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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끼던 CD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자켓은 그대로인데, 디스크만 감쪽같이 사라져버린거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며칠 전에 분명히 그 CD를 꺼내 데크에 올린 후 두세곡을 듣고 나서 다시 케이스안에 놓았던 것 같은데…아무리 찾아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사이 누군가에게 빌려준 기억도, 누군가 우리집을 방문한 적도 없었으며, 도둑이 들어 CD장을 열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고른 후 케이스는 놔둔 채 디스크만을 꺼내갔다는 건 추리치곤 궁색해서(하긴 도둑으로서도 가져갈만한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해, 내게 앙갚음을 하려고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도둑맞았다고 보기도 어려웠으며 , 소파나 침대 밑, 씽크대의 서랍까지 있을 만한 곳, 아니 디스크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곳까지 다 뒤져보았음에도 결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시 돈을 주고 새 CD를 사긴 아깝고 해서, 친구의 CD를 카피해서 채워놓긴 했지만, 유성펜으로 조악하게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이라고 써놓은 CD-R 만 보면 어디론가 사라진 그 디스크의 행방이 자못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평소에 산만한 내 성격상 칠칠치 못하게 어딘가에 두고 기억해내지 못하는 거라고 했지만, 결국 1년이 넘도록 그 CD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책을 또 사고 말았습니다. 지난번에 하루키를 읽으며, 이제 나도 하루키를 읽을 나이가 지난건가.이젠 그얘기가 그 얘기군 해놓구선, 결국에 또 사고 만것입니다. 사실 이 나이에 책읽는 일을 조금 시시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철없음과 미숙함마져도 제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하루키에 대한 불평을 진심으로 한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써놓고 잊어버렸던 일기를 다시 찾아 읽으며 느끼는 낯섬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하루키를 읽는 일은 어쩜 그가 글을 쓰는 한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아마, CD를 잃어버렸다고 하루키에게 투덜거렸더라면, 이런 저런 정황을 진지하게 캐묻고 이렇게 대답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 그 CD는 어쩜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몰라, 데크위에서 회전운동을 하다 원더우먼처럼 변신해서 마지막 트랙을 돌고나선 완전히 사라져 버린걸지도.”
그러고보니 제가 마지막으로 CD를 들었을 때 어쩐지 재생되는 음질이 불안하고 잦아드는 소리를 냈던 것도 같군요.왜 그런 가능성에 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까요? 흐흠..덩치 큰 코끼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CD쯤이야, 999번이라도 사라질수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