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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과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 영화 <세 자매>에서 "목사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경청이라는 소설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세상과 스스로 단절되어 살고 있는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방송 출연자였던 그녀는 방송대본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읽었던 인물이다. 방송의 파장으로 몇 달 후 배우가 죽음을 선택하면서 여론은 그녀를 향하면서 그녀가 잃은 것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직장, 배우자, 단짝 친구, 명성까지도 모두 잃어버린 그녀의 사연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부치지 못한 편지를 버리기 위해 밤에만 외출한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와의 인연이 그녀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한 소녀와 한 여인,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서 거듭나는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는데 얻은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면서 지켜 낼 것이 무엇인지도 자각하면서 그녀가 거듭난 생의 전환점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집중해서 듣는 경청의 참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파이브 센스』 책의 저자도 처음으로 오감에 집중하면서 경외감을 경험하였다고 전하였듯이 이 소설의 그녀도 경청하면서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그녀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경청의 힘이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작품이다.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 듣는 것, 경청의 진정한 의미가 부각되면서 말과 언어에서 그녀가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면서 그녀를 변화시킨 경청의 의미는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페기된 편지의 언어, 소송을 취하하는 이유와 소송이 전개되는 언어와 말의 의미마저도 일맥상통하게 된다. 상담 센터 대표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의 언어도 동일한 의미로 전달되면서 "고마움과 감동, 안도와 희열 같은 것들이 그녀의 어두운 내면을 잠시 환하게 만든다. "(255쪽) 는 것이 큰 의미로 자리 잡는다.
그녀는 어떤 말로, 어떤 언어로, 외부와 대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그녀가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절을 지나왔을 뿐이다. 307쪽
그녀를 변화시킨 것들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교류, 투명하게 오가는 감정, 잠깐씩 솟구치는 웃음이라고 설명해 준다. 특별하지 않지만 그 무엇과 비교되지 않을 특별한 것들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밀어내고 뒤로 밀쳐버려야 하는 것들을 제일 앞에 두고 살아왔던 그녀의 지난날들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충분히 감지하게 되면서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한 선택들과 치워버린 것들이 얼마나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지금 당장 출발하면서 지켜낼 것들이 무엇인지 그녀는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 거짓 없는 투명한 감정적 교류, 즐거움을 주는 찰나의 웃음을 그녀는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교류, 투명하게 오가는 감정, 잠깐씩 솟구치는 웃음 134쪽
말과 언어가 완전하다고 믿었던 그녀는 이제는 침묵과 경청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쏟아지는 소음, 분주한 도시생활보다는 템플스테이, 성지순례길을 걷는 이들이 긴 시간 침묵하면서 혼자 경험하고 깨닫는 것과도 다르지 않는 놀라운 경이로움일 것이라고 믿게 된다. 진짜 소중한 것을 깨달은 그녀를 응원하였던 소설이다.
아이를 괴롭히던 울분, 아이의 내면을 갉아먹던 외로움 - P274
전부를 건 싸움.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싸움. 보잘것없는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한 전투 - P88
배우자. 태주. 늘 기억 속에서 길을 잃는다.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존재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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