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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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이 도발적인 제목앞에서 조금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3인칭 복수. 귀화한 한국인이라더니, 그래 넌 한국인이 아니란거냐? 제가 '당신들의' 란 소유대명사에 거부감을 먼저 느낀 건 3인칭 복수의 대한민국이 갖는 이미지가 네가티브에 가깝단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그래, 나도 내나라가 어떤 나란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그래 어디 한번 씹어보렴.

다분히 삐딱한 심정으로 읽기 시작한 이책을 다 덮으며,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바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일원으로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일조했던 부끄럼움, 눈앞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또는 모른 체했던것들에 대한 부끄러움, 또 벽안의 젊은이보다도 내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무지했던 점에 대한 부끄럼움…부끄러움 투성입니다.

불과 3개월을 학생으로서, 3년을 선생으로서 우리나라에 머물렀다는 벽안의 청년이 이정도 깊이로 한국에 대해 속속들이 꿰뚫고 비판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틀에 박힌 듯 입에 발린 외국인들의 표피적인 감상에나 흐믓해 하던 우리지만 이젠 따갑지만 진심어린 그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겁니다. 삐딱하게 듣고 흘려버리기엔 그의 지적은 정치적으로 옳을뿐더러, 논리적이고, 치밀하며, 부정하기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이 빼곡이 제시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인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부당한 일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부끄러워해야 할겁니다. 한집단이 다른 집단을 향해 가한 폭력은 가해 당사자가 아니라해서 면책이 성립되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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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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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보낸 편지나 엽서를 받는 일처럼 반갑고 설레는 일도 드뭅니다. 짧은 인사말에도 많은 사연이 연상되고, 조금씩 흔들린 글씨체를 보면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엽서를 쓰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짓게 되고, 그림엽서 전면에 펼쳐진 풍경속에 보낸이의 모습이 보일세라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낯선곳에서 지인이 느끼고 있을 흥분을 함께 느끼곤 하는 것입니다.

윤대녕의 산문은 마치 그런 편지나 엽서처럼 묘한 설레임을 주는 글입니다. 자분자분한 말투도 그렇고, 아름다운 문장도 그렇고, 낚시한 물고기를 회뜨는 모습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는 지극히 여성적인 감수성도 그렇구요. 과도한 감수성에 지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리 시대에 그만큼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이도 드물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리고 제주도 바닷가에서 공들여 지은 뉴질랜드풍의 펜션을 발견하거나, 비오는 30번 국도에 나서는 길이면 여지없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듯 윤대녕의 글들을 떠올리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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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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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우화로 읽고 흘려 넘길 수도 있는 짧은 글입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외롭고 고독해 보이며 근원적 고민을 지니고 있는 피터 벡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내 발목을 쉽게 놓질 않는군요.

그들의 고민거리라는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미 인정하고 확인한 사실이라는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는 일을 부정한다는 일,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원칙을 깨는 일이고 결국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지고 맙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거나, 왜 책상을 책상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거나,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하는 이런 일들은 어쩜 누군가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상이나 망상으로 끝나지만, 피터 벡셀의 주인공들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고, 생각이 생각을 낳고, 의문은 의문을 낳아 결국 미궁으로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끔 지하철역에서 마주치는 독서를 좋아하는 홈리스아저씨나 더운 여름에도 잔뜩 옷을 껴입고 다니던 어느 거지 역시 자신만의 고민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선 적당한 타협이 필요한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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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세계화 - 대안신서 3
헬레나 노르베리-호지+ISEC 지음, 이민아 옮김 / 따님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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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의 전통사회가 무분별한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붕괴되었듯이 지역에 기반을 둔 소규모의 경제단위는 거대기업과의 무차별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어 보입니다. 자유무역주의의 허상과 그속에 도사리고 있는 경제논리가 얼마나 철저히 거대기업 위주인지, 우리가 내고 있는 세금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왜 점점 개인이 감당하는 조세부담은 커져가고 기업은 부를 축적해가는지, 학교교육은 어떻게 바람직한 소비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는지..세계화의 부조리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지만, 제겐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요.

이미 전세계는 세계화를 향해 치닷고 있고 풀뿌리운동 같은 소박한 시민운동으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주식으로 하며, 자동차를 타고서라도 대형할인점으로 가야 직성이 풀리는 ‘바람직한 소비자’로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 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꿀 대안도 자신도 없습니다. 그냥 온 지구상에서 서서히 아니 놀라울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환경파괴와 지역경제의 붕괴와, 전통적 가치의 소멸에 일조하는 수밖에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복음이 아니라 재앙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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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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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이상의 자원을 소비하는 일을 단순한 낭비로 취급하거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로 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사고임에 분명합니다.그것은 분명히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선조로 부터 깨끗한 자연을 물려받지 못하게 될 후세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TV뉴스에서는 지진으로 터전와 가족을 잃은 아프간난민들의 참혹한 모습이 여과없이 보도되더군요.1리터의 링거, 아니 1리터의 식수만 있어도 어쩌면 그들중 몇몇의 목숨을 살려낼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우리나라에서 일년간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양이면 북한의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환경문제는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고 물을 아끼는 일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에서 함께 사는 문제입니다.

새 운동화를 살때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간당 500원의 저임금으로 희미한 조명아래서 접착제로 신발 바닥창을 붙이는 노동자를 떠올린다거나 커피를 마실때마다 컬럼비아의 파괴된 산악지대를 걱정해야 한다거나 자동차를 탈때마다 배기가스가 일으키는 환경영향을 계산하는 일은 분명히 꽤나 피곤한 일일겁니다. 어쩌면 편집증이라고 눈총주는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겠군요.하지만, 몇년후 물부족 국가될 것을 경고받고 있고, 가끔 출근길마다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할정도로 심한 공기오염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의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은 저 자신을 포함해 너무나 안이했던게 사실입니다. 환경운동이란 북유럽의 그린피스 회원들이나 하는 돌고래 살리기 운동정도로 인식했던것도 사실이구요.돌고래의 생존에 관한게 아니라 인간의 생존 문제였는데 말이죠.

물론, 구보씨처럼 녹색시민으로 불리울 자신은 없지만, 최소한 양치질하며 물을 틀어놓거나 흐르는 물에 설겆이를 하거나, 필요이상 많은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 일 정도는 저도 할수 있겠죠.캔콜라대신 병콜라를 커피대신 녹차를 마시는 정도로 환경운동을 실천한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제 소비방식에 대한 문제성은 인식했으니 가능성은 있는 거겠죠?

그런데, 번역자의 아이디어인지 기획자의 아이디어인지, 구보씨란 가상의 한국인과, 그를 둘러싼 일상이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옮겨졌네요. 외국인이 쓴 책이란 사실을 잊을 정도로요. 오래만에 보는 성의있는 역서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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