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작가의 소설들을 릴레이 독서중이다.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단 한 사람』 작품에 이어서 읽은 최진영 소설이다. 무관심하고 외면하면서 질문조차도 하지 않는 인생부터 살펴보게 한다. 페스트 소설에서도 무관심한 군중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의 원도라는 남자도 자신의 인생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자신의 삶이지만 한 번도 자신의 인생에 진지하게 관찰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자신의 인생을 외면하고 질문하지도 않았던 날들은 지금 원도가 있는 여관방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왜 여관방에 있는 것일까? 철저하게 혼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원도라는 남자가 궁금해진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지금 왜 죽음을 앞에 두고 죽지 않고자 처절하게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는지 만나게 된다.
원도에게는 죽은 아버지가 있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원도의 스케치북에 메모한 글은 휘갈겨 쓴 글씨가 아니다. 그 글씨를 원도는 무한히 기억하며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왜 그러한 문장을 남겼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을 주면서 마시라고 한 죽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원도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완벽하지는 않다. 누구도 죽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죽은 아버지가 누구이며, 왜 죽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머니와 산 아버지라는 경찰이 직업이었던 아버지가 있다. 원도는 왜 자살을 생각하는 현재 죽은 아버지를 무수히 떠올리며 자신의 지난 인생들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일까?
모든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익숙해진 원도 237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온전히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위한 기억하는 시간을 여관방에서 보낸다.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무한히 기억하게 된다. 그들은 원도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원도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던 것인지 솔직한 원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왜 도망자가 되었고, 파산하였고, 이혼한 사람이 되었는지 원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인정받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잘 사는 기준이었던 원도가 있다. 잘 사는 기준이 정답이었을까? 원도의 아내가 원했던 것들과 원도가 범죄를 저지르지만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와 파산이 되었던 이유들도 전해진다. 알맹이만 챙겨서 재빠르게 원도의 곁을 떠나버린 아내와 딸을 원도는 자살 직전에 생각하게 된다.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인생이 되었던 이유들이 그의 기억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연애 시절, 결혼, 직장 생활을 통해서 그의 가치관과 성격들은 현재의 자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 문장을 읊조릴수록 원도의 인생과 사랑의 무게감을 가름하게 된다. 그에게는 진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허수아비처럼 텅 빈 가슴과 텅 빈 눈으로 살았던 지난날들을 보여준다. 만났던 연인들이 그에게서 원했던 것들을 그는 허투루 귀담아듣지도 않는다. 아내가 그렇게 자신을 떠난 이유도 다르지가 않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연인, 직업까지도 제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원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살펴보지도 않았던 날들이 무수히 많아진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이 결코 잘 사는 기준이 아님을 원도를 통해서 작가는 보여준다. 개정판으로 읽었던 소설이다. 초판의 작가의 말과 개정판의 글, 그동안 읽었던 작가의 여러 작품들까지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죽고 싶지만 죽지 않는 이유들을 계속 찾고 있는 원도를 만난다. 죽지 않는 이유들을 원도는 제대로 찾아냈을까? 타인의 모습들에서도 죽음을 앞둔 사람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작가는 날카롭게 전하기 시작한다. 여관 주인과 원도의 돈을 몰래 가져갈려는 사람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더불어 원도가 은행에서 타인의 돈을 자신의 돈처럼 가져가서 사용한 사건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사건이 된다. 그의 모습에서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타인보다는 자신이 중심에 서있을 뿐이다. 타인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사라진 세상, 타인의 인정과 시선은 중요하지만 타인은 배제되는 이기심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 작품이다. 원도의 남은 삶은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해진다. 그것은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게으르고 고집이 세고 편식하는 아이였던 원도이다. 깔끔하지 못하고 버릇없고 미숙하며 불성실한 아이였으며 거친 입을 가지며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원도이다. 원도가 던지는 질문들은 뒤죽박죽의 형태로 이어진다.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분위기이다. 그가 죽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들의 욕망과 강탈, 모락의 의지들이 기억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한다. 장만석과의 경쟁 구도, 불행과 지옥을 맛보는 원도의 인생이 기억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마음과 영혼이 왜 중요한지, 단 한 방울의 독으로 지옥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무관심하면, 외면하면, 질문하지 않으면
애써 도망칠 필요도 없었다.
잘 사는 기준은 타인의 시선과 인정으로 만들어졌다. 233
결국 혼자 남았다. 94
"나보다 가진 게 많아서? 그래서 장민석이었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 알지는 못했다.
그녀가 그의 말을 나름대로 이해한 후 내뱉은 말.
"그렇게 살아. 그렇게만 살아.
그래야 당신답지. 그게 바로 당신이지. "232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
사람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았다. 529
_농담. 밀란 쿤데라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 P183
좋은 기억도 있다. 아기 살결과 같은... 단 한 방울의 독으로 모든 그림이 바뀐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죽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 이 지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 P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