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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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인간』

단편소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한곳에 모은 디 에센셜 한강 책이다.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단편소설 두 편, 시 다섯 편, 산문 여덟 편으로 구성되는데 이중에서 『회복하는 인간』이라는 단편소설을 지긋하게 천천히 읽으면서 치유를 내밀하게 문학적으로 만난 소설이다. 반복되는 말들을 여러 번 곱씹으면 강조되고 있는 이유들을 차분하게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라디오 작가인 그녀와 몇 살 차이가 나는 언니가 있다. 외모도 언니가 월등하지만 언니는 여동생에게 열등감을 표출하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결점들을 오히려 언니는 무한히 질투하고 있었음을 들려준다. 자매가 서로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언니가 소파수술을 한 대학 4학년 겨울이다. 그때 여동생은 대학 1학년이었고 언니의 비밀을 부탁하지 않아도 여동생은 비밀을 지키는 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언니는 그 사건 이후로 여동생에게 냉대하다. 그때 언니가 동생에게 '통념'과 '견디는 것'에 대한 이야기한다. 사회적 통념 뒤에 숨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언니가 어떻게 통념 속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견디었는지는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실적으로 전달된다. 언니는 더 이상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으로 존재한다. 질병으로 고통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언니는 여동생에 대한 감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언니와 대화를 하고자 망설였던 여동생의 기회들은 갑자기 무산되어버린다. 회복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들을 놓쳐버린 자매, 남겨진 여동생의 시간들은 너무나도 천천히 흐르게 된다.

다친 발목 통증을 치료하려다가 오히려 여동생은 화상을 입게 된다. 심각하지만 의사는 수술보다는 자연적인 치유를 기대하면서 시간들을 공들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상황보다 더 느리고 더딘 회복을 보였던 여동생의 모습에 의사는 의아해하면서 다행히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것에 안도한다.

여동생의 내면에 회복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것과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자전거 타는 것이었음을 떠올리면서 동생은 자신이 사랑한 것들을 서서히 보기 시작한다.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도 엿보게 된다. 바쁜 일상이 정답이 되지 못하지만 무심하게 자신을 돌보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까지도 여동생을 보면서 포착하게 된다. 자신보다 일을 더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는 것은 정답이 되지 않는다. 작은 상처이지만 몸은 거짓 없는 반응을 보인다. 자신을 돌보고 자신을 살피는 만큼 놀라운 치유의 기적은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는 것이 죄가 아닐까라는 조마심도 이겨내면서 그녀는 서서히 자연 치유를 하게 된다. 회복되는 과정에는 자기 의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인에 의해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여동생의 지난날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즐기면서 기뻐해야 회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타자에 의해 짓눌린 감정들이 괜찮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전혀 괜찮은 것이 아님을 소설은 보여준다.

라디오 작가인 여동생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수많은 날들을 전혀 모른다고 작가는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상처로 얼룩진 내면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과정에 때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도 보여준 소설이다. 어두운 공간에 홀로 잠 못 드는 깊은 밤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늙은 왜가리가 고요하고 느리게 먼 곳을 바라보면서 응시하는 것도 상징적으로 들려준 이야기이다. 한 사건에 고여있는 삶은 발전적이지 못하며 인간관계까지도 녹슨 감정을 연장시켰음을 보여준다. 회복하는 인간, 깨어나는 인간, 치유되는 인간은 자발적으로 역동성을 띠면서 계속 나아가는 사람임을 보게 된다. 여동생이 자전거를 타고 멈추지도 않고 계속 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타자에 의해 젊은 날 보내버린 날들을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 소설이다. 새살이 차오르는 상처처럼 자신을 방치하면 치유도 더디며 회복되는 과정도 느리고 기회마저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몸을 돌보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마음을 잘 살펴보는 여유, 아픈 상처는 없었는지 돌아보면서 자신의 의지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때로는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출발도 필요해진다. 언니의 소파수술은 여동생의 잘못이 아니지만 언니는 여동생을 차갑게 대면했고 동생은 언니의 죽음에서도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좋은 죽음'은 무엇인지 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살아온 삶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떠난 언니로 인해 동생은 느린 회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족이지만 남보다 더 먼 관계들도 많아 보인다. <조립식 가족> 드라마를 보면서 이 소설을 읽어서 더욱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 소설처럼 가까운 가족들끼리 더 질투하면서 상처를 주는 가족들도 많아 보인다. 어느 누구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부당한 미움과 질투에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여동생이 언니의 죽음으로 해결하지 못한 미지근한 아쉬움과 미련에 고통의 나날들을 보낼 거라고 여동생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소설에서도 언급된다.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삶을 살아도 통념 뒤로 숨어버린 언니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읽는 동안 여동생의 과묵함과 신뢰를 고마워하지 않고 질투하였던 언니는 동생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언니의 죽음 이후를 보내면서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 견디고 버틴 이유들이 전해진다. 누군가를 질타하고 질투하는 어리석음이 너무나도 무용해지는 순간이다. 스스로 회복하고 계속해서 치유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그녀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그전에 꼭 한 번 자전거를 탄다면 죄일까? 236

사람들이 어떻게 통념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통념 뒤에 숨을 수 있어서. 230

언니는 그날 이후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229

당신과 언니, 둘 가운데 누가 더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228

당신이 끈덕지게 되돌려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모른다. 242

당신은 모른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당신의 손이 거푸 떨리라는 것을 모른다. 241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채 ... 239

그러나 당신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간다. 239



친숙한 감정을 내부에서 깨우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마음을 최대한 차갑게, 더 단단하게 얼리기 위해 애썼다. - P231

끈덕지고 뜨거운 그 질문들을 악물고 새벽까지 뒤척이리라는 것을 모른다. - P243

이 모든 통각들이 너무 허약하다고 - P243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 P241

자책을 멈추지 못했다... 말하려 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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