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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민족의 집단 무의식의 발현인 신화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구전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이 바로 미사고의 숲입니다. 소설은 이 신화의 메커니즘 안으로 뛰어든 한 <혈족>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신화의 진화과정을 보여줍니다.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죠. 평범한 청년 스티븐이 신화의 일부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알 수없는 아우라에 휩싸인 숲의 존재만으로도 무게감을 갖던 초반부의 긴장에 비해(그러니까 스티븐이 숲밖에 있던 전반부)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가 귀네스를 되찾기 위해 신화의 각 종족을 만나고 싸우는 퀘스트 단계는 상대적으로 긴장이 풀어지고 맥이 빠지는 느낌을 받고 말았습니다. 즉, 본격적인 장르의 전형성을 갖는 후반부에서 가서는 비록 장르에는 충실할 지언정 현실감 없는 뜬구름 같은 얘기처럼 느껴지더라구요. (판타지 소설에서의 현실감이란게 무슨 소용이냐고 하시겠지만, 전 환타지나 Sf소설의 성공여부는 바로 어떻게 현실감을 획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동양과 서양이라는 공간과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한계, 다시 말하면 숲이 갖는 원시적이고 신비스런 이미지를 떠올려내거나, 귀네스란 이름에서 신화적인 모태의 여성상을 간파해내거나, 고대브리튼어와 켈트어와 잉글리쉬를 분간하지 못하는 한계가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내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책을 읽는 일이 영국인들에게 구전되는 신화와 신화적 인물이 라이호프숲 원정에 나선 스티븐 일행의 모험과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며 조각그림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라면, 아더이야기건, 로빈훗이야기건, 그리스 로마신화건 서양의 신화에 대해 전무한 지식을 가진 저로선 이책의 재미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겠죠. 아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