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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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가장 먼저 바라본 곳은 어디인가? 시선이 곧 마음이다.잡스의 연설은 거만하다. 뭔가 꼬여 있다. 잡스의 연설은 흥미롭다. 빌 게이츠의 연설은 우아하나 지루하다. 왜 그럴까? 


  저자 김정운 교수는 386세대로 문화심리학자이다. 그는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논지를 폈다. 유쾌한 인문학이다. 2010년에 열린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가 편집자의 역할에 관해 역설하고 있다. 지식이 그물망처럼 얽힌 온라인 세상, 이제 권력은 그 지식들의 편집에서 나온다. 21세기 초반 한국 사회를 강타한 황우석 사건의 본질은 줄기세포의 유무가 아니다. 지식 권력의 이동이다.


  인간의 의식은 사용하는 도구로 매개된다. 하루에 세 번 숟가락으로 '뜨고' 젓가락으로 '집는' 사람과, 포크로 '찌르고' 나이프로 '자르는' 사람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다. 마우스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는 도구다. 인간은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텍스트의 감옥을 벗어나게 되었다. 1968년 발명된 최초의 마우스의 엄청난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만지고 문지르는 아이팟'은 '버튼을 눌러야 하는 아이리버'를 한 방에 보냈다. 인간은 누르는 것보다 만지고 문지르는 것을 좋아한다.


  김용옥 교수의 글은 '나'로 시작한다. 그 주체적 글쓰기의 결론은 항상 '자기 자랑'이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된다. 이어령의 창조적 사유는 '선택과 집중'이 아닌 '선택과 결합'에서 나온다. 여든이 넘은 이어령 선생은 지금도 책상 앞뒤로 여섯 대의 컴퓨터를 두고 작업한다.


  독일 학생들은 카드에, 나는 노트에 필기를 했다. 카드와 노트 사이에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카드를 사용하면 자기 이론 구성이 아주 쉬워진다. 카드는 '편집 가능성'을 무한히 넓혀 준다. 이렇게 편집 가능한 형태로 축적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권력은 지식이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조직을 개편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가진 지식에 맞춰 권력을 편집하기 위해서다. 노무현 정부의 '정보통신부', 이명박 정부의 '국토해양부',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가 있다.


  자막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10년 가까이 승승장구하는 '무한도전', 예능 프로는 자막으로 완성된다. 스티브 시걸 같은 배우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이유. 스티븐 시걸의 일관된 표정 연기 후에 어떤 장면이 이어지느가에 따라 관객들은 전혀 다른 감정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카라얀이 위대한 것은 지휘를 잘 해서 아니다. 청각과 시각을 편집해낸 최초의 뮤직비디오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서구의 과학적 사고는 원근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소실점은 객관성과 합리성의 기준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를 자세히 보면 그림이 많이 이상하다. 마리아의 오른팔이 왼팔에 비해 훨씬 길다. 마리아 뒤쪽의 벽돌을 보면 원근법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 그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소실점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즉 객관성은 주관성을 전제로 한다는 변증법적 모순이 숨겨져 있다.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용품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들. 원시인류는 대상에 문양을 그려넣으면서 통제 가능한 세상을 꿈꿨다. 문양은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규칙이 있는 한 두렵지 않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샹젤리제의 가로수. 절대왕정은 성 안의 정원을 규칙과 대칭의 원리로 만드는 데 만족했지만, 근대 권력은 도시 전체를 원근법적으로 재편집한다. 동양화에는 시선이 하나여야 한다는 근대 권력의 강박이 없다.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장군의 라이방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나는 너희들을 본다. 그러나 너희들은 나를 볼 수 없다.' 타율적 규제의 내면화는 방학 생활 계획표부터 시작한다. 피아제라는 '세 산 실험', 각기 다른 방향에서 보이는 세 산의 모습을 머릿속에 상상해내야 하는 실험이다. 피카소의 위대함은 '관점의 해체'에 있다. 통일되고 일관된 시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앉은 위치에 따라 상호작용이 달라진다.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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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독과 편집의 힘
    from 고립된 낙원 2019-04-17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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