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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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이다. 한국어판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으로 만나본 소설은 두껍지 않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어서 읽는 작가의 소설이다. 표지 디자인부터가 눈길을 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리커버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한 권씩 읽는 작가의 소설들은 단단한 마음부터 준비시킨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일지 설레임으로 펼치게 된다.

소설을 두 번 연이어 읽게 만든다. 재독하는 시간은 꼭꼭 씹어먹는 작품으로 이어지게 한다.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필사할수록 멋진 소설이라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상징적인 인물과 대화들이 주목받는데 작가의 삶을 알고 있기에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작품을 음미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책 덕분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과 인물들의 농담의 가치는 가중된다. 농담으로 언급되는 상황들과 인형극의 의미에 집중하게 만든다. 배꼽에 집중한 인물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와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날들과 짧은 시간 만남을 가졌던 어머니와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배꼽을 바라본 시선의 의미들은 천사, 배꼽이 없는 최초의 여자 하와에 대한 사유까지도 이어진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어머니가 경험하였을 것들을 상상하는 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의 고통과 아버지와 자신이라는 두 사람의 고통의 근원까지 짚어낸다. 사과쟁이라는 사과의 의미, 서로가 사과하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화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이 왜 중요한지 강조하게 된다.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사과하는 것에 대해서 숙고하게 한다. 어머니와 같았던 존재는 작가에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사과받고 싶은 것이 지닌 의미까지도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감시와 감청을 당하면서 살았던 그의 인생의 조각들과도 연결시키면서 읽게 하는 소설이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어머니 생각만 하고 있어. 61

마지막 소설이라 더욱 밀착해서 읽게 된다. 응축된 의미들로 인물들이 지닌 상징성을 다양하게 떠올려볼 수 있었던 멋진 작품이다. 스탈린이 던진 농담이라는 이야기는 주변인에게는 결코 농담이 되지 못하였다. 농담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지닌 경직된 사회적 인물이다. 고단한 긴 하루를 보낸 스탈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안한 심리에는 적과 비밀경찰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체가 없는, 설명할 길이 없는, 잡을 수 없는, 처벌할 수 없는, 심술궂게 불가사의한 어떤 위협으로 암시한다. 더더욱 혼란스럽고 신경이 곤두서 있으면서 "뭐가 두려운 거야?"라면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삶도 다르지가 않았음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 사진만이 남은 아들의 모순적 상황은 작가의 삶과도 다르지가 않다. 그립지만 만날 수 없고 존재를 거부당한 아들이 되어 살아간 작가의 인생까지 짐작하면서 읽게 된다. 작가가 그리워한 나라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지는 못했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의 상징성은 그렇게 작가의 삶과도 연결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연민과 경멸의 시선으로 배꼽을 바라본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된다.

아들의 배꼽을 뚫어지게 바라본 ... 연민과 경멸

그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51

도둑들의 시대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조심하라고, 멍청아!" (58쪽) 누구를 향해 외치는 외침인지 일꺠워준다. 농담처럼 주고받는 대화와 웃음, 말이 아닌 말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중에 프랑스어를 하지 말라는 이유와 한 사람만이 깃털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며 두려워하는 이유까지도 작가의 삶에서 유추하게 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생

1975년 프랑스 정착

2023년 프랑스 파리 세상을 떠났다.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와 어리석음이 강조된다.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다는 사실과 함께 해롭기까지 하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게 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눈 색깔도, 태어난 시대도, 나라도, 어머니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언급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을 얻고자 발버둥칠 이유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무의미한 축제가 절정을 이룬다. 속물이며 거만한 사람, 나르키소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강력한 권력에 대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인물 흐루쇼프도 등장한다.

독창성이나 생각, 재능이 아니라 다만 지능으로 월급을 많이 받아서 수납장에 장식된 술병이 서서히 여왕으로 변하고 꺼내서 마시고자 하지만 다쳐서 다리가 불편해진 인물까지도 상징적이다. 겸허한 숭배로 이야기되는 것들도 떠올려보게 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무엇도 가볍지가 않았다. 고찰하게 하는 힘이 강한 작품이다. 설명할 수 없는 거짓말과 설명할 수 없는 웃음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거리들 이름과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까지도 언급된다.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는 것들과 공원의 동상들의 의미까지도 함께 고찰하게 한다. 악마, 음모, 배신, 전쟁, 투옥, 암살, 학살로 가득하였던 스탈린을 등장시킨만큼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무한히 좋은 기분에 대해서도 설명된다. 이것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라고 말한다.

농담이 부풀어서 농담이 위험해진 세상은 의심과 신고, 신문을 받고 수갑과 불안이 침식하는 사회는 농담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이어진다는 것도 언급된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농담들과 인형극도 의미심장한 짙은 색채를 띠게 된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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