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소설들을 계속 찾아서 읽게 된다. 최근에는 『원도』를 읽었고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도 다시 밑줄 친 글들을 읽었다.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작가가 힘주고 있는 것과 주시하는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들은 다르지만 작가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거듭해서 살펴보게 된다. 구의 증명도 그러한 과정 중에 다시 재독한 소설이다. 살아간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을 작가는 어떠한 시선으로 관조하고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원도』라는 소설과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 모두를 집약해서 살펴보게 된다. 어떤 소설은 읽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아니다. 다시 읽으니 또 상기되는 죽음과 산다는 것의 의미를 관조하게 한다.

세 인물의 죽음부터 살펴보게 된다. 병들어서 죽은 이모와 돈 때문에 죽은 인물,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시작하지 않을수가 없다. 돈 때문에 파장이 일어나는 세 인물의 죽음들을 보게 된다. 노마는 왜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었어야 했을까? 노마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노동환경을 직시하게 한다. 노마의 교통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임을 감지하게 된다. 노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책하면서 긴 시간 힘들어한 구와 담만이 작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외의 인물들은 빠른 시간 노마라는 존재를 잊고 일상이라는 곳으로 복귀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댓글 부대>영화를 시청 중인데 이 소설의 문장들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드러나게 한다. 큰 입을 벌리고 삼키며 인생을 작살낼 수 있는 것이 돈이다. <댓글 부대>와 함께 이 소설을 읽어서 돈을 묘사한 작가의 문장들이 더욱 섬뜩하게 두드러진다. 돈이 강자라는 것을 이 소설의 죽음과 긴밀하게 대조를 해보게 된다. 작가의 작품들에는 돈이 밀접하게 등장하는 <원도>소설도 떠올려보게 된다. 뾰족해진 이빨로 삼켜버리는 큰 입을 가진 원도라는 인물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를 찾는 여정은 뜨거워진다. 이러한 과정조차도 없이 사라진 죽음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상기해야 하는지도 대조를 이루게 된다.

유전적인 병으로 빠르게 죽어가는 이모의 죽음에도 돈은 깊숙하게 자리잡는다. 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빚이 생기는 상황에는 부모의 빚이 엄청난 불행의 원인이 된다. 연대책임자로 지정된 자식은 어린 나이에 시장과 공장, 편의점에서 노동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줄어드는 빚이 아니라 일을 할수록 늘어나는 빚이 구를 집어삼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돈도 유전되고 병도 유전되면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은 더욱 가난으로 내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소설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출발부터가 다른 인물들이 맞이한 죽음에는 돈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매만진다.

담이 사랑한 구, 구를 사랑한 담의 사랑이야기에는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향하게 된다. 담의 사랑이 절절하다. 담은 구의 모든 상황들을 알고 있고 침묵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이다. 생명을 물건 취급하는 사회에서 구는 버티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거래되는 물건이 생명이라는 사실은 사회를 고발하는 날것으로 자리잡게 된다. 유일하게 구에게 용돈을 쥐여준 어른은 담의 이모뿐이었다. 구의 부모도 사채시장의 어른들도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에게 각인된 어른은 담의 이모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학교 선생님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엄청난 파장으로 사회를 침몰시킨다. 구의 죽음은 한 생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가치는 증대된다.

군대 선임이 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깨끗한 곳에서 자라고 돈을 챙겨준 사람도 기억하게 된다. 듣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러하다. 듣고 담아두었던 것들이 마음이 되어서 구를 챙겨주는 군대 선임에게서 인간적인 냄새를 맡게 된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회에서 온기가 남아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적인지, 행운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훈훈한 정이 사라지고 차가운 겨울의 냉기만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구에게는 그 겨울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고 겨울이 더 냉혹했다는 것을 함께 체감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구의 죽음에는 구의 책임을 찾을수가 없었다. 도망가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의지를 가졌지만 부풀어 오르는 빚의 규모에 구는 결국 침몰하게 된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부모였고, 어른다움을 지켜내지 못한 학교 선생님의 무관심도 깜빡거리는 신호를 보지 못했던 것에도 이유를 찾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사채 구조의 엄청나고 위협적인 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주시하게 된다. 헝클어진 모든 것들이 구를 집어삼켰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구의 밀도가 높았던 소설이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허기 때문이 아니라도 (사람을) 먹었을 것이다.

그의 손이 탐나서, 그의 발이 탐나서,

그의 머리, 그의 얼굴,...

그들은 미개한가, 야만적인가.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174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173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거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97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는 엄청나구나. 54




















빚이든 돈이든 ...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다 해 주고, ...
아무것도 물러주지 말자. - P172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노마는 왜 죽었을까. 이모는. 구는 왜 죽었나.
교통사고와 병과 돈.
그런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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