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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영화에 대한 그렇고 그런 잡담을 즐기기 위해서 영화주간지를 사는게 마땅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잡지가 배달되면 맨 뒷장부터 서둘러 펼쳐드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바로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를 들여다 보기 위함이었죠.
언젠간 박노해에 관한 컬럼을 있다가 나도 몰래 지하철에서 민망하게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글은 내 비루한 일상에서 잠시 제껴두고 돌보지 못했던 문제들, 타성에 젖어 그것이 문제인줄도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온 문제들을 마주보게끔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자칭 지식인이니, 지식인사회니 지식인의 역할 운운하는데서 심기가 불편해지긴 했지만 그의 컬럼은 현학적이고 고루한 먹물의 일장연설이 아니라, 아침 출근길에 문득 느꼈을 법한 사소한 의문들이 갖는 정치적인 의미를 정확히 꿰뚫어 ‘무식하게’ 쏟아놓은 직설화법입니다. 동시에 그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제시하고 피흘려 투쟁할 것을 선동하지 않는 스스로가 심드렁한 인물이었기에 나 같이 매사가 뒷다마에 그치고 마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인간형에겐 딱 맞는 칼럼이었던 것입니다.(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게 바로 뒷다마의 가장 큰 장점이죠. 물론 이게 지식인의 가장 큰 한계지만서도, 김규항의 그것은 적어도 진심인 것 같습니다.)
격주로 실린 컬럼이 갖는 적절한 시의성이 더욱 그의 글에 열광하게 했지만, 이제 오롯히 한권으로 묶여진 그의 글을 시차를 두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군요.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그가 어린 딸에게 일러주는 이 말로 그 모양새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아, 힘없는 동생들에게는 친절하고 나쁜 오빠들하고는 용감하게 싸울줄 알아야 좋은 언니가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