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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1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평점 :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민음사 신간도서 세계문학전집이다. 여러 편의 단편소설들 중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소설을 다시 읽을수록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를 함께 공감하게 된다. 신기루처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누구인지도 살펴보게 된다. 기욤 뮈소 장편소설 『안젤리크』에서도 안톤 체호프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이 책의 여러 소설들에서 찾아보게 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소설에서는 두 남녀는 각자 결혼한 사람들이다. 안나라고 하는 그녀가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남자가 있다. 그녀는 2년 결혼생활을 하였지만 자신의 남편이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제대로 설명조차도 하지 못한다. 남편을 자신의 하인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아내이다. 남편이 하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아내이다. 여행지에 오게 된 이유도 이야기한다. 그녀가 남편을 속인 것이 아닌 자신을 속인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오래전부터 속여왔다는 사실을 그녀는 문득 깨닫는다.
남자는 은행일을 하는 직장인이다. 모스크바에 두 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이며 아내와는 대학 재학 시절 결혼한 사람이다. 자녀가 있지만 아내와 시큰둥하게 지내면서 불륜을 저지르는 무수히 많은 여자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다양한 여자들을 만났고 그 여자들이 대체로 어떤 부류의 여자들이었는지도 기억한다. 더불어 아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그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자리에 함께 참석하는 용도로 쓰임을 다하는 아내도 흐릿하게 작은 점처럼 보일 뿐이다.
그녀가 갑자기 남편을 향해서 급행열차를 타고 떠나면서 서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마지막 말을 나누게 된다. 그도 지금까지 지워졌던 수많은 여자들처럼 그녀도 그렇게 기억 속의 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곳까지 찾아가서 그녀와 만남을 가지면서 그들은 다시 밀회가 시작된다. 그녀가 그를 찾아오는 만남을 가지면서 그들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결혼한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삶을 향한 문제들을 풀어가고자 기나긴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쉽게 매듭이 풀리지 않을 그들 앞에 놓인 문제와 사랑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작가도 이들의 운명과 사랑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로 남기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삶과 죽음에 무관심한 인간들의 보편적인 모습들을 작가는 언급한다. 완전한 무관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군중들의 움직임을 지적하면서 구원의 증거와 삶의 증거가 숨어있을 거라는 것도 이야기한다. 그의 일상을 가득하게 채우는 반복적인 폭식, 폭음, 카드놀이, 똑같은 대화가 지니는 상징성과 무의미한 것이 조명된다. 가장 좋은 세월을 무의미한 것들로 채우고 있지 않는지 질문을 하면서 가장 건강한 힘을 빼앗기고 있는 것들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선택과 행동이 지닌 삶은 날개가 꺾인 삶이며 실없는 말이며 꼬기가 잘린 삶이라고 단언한다.

지겹고 권태로워지면서 두통과 불면증을 호소하게 되는 그가 그녀를 다시 찾아가고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에게는 두 개의 삶이 존재한다. 조건적 진실과 조건적 거짓이 가득한 삶이 그중의 하나이다. 그 삶은 적절한 거짓과 진실이 버무려진 누구나 볼 수 있는 삶을 의미한다. 반면 또 다른 삶은 은밀한 삶을 의미한다. 그가 두 삶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발견할 수도 없는 진실이 존재하는데 그는 그녀를 만나면서 사랑을 하지 않았던 많은 삶들을 드디어 깨닫게 된다. 지금 그녀와 함께 하고 싶은 삶과 죽음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샤이닝』 소설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뒤늦게 후회하는 것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진지하게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자문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사랑하지 않는 결혼,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부부,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가족, 사랑이 없는 사회는 더욱 심각해진다. 사랑은 삶의 근원이며 행복의 기초가 된다. 그녀가 불행했고 앞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였지만 그녀와 그가 드디어 발견한 것은 사랑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이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거짓된 삶, 가면적인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보여주면서 진짜 사랑, 진지한 삶을 향한 날카로운 작가의 통찰을 만나게 된다.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다. 일상에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것을 놓쳐버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다. 무관심하게 놓쳐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소설이다.
얼마나 야만적인 습관이면 야만적인 인간들인가! 얼마나 무의미한 밤이고, 전혀 흥미롭지 않은 그저 그런 나날인가! 카드놀이, 폭식, 폭음, 언제나 똑같은 내용의 대화...결국 남는 것이란 꼬리가 잘리고 날개가 꺾인 삶, 실없는 말뿐이다. - P240
그에게는 두 개의 삶이 있었다. 하나는 필요하다면 누구나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삶, 조건적 진실과 조건적 거짓으로 가득 찬 삶...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삶이다. - P247
보편성 속에, 우리들 각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 속에 어쩌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증거, 이 지상에서 끊임없는 완성을 향해 부단히 움직이는 삶의 증거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 P234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함께해서 행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여자들과 사귀고 만나고 헤어졌지만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사랑만은 결코 아니었다. - P250
남편을 속인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속였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속여 왔어요. 제 남편은 하인에 불과해요. 그 사람이 거기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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