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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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신작이 12년 만에 출간된 시집이다. 301편의 시들이 담긴 책표지가 이쁜 양장본 시집이다. 시인의 사진과 시를 접하였던 날들이 떠오른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와 빛, 어둠의 음영들은 압도적이었다. 시는 사진과 어우러져서 오랜 날들을 기억 속에 자리 잡게 했었다. 그렇게 시인을 알게 되었고 시인의 시집을 펼치는 시간까지도 함께 하고 있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이며 혁명가라고 소개하는 작가소개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작가에 대해 만난 시간이었다.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100만 부가 발간되었고 '얼굴 없는 시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군부독재 정권과 사형 구형, 무기수, 감옥 독방, 침묵 정전. 7년 6개월 만에 석방. 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사실과 국가보상금을 거부한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들은 그 시간들과 공존하고 있고, 시어들과 함께 살아있는 역사이며 시인의 인생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를 만나고 다음 시를 만나는데 묵직한 것이 누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묵직함을 이 시집의 시들을 통해서 마주하게 한다. 그렇게 시인의 날들, 시인의 사유들을 마주하게 한다.

어머니가 당부하셨다

...

가난과 불운이 네 눈빛을 흐리게 하지 말고라

...

내면의 빛과 소박한 기품을

스스로 가꾸지 않으면 나 어찌 되겠는가

70

시인의 가족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시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 시집이었다. 학교에 보내면서 자식에게 당부하는 말들, 감옥에서 석방된 후 나날들의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았을 날들이 떠오르는 시이기도 하다. 기도를 하며, 신을 부르며 보낸 날들. 시인의 시에서도 신을 향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광야의 날들과 시련들을 시인의 목소리에서 그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저들의 잘못된 질문에 무시를

저들의 의도된 질문에 경멸을

언론의 보도와 꼰대의 개탄에 주먹을

48

이 시집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녹록지 않았던 수많은 날들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 상처와 고통과 아픔들은 영화를 통해서, 문학을 통해서, 시집을 통해서, 사진 전시회를 통해서 그 너머의 시간들을 관찰하게 된다. 시인의 시는 어렵지가 않다.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우리들 곁에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전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자, 그 목소리의 울림을 느끼는 자, 삶에 투영이 되는 자가 되어 경건하게 삶을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시들을 담고 있는 시를 만나보게 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금도 우리는 보내고 있다. 방역 지침을 향한 시인의 언행이 등장하는 시도 만나게 된다. 시인의 선택은 시인의 것이다. 권력과 명령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다. 자유가 가지는 힘도 무엇인지 아는 시인이다. 마스크와 백신이 자유의 의지에 의해 선택되고 방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야외 마스크는 시민들의 선택이 되었고 자유의지가 반영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며 다니는 모습만 보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민임을 지금도 보게 된다. 권력과 명령, 규제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며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국민임을 떠올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이기도 하다.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서도 떠올려보게 된 시간이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지요

121

시인의 몸이 묘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문신이 새겨진 날들과 순간, 그 시간들의 의미도 떠올려보게 한다. 이 시대의 교육과정도 떠올려보게 하는 시도 만난다. 직접 아이 수학을 가르쳤기에 교과과정의 수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서 교육과정이 바뀌는 날들을 늘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고 어린 학부모들은 그 움직임을 깜박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너무 많이 배우는 시대이다. 우리 시대에도 엄청난 양을 기억하면서 대학입시를 보냈는데 지금 아이들은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을 배우고, 지문을 읽어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얼마나 견디어낼까? 휘어지는 수준일까? 배우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도 만나게 된다. "그만 배우기와 생각하기. 삶을 살기. 나를 살기." 이것이다. 진정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신호등이 되어준다. 그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선택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부모들도 있다. 다양한 교육이 선택받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관찰해보는 사유의 장소가 된 시집이었다. 301편의 시들을 만나보자. 양장본이며 가름끈이 두 줄이라 읽는데 편했던 시집이다.

내 몸은 하나의 묘비

101. <내 몸의 문신>

우린 지금

너무 많이 배우고

너무 적게 생각한다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

삶을 살기, 나를 살기

117 <너무 많아 너무 적다>

접속하면, 접수당한다

소통하면, 관통당한다

94 <접속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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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채소 생활 - 집에서도 쑥쑥 크는 향긋한 채소들, 기르는 법부터 먹는 법까지
이윤선 지음 / 지콜론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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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텃밭에서 허브와 꽃 채소, 잎채소, 뿌리채소, 열매채소를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도서이다. 비료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하며, 햇빛, 물, 온도까지도 세심하게 확인하고 관찰해야지 키울 수 있는 것이 식물이다. 저마다 성질도 다르고 성장하는 환경도 다르다 보니 키우는 채소 종류의 성장환경을 알아두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래서 만나본 책이다.

씨앗을 고르는 법, 모종을 구입해서 키우다가 분갈이를 해야 하는 시기, 지지대를 세우는 방법까지도 책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다양한 종류들이 소개되는 채소 키우는 법과 수확한 채소를 요리하는 법도 채소들마다 소개되고 있다. 더불어 저자의 이야기도 켜켜이 쌓여있는 책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농촌에서 작물을 키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홀로 그렇게 시작한 농촌 생활의 고충과 주거지에서 일어난 일들까지도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이야기 하나씩, 채소 키우는 법 하나씩, 수확한 채소 요리법들이 빽빽하게 수확되는 책이기도 하다.

초록 식물을 키우는 식물집사이다보니 저마다 위치하는 장소, 햇빛 양, 물의 주기, 영양분, 바람 등 전문가가 된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키워보고자 하는 채소 종류와 키우는 법이 담긴 책이다. 키워서 요리할 수 있는 요리법도 소개되고 있다. 좋아하는 채소, 꽃들, 허브, 열매채소 등이 소개되고 있어서 관심 있게 만난 책이다.

물을 주는 시기, 집을 비울 때 물주는 방법도 소개되고 있다. 1주일에서 2주일은 여행을 떠나도 걱정 없는 방법도 기억에 남는 방법이었다. 퇴비 만드는 방법도 소개된다. 어렵지 않게 소개되고 tip도 내용들 중에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을 만난 책이기도 하다. 책 사이즈는 크지 않고 작지도 않다. 채소 작물을 키워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분들이나 키우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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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색 인생그림책 14
리사 아이사토 지음, 김지은 옮김 / 길벗어린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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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는 경계선은 한없이 무너지는 듯하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도 있지만 성인들을 위한, 모두를 위한 그림책이 제법 많이 눈에 들어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즐겁게 한다. 그림책 코너가 모두를 위하는 세상이라 너무 마음에 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그림책이다. 시원시원한 책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든다. 큼지막한 책 디자인과 간결한 문장이 가지는 힘 있는 목소리도 너무 좋다.

첫 장을 펼치면 아름다운 노년의 부부의 모습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름다운 노년.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 이들 부부의 모습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편견들과 선입견들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이 작가가 좋고, 이 그림들이 좋았다. 빛나는 노년의 시간들과 순간들. 삶의 긴 장면들과 노고와 행복들이 켜켜이 쌓인 이 부부를 그려보게 한다.

'아이의 삶' 한 장씩 넘기면서 그림들과 문장이 던지는 '~기억하나요?' 질문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잊고 있었던 그 시절들을 떠올려보게 한다. 골목길의 아이들 목소리, 나이라는 경계선도 없이 함께 어우러져서 놀았던 골목길 놀이들. 이 책에서도 작가가 그려내는 아이의 삶을 마주해본다.

우리는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갈 생각이 없던 무당벌레들...

때때로 세상은 불공평했고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했어요

'소년의 삶' 훌쩍 뛰어넘는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갑자기 바뀐 모든 것들은 미성숙하지만 보고, 느끼며, 치열한 시간들을 보낸 시절이니까요. 달라졌고, 어떤 날은 힘껏 반항하고 싶었다는 글귀도 많이 공감하는 그림이며, 글이다. 그림의 주인공처럼 힘껏 외쳐보지는 못했지만 날아오를 거라고, 부조리를 끊임없이 기억에 담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작디작은 날개들을 키워가는 시절이기도 하다. 그 그림과 문장도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폭력들을 담고, 이겨냈고, 목격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간 시절을 떠올리면서 한 장씩 만나는 책이다.

때때로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보였어요.

당신이 당신의 날개로 훨훨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의 삶'의 그림들도 꽤 매력적이다. 작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호탕하게 웃고, 공감하면서 넘기는 그림들과 문장들. 때로는 혼자만 혼동을 시간을 보내는 듯하기도 하며,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확신을 가지기에는 이른 날들이다. 뭔가를 찾는 날들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고정관념을 넘어선다. 자유롭고, 경계도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활짝 열린 다양한 사랑들을 그림으로도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도 홀로 견디는 삶이기도 하다. 다양한 삶들이 펼쳐지는 인생 그림책.

어쩌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아니면 영원히 함께할 수도 있겠죠.

'부모의 삶'은 한 장씩 넘기면서 많이 웃게 한 페이지들이다. 부모의 길은 모두가 처음이기에 좌충우돌하고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긴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나니 아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시절이기도 하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건 사절이며 지금이 너무나도 좋은 날들이기도 하다. 부모의 길은 그런 것이다. 이 그림책을 통해서 다양한 시절들을 회상해 볼 수 있었다. 매력이 넘치는 작가의 그림들과 문장들은 충분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어른의 삶'과 '기나긴 삶'은 지금의 삶이며 확실하지 않는 그날들의 이야기이다. 어느 시점까지 우리들의 삶이 이어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림과 문장들을 넘겨가면서 노년의 삶도 풍성하게 그려보게 한 시간이 된다. 그림들은 유쾌하며, 웃음을 가득히 선물해 준다. 문장들은 가볍지도 않다. 하나씩 만나며 만나갈수록 사고를 더욱 확장시켜주는 유익한 글들이었다. 멋진 작가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멋진 선물과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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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 혹은 침묵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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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생각에, 글쓰기는... 위험했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그러다 큰일 난다! 78

아니 에르노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여러 작품들을 읽었기에 이 소설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읽은 시간들로 떠오른다. 빼곡하게 이어지는 긴 문장들의 호흡, 멈추게 하는 문장, 다시 읽게 하는 글에서 문맥의 흐름을 잃지 않고자 여러 번 멈추기도 한 작품이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가진 바탕 그림만큼이나 이 작품도 연장선에서 만나게 한다. 유년기의 환경, 부모의 직업, 부모와 집안사람들의 대화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화자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배워가는 학업과 교우들의 집안 환경까지도 자신의 환경과 비교된다. 부모의 직업과 경험한 한계들이 그들의 말과 침묵을 통해서 투영된다. 그것들을 경험하며 느끼며 생각한 그녀의 중학교 졸업과 친구와 함께 한 많은 날들과 대화들도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서민의 삶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외할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대화들도 밀접하게 기록된다. 여유를 부리지도 못하고, 빼곡한 경제 상황들이 짐작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배우고 깨우치고 사고하는 것들은 확장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간극을 채우지도 못하고 채울 수도 없는 자신의 집안 환경과 부모들의 모습은 그녀를 더욱 말 없는 아이로 보여주게 된다. 아이는 토론하며 작품을 읽고 함께 대화할 수 상대를 찾는다. 하지만 부모님도 그러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연히 알게 된 남자아이와도 대화는 이어지지 못함을 깨닫는다.

내가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는 사실... 그 속에 늘 잠겨 지냈음에도 그 어떤 특별한 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43

이모가 묻길, 안, 혓바닥이 달아났니?... 달아난 건 오히려 그들의 혓바닥, 그들의 언어이다... 그들이 하는 말과 들어맞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181

'소외'의 대상이 된 사람들. 계급구조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자식의 눈에 보이는 부모의 모습들과 목소리, 싸움과 경찰의 출동을 짐작하는 상황들, 텔레비전의 소리와 신문, 엄마가 읽는 소설, 유급휴가가 주어지지만 즐기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와 이유들이 화자를 통해서 그려지는 소설이다. 부자의 삶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사고의 한계점을 화자의 시선에서도 예리하게, 명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시대의 격동기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이념들이 이 작품에서도 대학생을 통해서도 짚어진다. 좌파, 우파,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이해하면서 더욱 또렷하게 깨닫는 여러 사실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는다. 이모를 통해서,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목소리를 따라가게 한다. 착잡한 상황들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화자의 갈급함과 내적 마찰들을 주시하게 한다. 심지어 성에 대해서도 어머니는 대화해 주지 않는다. 소설에서 펼쳐지는 것과는 상이하고 다른 현실의 상황들에 홀로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세상의 잣대에 남성과 여성이 가지는 경계선을 화자가 만나는 남성들을 통해서도 놓치지 않고 상기하게 한다.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는 늘 남자애들이라 유쾌하지 않았다고 화자는 떠올린다. 이 화자는 여성이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로서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눈물로 깨우치기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금기하며, 제한을 제시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가지는 의문들과 호기심이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장바구니가 터지게 물건을 담는다든가, 아름다운 침실이라든가, 유급 휴가 같은 것, 여전히 그런 것은 행복 같지 않았다. 자유가 무엇을 닮았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자유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란 어려웠다. 120

자신들의 삶이 실패한 줄도 모른 채 자동차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그런 사실을 아는 내가 그들 모두 보다... 커다란 행운 같았다. 121

<이방인>책을 읽은 화자가 느끼며 상기하는 것들은 작품 속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기도 한다. 부모와 책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까지도 헤아려보지 않을수가 없다. 자신이 속한 계급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어느 순간, 어느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서 깨닫게 되면서 보이는 것들과 상황들은 냉혹하기만 하다. 화자는 그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만나고 싶었다. 그 깨달음을 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도 냉정하게 되짚어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남성을 향한 잣대와 여성을 향한 잣대는 얼마나 유연할까? 그에 대한 질문도 함께 내놓는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가의 글도 꼭 읽었으면 한다. 번역 작업의 뒷이야기와 갈등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깊게 읽었던 여러 작품들을 번역한 분이라 반가웠던 분이기도 하다. <동의>, <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을 번역한 분이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착취당하고 있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121

그들은 절대 그 누구에게든, 그 무엇이든, 요구하려고 든 적이 없다. 121

그들의 소외 탓에 불행한 사람은 나였다. 122

중학교... 일종의 지표 노릇을 한다. 그런데 부모와 함께 있으면 지표를 가질 수 없다... 난 울었고... 우니까 조금은 덜 미칠 것 같아서였다. 방금 읽은 책에 대해서 두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만 있었더라면. 41

저 가엾은 여자는 어그러짐 없는 조화도 믿는지 모른다... 지금의 그녀가 하는 말, 고수하는 원칙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그 이미지. 튀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부자는 아니지만 반듯하게 살자. 그녀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 183

또 한 끼 넘겼구나, 아버지가 말하고, 어머니가 피곤한 두 다리를 쭉 펴면, 나는 그 올무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 한다... 나도 내 부모처럼 자잘한 것들에 빠져서 길을 잃을 거야, 그 두 사람이 한 얘기를 또 하고 거듭 같은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진정 출구란 없다... 삶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해요. 그런데 저 여자는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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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둘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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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드라마의 익숙한 배우에 이끌려서 시청한 작품이었는데 의외로 좋아하는 대사들, 장면들이 자주 등장해서 책으로 읽은 시간들이다. 양장본이며 책으로 읽는 것은 조금은 다른 내용들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영상미가 가지는 작품성과 활자가 전달하는 작품성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 소신들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게 불이익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과하거나 반성하게끔 할 것이 아니라 관계하지 않는 편이 제일 좋답니다 143

인생의 정답은 없다. 멀직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그들의 삶을 다 이해하였다고 자만해서도 안된다. 주인공 그녀가 바라본 엄마의 인생과 삶, 식당 경영철학에 대해서도 자문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불륜인 줄 모르고 사랑한 스님에 대해서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대화에서는 "불치병이야, 불치병."이라고 하면서 외도하는 남자임을 깨닫고 평생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주시하게 된다. 딸을 낳아서 홀로 키웠던 엄마는 그 시대에 타인의 따가운 편견과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살아온 여성이기도 하다. 찻집 아주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엄마의 인생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장사가 언제나 손님들로 넘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배우는 그녀. 엄마의 식당에서는 지금과 같은 일이 없었기에 엄마의 식당 경영에 대해서도 되짚어보는 그녀를 마주하기도 한다. 엄마와 가까웠던 사이가 아니었던 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식당 경영을 하면서 고민하는 것들 덕분에 엄마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들을 채우는 시간들도 가져보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한산한 가게에 서 있는 두 직원의 뇌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수행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 두 사람의 대화도 기억 속에 담기는 장면이기도 하다.

만드는 사람이 올곧아야 올곧은 게 만들어지는 법 72

몸을 움직여서 성실하게 하면 어떻게든 돼 74

아주머니의 인생이 담긴 (커피)향 74

우리가 생각하는 식당과는 다른 궤도로 주행하는 이 식당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당일 조리한 음식만 판매하는 곳, 냉동식품은 다루지 않는 곳, 유기농과 무농약 채소를 담아내는 곳, 식재료 가격이 올라도 식당 음식 가격을 올릴 수 없는 곳이다. 디저트를 내놓고 싶어도 앞 가게의 찻집을 생각해서 차음료를 판매하지 않는 곳이다. 직원 한 사람과 운영하며, 준비된 음식이 소진되면 영업종료를 강행하는 식당이다. 홍보 의뢰가 들어와도 거절하는 곳. 블로그도 하지 않는 곳이라 휴무일을 전달하지도 못하는 곳. 좌충우돌하면서 경영의 문제점들을 돌아보지만 흔들림이 없는 그녀의 식당.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고 준비하면서 손님들의 반응과 손님층의 변화도 주시하는 그녀이다. 직원과 나누는 대화와 직원을 배려하는 모습, 직원의 소중함을 아는 사장이기도 하다. 매장의 분위기도 깔끔하고 테이블은 몇 개만 준비된 작은 공간. 가격도 높은 편이다. 그래도 손님들은 찾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채소. 영양가가 없는 F1 종이 아니라 고유한 토종 씨앗으로 재배. 빵도 천연효모로 발효해 굽는다.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 요즘에는 내용물은 뒷전이고 무조건 대량생산을 해서 가격을 낮춰야 성공적이라고 본다. 42

찻집 아주머니도 기억해야 하는 인물이다. 직원과 나누는 대화들도 기억 속에 자리 잡는 대화들이 많았던 작품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바라보는 찻집 아주머니의 모습과 그녀의 초대에 함께 보낸 시간들의 그녀와 나눈 대화들과 모습들은 또 다른 따스함이기도 하다.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면서 충고하였던 찻집 아주머니의 모습의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찻집 아주머니는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을까요. 21

엄격한 분. 아주머니 같은 사람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야. 편견도 심했고, 세상 자체가 여자한테 친절하지 않았으니까. 22

엄마의 옛 동료인 분이 찾아와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에 직원이 오지랖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직원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스타일, 모습들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녀의 이야기들도 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키웠던 고양이를 그리워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따스한 정을 나누고픈 그녀의 마음들이 고양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스포츠를 하다 보면 머릿속이 이기고 지는 관념에 사로잡히기 쉽지만, 인생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니까. 14

작가의 작품은 분명한 색조가 있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작품의 색채에 매료되어서 읽었던 2권 구성의 일본소설이다. 또 다른 작품들도 관심을 가져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드라마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드라마도 재미있고 책도 좋았다. 기억에 남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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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학생 같은 옷차림. 웃고 큰 소리로 떠든다. 밤. 자기들에게 주목해 주기를 바라는 알 수 없는 작위성을 느꼈다. 121

한 번도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 것. 남자 손님.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눈앞에 있는 샌드위치와 수프에 집중한 분위기다. 84

그런데 그 착한 애가 왠지 애처롭더라. 보다 보면 가끔 안타까웠어. 공부를 잘하고, 예의 바른, 판에 박은 듯한 우등생이라서 안쓰러웠다고 67

호박스프. 감자스프. 시금치스프. 통밀식빵 샌드위치

몸에 들어가는 건 역시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야 해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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