트!
 
1> 음반 : 실비 바르땅의 베스트 앨범
2> DVD : 달콤한 인생 감독판
3> 도서 :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4> 화장품 : 뉴 르파 겐조 뿌르 옴므 오드뚜왈렛 향수
 

 
화장품은, 많은 것 중 향수를 선택했다. 원래 주로 쓰는 것은 아르마니나 폴로, 불가리였는데 겐조를 우연한 기회에 선물받게 되어 요즈음 즐겁게 뿌리고 다니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상쾌한 느낌이 괜찮다. (전에 쓰던 것들이 좀 무겁고 힘있는 느낌이어서인지, 더 끌리는지도.)
 
도서는, 뭐 책을 그리 읽지 않는 것도 있지만, 별로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다 읽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이 정도 꼼꼼한 영화사 책을 근래 보기 힘들었다는 점. 그리고 튼튼한 마무리 등 외적인 부분까지 만족스러웠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DVD는, 역시 별다른 고민이 없이 선택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만 두 번을 본 작품으로, 감각적인 화면과 멋진 음악 등등 이른바 '간지' 가 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나오자마자 DVD를 주문했고, 매일 밤마다 어루만지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음반은, 사실 조금 더 고민해보면 다른 앨범을 집어들 수도 있을 테지만, 비오는 수요일 오후에 딱 떠오른 앨범이 바로 실비 바르땅이었다. 샹송 앨범이라고 지레 던지시는 분도 있겠지만 '유럽' 이라는 단어에 까닭모를 흥분을 느끼신다면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듣다보면 파리의 수많은 거리들이 바르땅의 힘있고 열정적인 목소리에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시기적으로는 30년 가까운 '음악인생'을 담은 덕에 프랑스 대중음악의 다양한 단면을 시공을 초월해 느껴볼 수도 있다.
 
지금 이 앨범은 CD로, ipod의 파일로, 노래방 레퍼토리(연습 중)로, 다른 가수가 부른 동일 곡의 앨범 구매로, 제인 버킨 등 명 샹송 아티스트들의 박스 장바구니 담기 등으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정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듣지 못했을 음반. 새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2005년 상반기, 한국에서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상반기 최고의 소설은 단연 <바람의 그림자>였다. 근래 외국에서 무슨무슨 상을 수상하고, 세계 몇십개 국에서 몇개 언어로 출간 예정이며, 100만 부 정도야 가볍게 팔아치웠고, 영화로 제작 중이거나 제작 예정이며, 누구누구 유명 작가가 격찬했다는 소설이 너무 많이 나온 탓에, (헉헉) 웬만한 수식엔 마음이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의 그림자>는 "2001년 스페인에서 출간된 직후 101주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머물렀으며,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30여 개 국에서 20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소설. 아마존닷컴에서 단시일 내에 100만 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스페인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0년 스페인 '페르난도 라라 소설 문학상' 최종 후보작, 2002년 스페인 '최고의 소설', 2004년 프랑스에서 그해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라는 소개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멋진 소설이다.
 
이 책의 내용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한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오래된 헌책방에 가게 된다. 거기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게 된 소년은, 그 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아픈 운명에 얽혀 들어간다. 내부에 수많은 미니어처를 담고 있는 '러시아 인형'같은 이야기. 책의 운명과 저주에 대한 소설처럼 시작했다가 추리소설인가 갸웃거리게 하고, 사건 속에 스페인 내전의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되 결국엔 죽음도 가라놓을 수 없었던 어떤 연인들의 이야기로 마감된다.
 
인물들의 운명은 소년과 책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반복되고 또 변주된다. 인생이란 결국 그러한 것. 반복과 변주를 통해 생은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고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때 그들 사이에 오가던 감정, 각자의 사연을 그 누가 온전히 되살릴 수 있을까. 소년은 흩어졌던 지난 인생의 조각들을 모으고, 그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된다.
 
풍성한 내러티브, 경쾌한 전개, 지적이면서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주변에 권해준 모든 이들 중 단 한 명도 실망했다 말하지 않은, 추천도 100%의 멋진 작품이다. 지극히 복고적이고 낭만적이며, '매혹'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적인 소설.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쟁 중에도 도시에서 꽃을 팔았다던 낭만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 p.s. 2005년 상반기에는 이른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재간되어 많은 이를 기쁘게 했다. 최고의 코믹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재출간되었으며, 고려원에서 나왔던 미하엘 엔데의 훌륭한 단편집 <자유의 감옥>과,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출간됐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란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들을 찾아 헤매던 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 (그러나 유감스러운 건 지금까지의 예를 볼 때, 이렇게 재출간된 책들의 스코어가 썩 좋지많은 않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엔 또 어떤 멋진 책이 나올까, 기대 반 걱정 반 가슴이 설렌다. (요즘엔 매일 추리소설만 읽어대서 정신세계가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오랜만입니다"
 
그와 달 1
이케미 료 지음 / 학산문화사
 
뜬금없이 찾아온 '내맘대로 좋은 책'. 정초 이후 마음 속으로 '언젠가는 써야 해'와 '잊자!' 무리가 끊임없이 싸웠다. 현실에 승복하고 주섬주섬 책을 챙겨보니, 의외로 이번 달에 건진 만화책이 몇 권 있어 다행이다.
 
이케미 료는 국내에서 그다지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다. <장미빛 내일>, <내가 있어도 없어도>와 같은 대표작을 꼽아도 아는 이는 드물다. 2권까지 나온 <그와 달>은 <허니와 클로버>의 신선한 명랑함과 <이씨네 집 이야기>의 대가족 구도를 70:30정도로 버무렸다. 거기에 종종 등장하는 수선스럽기 짝이 없는 가족의 컷은 <니아 언더 세븐>의 괴기스러운 수다와도 연결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 요즘 보기 힘든 대가족이 다다미방이 깔린 구식주택에서 살아간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뚜렷하지만 이야기의 무게는 분명히 젊은이들에게 쏠려 있다. 자신을 좋아하던 회사동료가 투신자살한 이후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어두운 분위기의 장남, 무뚝뚝하지만 매력적인 장녀 히로노, 남에게 사랑받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차녀 호노카. 이들이 각각의 짝과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한여름에 읽어도 기분좋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2권까지 나온 터라 성급한 결론은 어렵겠지만, 전작과 비교해 좀 더 짜임새가 있는 만화다. 다만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도 많고 각자의 에피소드도 다양해 집중도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라는 것. 늙어서 면역부전에 걸렸지만 여전히 귀여운 고양이 나폴레옹도 매력만점! (2권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마키아벨리와 그의 친구들"
 
내 맘대로 좋은 책 제2의 창간을 기념하며 여기에 어떤 책을 가져올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단지 제목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나 <끝나지 않은 길>, <돌아온 젖소 블라섬>에 잠시 혹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이 영광스런 자리에 아무 책이나 모실 수는 없는 법, 고르고 고른 끝에 2005년 여름을 함께 한 '마키아벨리와 그의 친구들'(맘대로 지은 시리즈명)을 이 자리에 모신다.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옮김 / 까치글방
 
우선 <군주론>. 태도가 냉정하면서도 이상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전이다. 마키아벨리의 현실 인식에 감탄하거니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치밀하고 간결한 표현력에도 매력을 느낀다. 책장 구석에 있던 책을 꺼내 책상 위 책꽂이에 모셔두었다면 얘기 끝.
 
 
新군주론
딕 모리스 지음, 홍대운 옮김 / 아르케
 
다음은 <新군주론>. 1996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이 중도적 노선을 취해 재선에 성공하도록 전략을 짠 정치 컨설던트 딕 모리스의 책이다. 서문부터 눈길을 확 휘어잡는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만약 미국 정치인들이 진정한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 이익을 추구했더라면 오늘날 정치인들이 당파 싸움에 몰두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신 훨씬 더 깨끗하고 바람직한 이슈 중심의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고로 이 책의 주제는 '진정한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말씀! 미국 정치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딕 모리스의 통찰력이 빛나는 책이다. 당위며 도덕적 우월성에 기댈 생각을 버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전략을 세우라 하신다.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라
로브 라케나워, 조지 스토크 지음, 김원호 옮김 / 북앳북스
 
마지막 책은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라>. 세상에는 두 가지 기업이 있다. 1. 적당한 수준의 실적을 내고 신사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기업 2.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극한의 노력을 기울여 결국에는 승리하는 기업. 이 책은 후자를 선택한 이들 즉, 하드볼 플레이어를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경쟁이란 원래가 흥미있는 주제이며, 이기는 일이란 아무리 초연한 듯 굴어도 결국은 흥분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지키며 얻는 승리란 얼마나 멋진가. 책은 괜한 자존심 세우느라 정작 지킬 것을 잃지 말고, 당당하게 싸워서 멋지게 이기라며 꼬시고는, 몇 가지 팁을 알려준다. 어떤 내용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어떤 내용에서는 '이건 좀 심한거 아니냐'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 p.s. 쓰고나니 어째 분위기 살벌. 그러나 본인은 평소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사람이며 <아름다운 가치사전>이나 <쨍한 사랑 노래> 같은 책들을 더 열심히 읽는 사람임을 밝혀둔다.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내맘대로 좋은 책'을 다시 시작하자고 서로의 결심을 다진 지 어언 몇 달. 이번 달에는 하나 둘씩 동료들이 진짜로 책을 정해내기 시작했다. 어이구 어이구 배신자 나빠 미워... 투덜거리는 사이 나만 남았다(알고 보니 막판역전에 성공하긴 했다 ^^). 게다가 팀장님은 한 권을 뽑든 두 권을 뽑든 신간을 고르든 구간을 고르든 마음대로 하라신다. 너무해요, 저는 원래 본성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하여 결정에 약합니다요. ㅠ_ㅠ
 
너무 멀리까지 생각했다간 수렁에 빠질 게 뻔하다. 근래 어떤 책 덕분에 즐거웠더라? 그래, 보름 전쯤 일과 시간에 몰래 <노다메 칸타빌레 12>를 읽다가 불의의 장면에 기습당하고 꽥꽥 소리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다. 치아키 님 제게 돌아오세요! ♡♡♡
 
 

 
상반기 내맘대로 좋은 동화는 역시 <헨쇼 선생님께>.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지난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도 다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도 좋았다. 여성의 권리에는 목소리를 높여도 엄마의 권리에는 무심한 나, 진심으로 반성한다. <악마와의 계약>은 무척 강렬했다. 과녁을 향해 직진하는 티에리 르냉의 글쓰기가 좋았다. 이 책의 표지는 빨간색 밖에 될 수 없으리라.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JD, <달님 안녕>이야말로 최고였지요? ^^
 
어린이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계절은 늦여름이다. 반년간 읽은 책을 궁리하다가 <바람의 그림자>를 꺼내들고 가만히 바라본다. 이 책에는 향기가 있어서 지금 주인공들의 운명은 다 잊었을지라도 향기만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운명, 우연, 사랑, 인생, 고통을 낭만으로 견디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통까지 자초하는 인간들에게는 운명이나 시대가 친구인 셈이다. 어떤 리뷰어께서 "소설과 원수지지 않았다면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정말이다. (혹자는 지나치게 영화 시나리오 같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좌우간) 그 어떤 이야기가 기척을 알리며 읽는이의 마음에 접어드는 것은 대단한 일. 묘하게 후각적인 이 책은 소설 읽는 재미를 상기시켜준다. (편집자 모씨는 책을 읽고 이상형이 '페르민'으로 바뀌었다고 토로하셨도다. 그이가 잊지 말라고 내가 여기 적어둔다.)
 
올 여름을 화끈하게 총정리해준 것은, 그런데, 주간지인 '한겨레21' 8월호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다. 일부러 주간지를 사볼만한 재미가 있다. 아아 어느새 저 매미 울음 부쩍 시끄러운 것은 가을이 올 신호인가.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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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12월 내맘대로 좋은책!


 
"올해 가장 주목했던 두 사람, 래리 보시디와 램 차란"
 
현실을 직시하라
래리 보시디+램 차란 지음, 정성묵 옮김 / 21세기북스
 
편애하는 몇 안 되는 경영서 중 한 권인 <실행에 집중하라>, 그 저자들의 신간은 전작만큼이나 나의 편애를 받기에 충분하다. (사실 받았다.) 경영서는 이래야 함을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설명, GE 부회장을 지냈다는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통찰력은 이 책을 소장해 두고 몇 번씩 읽어보기에 충분한 이유를 준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역시 제목에 있다. '책제목을 음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전작만큼이나 이번 책의 제목 또한 멋진 '현실을 직시하라'다.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인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몇 번을 곱씹어보며, 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생각이다.
 
아, 멋지다. 이로써 올해 총 3권의 책을 (한권은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다) 나의 경영서재에 추가로 꽂아두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총 8권. 경영서가가 수는 적지만 알찬 책으로 점점 채워지고 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원래 다른 음반을 선정했었는데..."
 
Dream Theater - Live At Budokan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 연주 / 워너뮤직코리아
 
원래 꼽았던 음반은 이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되게 진지한 글을 하나 적어놓았었는데... (이 코너를 쓰는 다른 편집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좋은 음반이 나오면 여기 소개할 것을 미리 고민하고, 코멘트도 미리 써놓는다.) 그런데 11월의 마지막날 오전 도착한 한 장의 앨범이 한 달간의 고민과 생각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바로 여러분이 보고 계신 드림 씨어터의 부도칸 라이브!!!
 
수입판과 동일하게 3단 디지팩으로 발매된 이번 앨범은 뭐... 할 말이 없다!!! 바로 그냥 확 뛰쳐나가서 미친듯이 흔들고 발악하고 싶다. 몸 구석구석을 강렬하게 두들겨대면서 나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구만!!! 오오오!!! 어찌 이들은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지는지... 내년에 신보를 낸다는 기쁜 소식 또한 곁다리로 들어 지금 기분이 만땅 좋다! (소문에는 워너가 그다지 홍보를 해주지 않아서 계약이 종료되는 마지막 한 장을 예정보다 빨리 낸다고도 하던데. 흠... 모르겠다, 일단 내기나 해라!!!) 어찌되었든, 여전히 내 몸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구나 하는 걸 화끈하게 실감하게 해 준 드림 씨어터에게 11월 내 맘대로 좋은 음반 자리를 건네준다. 이제는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부도칸 라이브 DVD를 구매하러 갈 차례... 기다려라~~~ 하하하!!!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파이의 반전, 파이의 선전, 파이 화이팅!"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몇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정작 입밖으로 내어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도 그렇다. 그저 솔직하게, 짧게 말하자. 어린 소년(파이)이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 잃고, 언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호랑이와 공존 아닌 공존을 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3일에 끊어 읽었다. 사실 끊어 읽는 독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소설의 경우.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의 1부는 예상 외로 길다. 태평양에 홀로, 아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난파한 이야기는 100여 페이지가 넘어가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3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재미있네, 흠. 이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머리를 감다가 깨달았다. 아, 바로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구나! 뒤통수를 퍽 얻어맞은 느낌(사실 아직도 얼얼하다). 이 소설의 구성이 의미하는 바,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라는 말의 의미. 살면 살수록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무엇'의 의미. 그러니까 희망, 혹은 이야기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책을, 소설을 계속 읽는 이유.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선명한 깨달음이랄까. 아주 수월하게 빠르게 읽히면서도 그 안에 삶이 있다. 역시 정말 훌륭한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씌어지는 법이다. 새삼 생각한다. (알라딘 입사 후 내 마음을 뒤흔든 몇 권의 책 중에 차오원쉬엔의 소설과 <내 생애의 아이들>이 있었다. 결국 또다시 소년(들)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오랜만이다. SF를 읽으며 인식의 변화, 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란 것은. 이야기는 단단하고, 구성도 흠잡을 데 없다. 한눈 팔지 말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지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책. (공대생 개그 중에, '정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문과생은 'justice'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리고 공대생은 'definition'을 떠올린다는 예가 있다. 정말 그렇다. 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로선 '네 인생의 이야기' 중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오, 이런 식의 인식이 가능하군, 하며 놀랐다. 과학과 종교가 잇닿을 수 잇는 지점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도 같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기차가 달리는 한, 그들은 살아남는다"
 
설국열차 1 자크 로브+장 마르크 로셰트 지음 / 현실문화연구
설국열차 2.3 뱅자맹 르그랑+장 마르크 로셰트 지음 / 현실문화연구
 
일본만화처럼 아기자기하고 단정한 선이 아닌, 다소 거칠고 예술적으로 난해한(?) 느낌을 주는 유럽만화는 국내에서 그다지 각광받는 편은 아니다. <설국열차> 또한 대표적인 유럽만화로 총 2권으로 되어 있다.
 
기후무기로 인해 파괴된 지구에 빙하기가 닥쳐와 생명체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살아남는 방법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판 노아의 방주, 설국열차가 만들어지고 만화는 이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 인간의 존엄성, 이기심을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권의 시나리오 작가는 SF 시나리오계의 대가 자크 로브. 장 마르크 로셰트는 애초 그와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그려나갔다. 그러나 1권을 그린 직후 자크 로브가 타계, 별 수 없이 공백기를 두던 중 또다른 작가 뱅자맹 르그랑과 2권을 완성하게 된다.
 
시종일관 암울하고, 게다가 확실히 보기 편한 그림체는 아니다. 그러나 읽은 직후 사람으로 하여금 단 몇 분 동안이라도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이다. '열차'라면 그저 꿈과 환상의 만화 '은하철도 999'만 떠올리던 시절은 이제 서서히 지나가는 모양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내 인생의 책, 한 권 추가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 작가정신
 
표지만 봐도 흐뭇한 책 <파이 이야기>. 11월에 읽은 책 가운데 이에 대적할 경쟁작은 없다! 태평양 한가운데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남겨진 파이의 모험담 자체로도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 하지만, 이 책의 힘은 마지막의 기막힌 반전(?)에 있다. 책이 제시하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소통과 단절... 세상에 존재하는 이분법적 가치들을 정확하게 나눠세우는. 어느 이야기를 믿을지는 당신 마음. 그래서 이 책은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신의 존재와 경이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결국은 당신의, 나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문단 하나.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희망, 삶, 믿음, 신, 경이로움, 우주의 신비, 생명... 그것들은 마음 속으로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들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에 심은 나무라는 것. 물을 주고 볕을 쪼여 키워내야 할 나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절실하게 생각한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 동화!"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짐 크노프와 13인의 해적
미하엘 엔데 지음, 프란츠 요제프 트립 그림, 선우미정 옮김 / 길벗어린이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쁨, 감동, 설레임, 흥분이 아직 생생하다.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이 동화, 그간 <기관차 대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반쪽의 이야기만 출간되고 있어 못내 아쉬웠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나게 되어 다시 한번 감격, 또 감격!
 
<모모>, <끝없는 이야기>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데뷔작품이다. 주제의식 면에서는 유명한 두 작품처럼 심오하지 않다. 하지만 훨씬 발랄하고 즐겁고 신나고 유쾌한, 상상력 가득한 동화. 상상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흔치 않은 책이라 읽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늙고 변했으나 책 속의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이니 그 또한 내게 기쁨이 아니겠는가.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 아키라, 수우, 노조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1 
오자와 마리 지음 / 서울문화사
 
이번 달은 개인적인 일이나 업무적으로나 엄청 바빴다. 왜 '내 맘대로 좋은 책' 안식월이나 이번 달은 '내 맘대로 좋은 책' 안 써도 되는 조커가 없냐고 궁시렁거렸지만, 칼 같은 마감에 점점 "나는 냈어요~"... 나는 주변의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번 달에는 무슨 책을 읽었고, 감동받았는지를 짜내기 시작한다.
 
바닥까지 기어가도 책이 없다. 이럴 수가. 명색이 인터넷 서점 편집자면서도, 한달 내내 그 책더미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가슴을 찌잉하게 울릴 그 한 권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하고 좌절할 찰나 이 책이 짠 하고 나타났다. 사실, 약간은 반칙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이미 몇 년전에 나온 만화로, 아쉽게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애장본으로 나왔다. 종이질이 조금 좋아졌고, 번역도 약간 손을 본듯 하다. 이 작품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왜 좋은지를 이야기하기가 참 힘들다. 구구절절 사설 쓰지 않으련다.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우동국물이나 군고구마같은 만화다. 소박하면서도, 가끔씩 사정없이 찌잉하게 하는 미혼모 수우와 그녀의 씩씩한 딸 농농의 이야기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 아자!!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벌써 겨울"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 행복한책읽기
 
만약 시간이 나서 <파이 이야기>를 읽었다면 바뀌었을 수도 있다. <파이 이야기>는 번역되기 전부터 기대기대하던 소설이다. (친구들과 도대체 그 파이는 사과파이의 파이냐 3.14...의 파이냐? 궁금해하곤 했다.) 그런데 사정이 있어 테드 창의 단편집부터 읽게 되었으니, 이 역시 수년 전부터 귀가 닳도록 명성을 들어온 터이고, 과연 수록 단편들의 명성은 하나도 헛되지 않도다! 누구나 쉽게 잡아들어지지 않는 분야의 책이 있거니와, SF도 장벽이 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놓치기엔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또 바빴던 11월엔 유독 일본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하나같이 라이선스되기 전에 어찌어찌 구한 음반들이 저가에 발매되어 배가 아픈 경우였는데, 차라의 이 앨범도 마찬가지. 나카시마 미카의 곡을 번안한 박효신의 노래가 히트를 치는 현상도 내게는 신기할 따름인데, 좋은 것은 이렇게 섞이고 풀리고 하면서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점을 나는 믿는다.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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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내맘대로 좋은 책 11월



"좋은 책이 많아 행복한 가을"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지음 / 시공사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10월의 수확은 <바람의 열두 방향>과 <최순덕 성령충만기>였다. 르 귄의 열성 팬은 아니지만, 또 책에 실린 몇 개의 단편은 이미 읽은 것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멋진 책이다. (표지 색감과 판형도 맘에 든다.) 특히 인상적인 건 각 단편 앞머리에 르 귄 자신이 해당 작품에 대해 짧게 술회한 부분. 작품의 발단, 출판의 뒷얘기, 소설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해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번역도 매끄럽고 깔끔하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한국소설이다. 또다른 이야기꾼의 등장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랩'으로 서술되는 '버니'부터 전/성경의 형식을 빌려쓴 '최순덕 성령충만기'(에, 종교소설이 아니다.;)까지. 책에 실린 작품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 재미있고 완성도 있다. 이기호란 이름을 기억해두자.
 
그러나 많은 문학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10월에 나를 쓰러뜨린 작품은 <엄마 마중>이다. 알라딘에서 일하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어린이책을 조금이나마 접하게 되었다는 것. 아니었으면 조카도 친구 딸내미도 옆집 아기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내가 어린이 책을 접할 일이 없을 테니까. 이태준의 짧은 동시를 그림으로 풀어낸 이 책 <엄마 마중>. 대여섯 살 먹은 어린 아가가 버스 정류장으로 엄마를 마중나간다. 이영차 보도에 올라서서 '우리 엄마 안와요' 기웃기웃. 그림 한장 한장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서 눈가가 순간 화끈해졌다. 알라딘 편집팀이 10월에 반한 책은 뭐니뭐니 해도 <엄마 마중>이 아니었을까.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은행잔고 35원, 그래도 만화는 계속 나온다"
데스 노트 Death Note 1 오바 츠구미 + 오바타 다케시 / 대원씨아이
환월루기담 이마 이치코 / 대원씨아이
후르츠 바스켓 14 타카야 나츠키 / 서울문화사
더 이상 말하지마 요시나가 후미 / 서울문화사
 
이번 달에는 일반 단행본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경이로운 1권을 선보이는 만화, 흥미로운 2, 3권을 선보이는 만화들로 인해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보냈다. 이달의 선봉은 뭐니뭐니해도 <데스 노트>. 오바 츠구미라는 가명을 내세운 작가는 과연 누구인지 친구와 연일 토론을 하느라 메신저는 언제나 ON 상태였다. 원서판매 사이트에서 미리 주문해서 내용을 살짝 엿볼 수도 있겠지만, 훗날의 재미를 위해 꾹 참고 있는 중이다. (사신 류크가 너무 귀엽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싸이코'라고 한다.)
 
다음을 차지한 것은 오랜만에 등장한 이마 이치코, <환월루기담>으로 <백귀야행> 못지 않은 찬란한 만화를 선보였다. <문조님과 나>로 잠시 동물만화로 나가는가 싶더니, "나, 아직 건재하다구!"라고 조용히 외친다. 으레 그렇듯, 나는 그녀의 만화를 읽다보면 전병과 귤, 담요가 그리워진다.
 
편애하는 캐릭터인 링이 많이 아파보여 마음이 무거웠던 <후르츠 바스켓 14>, 요시나가 후미의 <더 이상 말하지마>(나이제한 표시가 안되어있어 덜컥 구입했더니 15세 미만 불가, 소프트 '야오이'였다!) 등도 주말에 탐독한 만화. 고양이의 주인된 도리로 다시 한 번 봐줘야겠다는 생각에 보기 시작한 <나비의 일상>, <묘한 고양이 쿠로>도 요즘 내 손을 타고 있는 책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이 겨울에 쏟아질 만화들도 빵빵하다고 하니 기대백배! :)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눈이 쌓인 추운 겨울날, 전차 정류장으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아이는 "낑"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서서는 전차가 설 때마다 고개를 내밀며 엄마를 찾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차장 아저씨가 말해줍니다. "너희 엄마 오시도록 가만히 서 있어라." "아기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30쪽 분량의 그림책이 기다림이란 정서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가슴 깊은 곳을 '툭' 건드리는 이야기, 이 책에 덧붙여야 할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마지막 그림이 말해주는 깜찍한 결말, 그런데도 마음 한켠이 여전히 먹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다림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원래 가슴이 아픈 거니까... 하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고,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고, 그래서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론은 엉뚱하게 튀었습니다만, 어쨌든, 기다릴 무엇이 있어 다행스러운 오늘, 지금입니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학생이다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 / 들녘
 
대장정에서부터 천안문 사태까지, 중국의 현대사를 헤쳐온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늘 사람을 각성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삶이란 저런 것인가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아름다운 것도, 처연한 것도 아닌 그 무엇이 아닐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왕멍은 인생은 '배움'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게 될 모순과 함정, 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해답을 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계속 배우고 공부해야 한단다. 인생=배움. 하기사 인생에 단 한 가지의 정답이 있겠는가.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또 하나의 답을 얻었다.
 
아 그리고 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 책, <엄마 마중>!!!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애달픔과 기쁨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적을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인생은 행복한 것이라고.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한국경제가 정말 어렵긴 어렵나 보다"
한국을 버려라
이성용 지음 / 청림출판
 
시대가 뒤숭숭하고 먹고 사는 게 어렵다 보니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당장 2년, 3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독자들로서는 '10년 후, 3년 후'가 붙은 책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고, 출판사로서도 팔릴 책이니 안 낼 수 없는 거겠죠.
 
<한국을 버려라>라는 그런 저런 책들 사이에서 비교적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성향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시각, 한국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썼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저자는 왜 한국이 100점의 실력을 가지고도 70점 밖에 대접을 못 받는지, 그 해답을 15가지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합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역시나 읽으면서 기분 좋은 내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 일처럼 집중해서 읽게 되는 건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다시듣는 그 노래, 감동은 여전하구나. 보고싶다 친구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 시절. 난 소중한 친구와 이 앨범을 들었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설픈 반항이나 부당한 대우를 속으로 삭이는 것 뿐이었지만 이 앨범은, 이 노래들은 작지만 큰 울림으로 지금이 아닌 세상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바꾸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이들은 소리없이 다시 다가왔다. 다 늘어난 테이프 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한 때의 이야기들을 다시 살려준 앨범. 성진아. 너도 이 앨범을 듣고있니. 우리 그때 참 좋았는데... 보고 싶구나.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올해 본 최고로 감동적인 한국그림책"
엄마 마중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너무 상투적이라 쓰고 싶지 않은 표현들이 있다. 콧날이 시큰해졌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얼마나 맥빠진 표현들인가. 아무도 감동하지 않을, 아무도에게도 그 본래 뜻이 전달되지 않는 표현이다. 적어도 서점 편집자라면 이런 표현으로 독자를 유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정말 콧날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뻐근했다. 아기의 코끝이 발개지도록 엄마가 오지 않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군더더기 없는 날씬한 글과 담백한 그림. 누구에게라도 읽히고 싶을만큼 아름다운 우리 그림책이다.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다큐멘터리가 꼭 카메라로만 찍히는가"
신의 괴물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그야말로 다큐멘터리. 사진 한 장 없고 도표 하나 없어도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이런 책을 위해 몇년씩 취재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정리하고, 마침내 책상 앞에 앉아 써내는 과정을 상상해보았다. 과연 그것은 지금 멸종해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밀렵꾼으로부터 지키는 육체적 활동보다 가치있는 것일까? 쾀멘만큼만 쓸 수 있다면 골백번도 'Yes'일 것이다. 글의 장점을 새삼 발견했다. 영상보다 은근하고 개인적이며 그래서 더 살갗에 와닿는다.
 
실은 <엄마 마중>을 꼽고 싶었는데 앞서 많이 등장했으니... 완벽한 글의 아름다움이 댕댕댕 울려퍼지고 절제된 그림의 힘이 따스하게 번져가는 숨막히는 그림책이다. 이 글을 쓰느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묘하게 조여온다.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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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10 20:53   좋아요 0 | URL
저도 '엄마 마중' 렛츠 룩으로 만 보고도 찔끔찔끔 했답니다.

그루 2004-12-13 09:37   좋아요 0 | URL
우리엄마 안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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