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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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그중에서 『병조림』, 『솔기2편의 단편소설에서는 가족의 죽음으로 남겨진 사람의 남은 일상들을 보여준다. 『병조림』은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무직자인 중년 아들의 이야기이다. 중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 텔레비전만 보았던 아들이다. 어머니의 연금도 서서히 바닥이 나는 상황이라 구직 활동을 서둘러야 하지만 그는 아직도 시간은 충분하다고만 생각한다. 어머니가 좋아한 집안의 공간은 지하실이다. 아들은 한 번도 어머니가 좋아한 지하실을 가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지하실을 궁금한 적도 없었던 아들이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어머니가 머무르기 좋아한 그 공간을 처음으로 가보게 된다. 그곳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곳이었고 수많은 병조림들이 발견되면서 아들은 놀라워한다. 라벨에 표시된 것들을 보면서 아들은 맛을 보기 시작하는데 맛이 일품이라 더욱 만족스러워한다.

어머니에게 남편과 아들은 무거운 짐과 같은 존재였다. 평생 빨래와 다림질, 장을 봐야 했다고 아들에게 한탄을 하지만 아들은 귀담아듣지도 못한다. "아기 새들도 모두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난다. 이게 순리야. 부모도 좀 쉬어야지. 이건 모든 자연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야. 대체 왜 이렇게 날 괴롭히니? 넌 벌써 오래전에 집을 떠나서 자신의 삶을 꾸렸어야 해... 나도 그만 쉬고 싶단다." (55쪽) 노년을 편하게 보낼 권리를 아들에게 말하지만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타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짊어지게 했는지 짧은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전달되면서 남겨진 아들이 맞이하게 되는 죽음은 기묘한 우연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들이 집안에서 발견한 병조림들 중에는 기괴한 라벨을 가진 병조림도 발견된다. 식초에 절인 신발끈이라는 병조림, 토마토소스에 담긴 스펀지 발견이 되면서 어머니가 사랑하고 열정을 쏟았던 병조림으로 감정들이 표출된 것임을 감지하게 된다. 이러한 기괴한 병조림을 보면서도 아들은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은 환기가 되지 않아서 썩기 시작하여 퀴퀴한 냄새로 가득해진다. 아들의 게으름과 무능함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살아생전에 어머니가 그 모든 생활들을 홀로 감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아들은 혹시나 유가 증권이나 현금이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가지지만 그것들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TV 앞에서 시청을 하면서 병조림을 다 먹어치웠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리고 구토 증세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게 되면서 그는 간 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기증자를 찾지 못하여 며칠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어서 그의 시체는 어머니의 친구들이 수습하게 된다. 노년의 삶을 편안하게 살고 싶어 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한 중년 아들은 어머니에게는 무겁고도 무거운 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유산으로 남겨진 병조림은 어떤 의미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솔기』 단편소설에서는 아내가 죽은 후 남겨진 노쇠한 B 씨의 이야기이다. 아내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는 아내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그는 최근에 잠을 설치는 상황이다. 무념무상의 둥그런 삶, 먼지 덩이 속에서 살아가는 삶, 바닥 틈새에서 살아가는 삶들을 포착한 작가의 시선이 아내의 구슬 목걸이와 잠 못 드는 수많은 밤들을 통해서 사색하게 한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디에 정착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없는 삶들로 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마주하게 한다.

"죽은 아내의 오래된 구슬 목걸이처럼 밤은 자꾸만...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꽤 많은 구슬을 찾지 못했다. 구슬들이 ... 어디에서 무념무상의 둥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먼지 덩이 속에 장착했으며, 바닥의 틈새 어디쯤 둥지를 털었는지 종종 궁금한 마음이 들곤 했다." 59

양말의 솔기를 보면서 사소한 생각에 강한 흥미를 느끼는 그의 일상들이 이야기된다.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정리하고 스케줄에 익숙해지면서 그는 자신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인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게 된다. 이웃집에서 창문 청소를 하는 모습에 자신도 갑자기 뭔가를 해야겠다는 초조감도 느끼기 시작하면서 먼지가 소복히 쌓인 400 여장이 넘는 편성표를 버리게 된다. 하지만 곧 후회하고 다시 되찾고자 하지만 사라진 것을 알고 울기까지 한다. 아내가 떠난 후 남겨진 노쇠한 그의 일상은 예전의 삶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아내 옷장에 여전히 남은 옷들을 정리하면서 아랫집 여자에게 선물을 하게 되는데 모피를 보자 여자가 보이는 욕망까지도 날카롭게 조명한다. B씨와 아랫집 여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질문하는 것들을 듣는 여자는 긴장과 실망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여전히 잠을 설치는 그가 아내의 잠옷을 안고 잠이 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가 흥미를 보였던 것들 중에는 우표의 모양이 다르게 보이는 기묘한 현상과 볼펜의 색이 갈색이라 싫어한 그의 반응들까지도 이야기된다. 갈색을 연상시키는 썩은 나뭇잎, 마루 광택제, 축축한 녹, 끔찍한 황토빛 흔적이라고 떠올리는 그의 일상들이 하나씩 이야기된다. 가족들 중에서도 홀로 남겨진 사람이 어떻게 노년의 삶을 살아갔는지 떠올려보게 된다. 먼저 죽은 아내의 흔적들을 무수히 떠올렸을 남겨진 사람의 남은 시간들을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 상기하게 한다. 낡은 모래시계 시간의 흐름이 노년들에게는 더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나누는 대화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인생의 가을이며 겨울이 되는 시점에 갈색을 싫어했던 그의 이유들을 함께 떠올리게 한 소설이다.


모피 / 욕망의 기색은 감춰지지 않았다. 69

진정한 새해란 달력의 날짜가 아닌 봄과 함께 시작되기 때문. 해묵은 과거의 흔적을... 수거함에 던져 넣었다. 갑자기 공항 상태 65

TV 프로그램의 조직적인 스케줄에 적응... 하루 중 어디쯤 와 있는지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날이 반복 62

죽은 아내의 오래된 구슬 목걸이처럼 밤은 자꾸만...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꽤 많은 구슬을 찾지 못했다. 구슬들이 ... 어디에서 무념무상의 둥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먼지 덩이 속에 장착했으며, 바닥의 틈새 어디쯤 둥지를 털었는지 종종 궁금한 마음이 들곤 했다. - P59

갈색 / 썩은 나뭇잎, 마루 광택제, 축축한 녹, 끔찍한 황토빛 흔적 - P67

모피 / 욕망의 기색은 감춰지지 않았다. - P69

세상이 변한 것 같지 않나요?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게 말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노쇠해지는 바람에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마치 오래된 모래시계 같지 않나요?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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