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어. 희랍어. 책에서 희랍어를 가끔 마주하게 된다. 언어가 가진 유사성을 찾고 의미를 함께 떠올려보면서 언어가 가진 의미를 깊게 들여다보게 해 준 책이다. 음절, 문장 등 언어를 분석하는 것에는 흥미를 가지지 않았기에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언어를 차분히 생각하게 해준 값진 시간으로 떠올리게 된다.

명료하지 않았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선명해지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 두 사람. 그녀와 그. 두 사람의 현재와 과거를 통해서 그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이 말과 눈만이 아니라는 것을 소설은 전해준다. 그녀가 성장한 환경과 사건들, 성인이 되어서도 하나씩 잃어가는 것들과 빼앗긴 것들이 열거된다. 되찾고 싶은 것, 소중한 한 가지, 아이와 나눈 추억들과 대화들만이 선명하게 그녀와 함께 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지어준 인디언 이름도 강하게 기억되는 작품이다.

그의 가족 이야기, 그가 시력을 잃어가는 이유, 그의 어머니가 생계를 이어가며 지긋지긋하게 싫어한 미소에 관한 이야기, 냉정한 사람이라고 명명하는 그의 아버지에게 그가 어떤 연민도, 흔적뿐인 애정도 없이 그에게 묻고 싶어 했던 것이 강하게 기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실하는 것들과 빼앗기는 것들을 두 주인공들을 통해서 떠올려보게 한다. 그 시절에 경험한 것들을 잃어가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빼앗기고 난 후의 상실감은 마음의 흉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피부 결에 남겨진 흉터가 되기도 한다. 말을 잃어가는 그녀와 시력을 잃어가는 그가 말이라는 소리를 통하지 않아도 언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서로가 소통하면서 서로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작품은 전해준다.

문장이 쉽지 않아서 여러 번 읽어가게 한 작품이었지만 꼭 이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해보고픈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끝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과도 같은 것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 아니었기에 또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읽은 작품이다. 작품 중반부부터는 속도감이 붙어서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다.


책 중에서

그가 싫어한 것은 내 기질이 아니라 눈이었다는걸. 냉정한 사람. 어떤 연민도, 흔적뿐인 애정도 없이 그에게 묻고 싶어. 82쪽

그녀의 말들은 끊길 듯 말 듯 떨리거나, 끝내 토막토막 끊어지거나, 한 움큼 떨어져 나온 살점처럼 뭉개어지며 썩어갔다. 164쪽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 165쪽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잠길 수 있다는 건. 161쪽

수난을 겪다.
배워 깨닫다.
희랍어가 거의 흡사하다. 8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