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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4 ㅣ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평점 :
예소연 소설 『그 개와 혁명』
소설과 인터뷰 글로 구성된 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소설을 만날 수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2024년 뜨거웠던 여름날 골라서 읽었고 다시 펼친 문장들은 예사롭지 않게 마음을 휘젓는다.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였는지도 들려주는 인터뷰 글도 구성된다. 함윤이 소설 『천사들』에 이어 예소연 소설 『그 개와 혁명』을 펼치면서 작가가 오랜 시간 바라본 한국 사회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첫 문장 / 태수 씨는 죽기 전까지 통 잠을 못 잤다.
우리의 시간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진실된 마음을 여러 날을 사유하게 한다. 한껏 차서 가득한 마음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살아왔는지부터 살펴보게 한다. 가득하고 벅찬 기분으로 시간들을 만끽하였는지 무심하지 않게 둘러보게 하는 문장이 좋았다. "여러분의 시간은 제 시간보다도 조금 더 충만하기를 바라봅니다." (97쪽)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그다지 충분하지 않는 소식들로 가득한 분위기이다. 모두가 충만하기보다는 일부만이 충만한 시간들로 채우고 배불리는 것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문학은 그러한 사회를 스쳐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들 앞에 가져다 놓고 충만하지 못한 이유들을 작가는 조각조각 들여다보게 한다. 그중의 하나가 죽음이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직시한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게 전해진다. "자본의 배를 불리는 식으로는 사회는 올바르게 굴러가지 않는다." (54쪽)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을 교묘하게 알아챈 자본주의는 환자를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고 말하는 인물이 자신의 죽음보다도 남겨진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와 세상을 더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 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73
공 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82
암 진단비, 암 수술비, 항암치료와 요양병원 비용은 죽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는 비용은 죽는 비용에 견줄 수 없다는 예리한 문장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꼬집는다. 사는 비용도 만만찮았던 2024년 한국 사회에서 죽는 비용이 가중된다면 얼마나 힘든 세상을 살아갈지 자녀를 걱정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자본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식견이 요구되는 시대이지만 학교교육과 사회는 과소비를 더욱 부추기면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과는 멀어지게 하는 것이 요란스럽기만 하다. 수많은 길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책이다. 이 책에서도 아버지가 딸과 나누는 대화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남겨질 자녀들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마음들이 감지된다. 죽는 비용과 사는 비용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펼쳐놓는 것에 매료되면서 작품은 더욱 깊은 질문들로 초대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민낯을 여러 도서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뻔해 보이는 방식을 답습하면서 소수 권력자들은 그들의 배만을 불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회임을 잘 바라보는 힘이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임을 잊지 않아야 하는데 적이 누구인지도 소설은 명확하게 짚어낸다. 바로 자본주의에 유용되는 제도들을 파악하는 힘이 절실해진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죽도록 즐기기』책에 등장하는 많은 군중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주식으로 천만 원을 잃었다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는 왜 주식으로 노동한 소중한 비용을 잃게 되었는지 자문해야 하는 인물이다. 사회적 분위기, 흐름에 죽도록 즐기기 자세로 무분별하게 투기하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끊임없이 손짓을 하는 사회이다. 그것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도 스스로 구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사회는 생각하지 말라고 부추긴다. 책을 읽지 않아야 생각하는 힘이 없어질 것이며 글쓰는 힘이 없어야 저항력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유희만을 쫓고 즐거움과 오락만을 쫓는 것이 점점 비대해지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란한 흐름과 유행에도 잠잠히 자신만의 세상을 지켜내고 고용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빛나기 시작한다. 바로 작가들이며 그 책들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둡지만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한국문학이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에도 기대감을 감추기가 어려워진다.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세상에 소설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층이 많아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가을이다.
딸이 2명이었던 태수가 있다. 그의 죽음과 장례식장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상주가 없다고 생각한 태수의 사고방식과 장례식장에 온 몇몇 노인이 아들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장면과 대응한 딸의 마음까지도 살펴보게 한다. 이해되지 않는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딸을 자식 취급하지 않는 이유와 그들이 고수한 인습과 관습들을 하나씩 상황들을 통해서 펼쳐놓는다. 많이 변화되고 있는 과도기를 보내는 한국 사회이지만 아직도 단단하고도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 남아선호사상에 아직도 놀라울 따름이다. 농경사회도 아닌데 아직도 아들이 상주 노력을 한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장례문화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해진다. 죽음 이후는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 좋은 것인데 사회는 여전히 상주는 남자여야 한다고 옛 방식을 고수한 세대 간의 사회문제도 꼬집어내는 소설이다. 답습하지 않는 자세가 절실해진다. 누군가 그들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따라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의미 있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다. 무의미와 의미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힘이 잘 사는 방식이 된다는 것을 태수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보여준 소설이다. 태수가 놓친 것들이 무엇이며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 소설은 번쩍 들어 올린다.
노동 문제에는 비판하지만 가사 노동은 외면하는 그의 태도에는 문제가 보이지만 그는 마지막 삶의 순간까지도 깨닫지 못했음을 작품은 매만진다. 차별을 직시하는 힘, 약자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시대이다. 혐오와 분쟁이 아닌 연대와 이해, 포옹이 절실하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 질문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다. 태수 씨처럼 사는지, 장례식장의 몇몇 노인들처럼 살고 있는지, 환경운동과 페미 운동, 가사노동, 노동문제까지도 관심을 가지는지 돌아보게 한다. 고학력자이면서 30대 여성을 줄임말로 고삼녀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그녀들의 마지막 종착지가 어디인지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고학력의 여자가 어디까지 쓰임을 다하고 어떻게 사회에서 쓰임을 다하는지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개발팀 고삼녀들의 마지막 종착지. 우스갯소리.고심녀란 고학력자 30대 여성의 줄임말 - P70
태수 씨는 내가 상주를 할 수 없는 제도가 몹시 못마땅하다고 했다. 내가 상주지? 응 - P79
몇몇 노인은 완장을 찬 내게 아들이 없어 안타깝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렇게 안타까울 일은 아니에요라고 맞받아쳤다. 애도하러까지 와서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사촌 동생이 남자라는 이유로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 P68
제사상 차리는 것... 반바지 못 입게...불필요한 인습이라고.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아버지 제사면 직접 과일이라도 놓으라고... 태수 씨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당신은 그걸 응당 받아들일 뿐이라는 듯이... 나는 분명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태수 씨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데. - P52
유연한 노동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불가산 노동인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사회는 조리 있게 굴러가야 하지만, 가족이라는 제도 안의 조리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 P59
나도 태수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떤 사람인데..."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 - P71
자본의 배를 불리는 식으로는 사회는 올바르게 굴러가지 않는다. - P54
온갖 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 P73
공 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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