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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의 작품들로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 『올리브 키터리지』, 『무엇이든 가능하다』, 『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 등이 있다. 노년의 시간을 부쩍 자주 바라보게 되면서 이러한 책들을 자주 기웃거리는 계절이다. 노년의 시간에 노인이 감당하는 시선의 무게들이 날것으로 전달된다. 불편해진 몸, 고통의 나날들, 노년의 부끄러움과 사랑도 전해지는 소설이다.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에코의 위대한 강연』에서 긴장하면서 읽은 문장이 있다. 인종의 적으로 간주된 1798년 미국에서 흑인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게으름, 배신, 복수심, 잔인함, 뻔뻔함, 도둑질, 거짓말, 외설, 방탕, 비열, 무절제" (93쪽) 사전에 기록된 흑인이다. 이것을 고스란히 의심없이 이해하고 학습된 사회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넷플릭스 <아웃랜드> 시리즈에서 생생하고도 잔혹한 역사를 마주보게 된다. 기록하고 정의 내린 자가 누구이며 편견을 누구에 의해서 학습되어 왔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아들이 엄마에게 편집증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을 노년의 어머니는 기억하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의식중에 단단하고도 견고한 편견은 없었는지 잠시 멈추면서 둘러보게 하는 자숙의 시간이 된다. 단단한 껍질처럼 정신세계가 누군가에게 학습되고 치우친 것들은 없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노년의 시간은 더욱 그러한 시간이 필요해진다. 너무나도 단단하게 굳어버린 정신세계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협소한 세계에서 우울 안에서만 살아간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무관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면서 편견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고자 책의 세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편견을 갖고 있었음을 떠올렸다. 그랬다. 거의 부지불식중에 그녀는 ... 그런 편견을 가졌던 것이다... 언젠가 아들이 " 엄마는 편집증이에요."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343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올리브는 늘 다른 사람이 모르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올리브는 그것이 행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너무 늦게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소설은 올리브를 통해서 전한다.
텅 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트렁크>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그러하다. 불안에 침식된 모습은 온전히 자신이 주인이 아닌 사람임을 보여준다. 너무 늦지 않게 자신을 알고,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내는 것은 무용한 시간이 아님을 이 소설에서도 올리브를 통해서 거듭 확인한다. 노년의 시간이 아닌 조금만 더 일찍 자신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자신을 만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즐거움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유희들이 오늘도 유혹의 손짓을 하지만 그것이 진짜 즐거움이 아님을 알고 나를 온전히 마주 서는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들이 소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차곡히 쌓여가는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짙어지는 주름과 흰머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주름을 지우고 염색약으로 지워버리면서 중년의 시간의 의미와 노년의 의미를 뒷전으로 밀어놓으면 안 되는 이유를 올리브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랑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소설은 말한다. 주어진 삶, 주어진 시간을 무심하게 흘려보내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을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진짜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고 살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을 『다시, 올리브』를 통해서 배우게 될 것이다.
'세상을 추하고 악하게 보는 종교가 세상을 추하고 악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한 니체의 글을 『에코의 위대한 강연』에서 읽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매일 아침 문을 열 때의 아름다움에 대한 희열을 깊게 들어마시게 된다. 숲이 보이는 집의 문을 매일 아침마다 열 때마다 느끼는 그 아름다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축복이다. 축복을 노년에도 만끽할 수 있는 잭과 올리브의 청혼하는 이유와 장면은 다시 읽어도 명장면이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왜곡되고, 결혼마저도 순수하지 않는 세상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잭과 올리브를 기억하게 하는 소설이다.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그가 견뎠을 외로움을,... 지금도 견디고 있을 외로움을. 110
'외로움'을 직시하는 작가이다. 외로움이 어떤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깊은 그늘에 가두는지 보여준다. 입을 벌린 어둠이라는 외로움을 잘 살피면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언제나 슬픈 얼굴을 하였던 학생을 기억하며 늘 외로웠을 거라고 말하는 이유와 접목한다.
삶을 낭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작품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무분별하게 휘청거리게 하는 것들이 많은 사회이다. 온전한 삶을 누리며 즐기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라고 한다. 자기 색을 지키기 위해서 무수히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여야 하는 이유들이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자식과 나빠진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그렇게 살았던 자신은 눈먼 사람과 다르지 않았던 인생이라고 떠올린다. 가족들과 잘 지내는 것도 숙명이며 숙제와 다름없는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소설이다. 어떤 삶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도 던지는 질문이 된다.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그가 견뎠을 외로움을,... 지금도 견디고 있을 외로움을. - P110
(자식과) 이렇게 된 원인은 올리브 자신에게 있었다... 올리브는 자신이 눈먼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왔다고 느꼈다... 앤(며느리)과 같은 행동. 사람들 앞에서 헨리에게(남편) 소리를 질렀다. - P149
정체성을 빼앗긴 채 살아온 것이다. 자신이 중요한 뭔가를 놓쳤다고 느꼈다. - P277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 P310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잭이 올리브에게 청혼) - P336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집 앞문에서 숲이 보였다.) - P335
모든 사랑은, 자신이 의사에 대해 품었던 그 짧은 사랑을 포함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 P421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고, 그건 행운이었다... 올리브는 깨달았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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