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의 『언캐니 밸리』, 성해나의 『혼모노』, 김지연의 『반려빚』 세 개의 작품 중에서 혼모노는소설보다 겨울 2023』책을 통해서 읽었던 작품이라 반가웠다. 이 책의 특징은 작가노트와 해설이 구성된다. 소설의 곁가지가 더욱 자라나는 구성이 특징이다. '반려빚'이라는 독특한 발상부터가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빚이 발생한 원인과 허덕이는 빚의 늪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여자친구와 동거하면서 생긴 대출빚 1억 6천만원은 삶을 온전히 발목 잡히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여자친구는 연락이 두절되고 온전히 빚만 남겨진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자 차곡히 갚아나가는 빚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사람을 믿은 대가가 빚으로 남겨지면서 불행한 인생만이 이어진다.

인생이 망했다는 표현을 친구에게서 듣고 나서야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는 것도 자각하게 된다. 망한 인생에 갑자기 연락이 오는 전 여자친구는 왜 연락이 다시 왔는지 소설은 들려준다. 다시 마주한 전 여자친구는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다고 한다. 만나서 부탁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는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도 소설은 보여준다. 0이 된 기분은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는 만큼 그 홀가분을 공감하게 된다.

빚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한 번 발을 들인 사람들은 빚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언니도 대출에 허득인다고 이야기되는 만큼 빚 없는 사람이 극히 드문 세상이다. 한국 현시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며 기발한 표현으로 반려빚을 비유해 주는 문장에 매료된 작품이다. 감당할 정도만 대출을 이용했고 빠르게 대출부터 갚아서 대출 없이 사는 인생이 오래된 시점이라 젊은 날의 부지런했던 날들을 회상하면서 읽은 작품이다.

목줄을 한 쪽이 정현이고 목줄을 쥔 쪽이 반려빚이었다. 207

마침내 0이 된 기분 229

우리가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소설 『언캐니 밸리』가 있다. "이 도시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청한동 언덕에는 존재하는 것들을 당신은 열망했다. 그 열망이 당신을 지치게 하는지도 몰랐다. 당신은 결코 제 발로 노부인의 집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316쪽) 도시의 언덕에 자리 잡은 부자동네가 있다. 그것은 그곳에만 존재하는 부의 의미로 함축된다. 그것을 갈망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그 언덕의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그녀가 황산 테러에 당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찾아온 경찰을 통해서 그녀를 다시 떠올리는 택시 기사가 있다. 그는 왜소증의 크로키를 그리는 전업 작가이다. 주수입은 택시 기사일이지만 크로키 작업을 멈추지는 않는다.

스스로 손을 내민 노부부의 집에서의 일을 그만두지 못할 거라는 그의 확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을 확인시킨다. 그녀가 노부인 몰래 언덕 위의 집에서 가져오는 약들이 있다. 노부인은 그 사실도 알지만 모른 채 할 뿐이다. 처방전을 받아야 복용할 수 있는 약들을 그녀는 왜 몰래 가져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눈은 공평하다는 말에서도 심각하게 불평등한 사회를 주시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초래했고 지금도 놀라운 속도로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부어진 황산 테러는 누구의 범행일까.

크로키 화가가 그린 그림들은 동기생들이 혐오스러워하는 그림이다. 야간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들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스케치한 얼굴에 몸은 동물의 모습을 그려진 작품들이다. 유일하게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서 사람과 동물을 연결 지은 부분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오가는 인간들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는 내용이다. 그의 그림이 거북하게 느껴진 이유는 아마도 그러한 이유들이 혼재하게 된다.

노부부의 모습은 온전한 생활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거동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집안에 쌓여있는 미술품들과 대리인이 구매하는 그림들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도 소설은 언급한다. 작품을 집필한 배경 이야기도 들려주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 작품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황산 테러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노부부의 집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열망에 이끌린 그녀의 발걸음은 삶이 망가진 이후에서야 다시는 그 집을 찾지 않게 된다. 화가의 그림에 안주한 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 그녀의 참혹한 현실이 강하게 강타하는 단편소설이다.

비웃음에서 악의를 압도하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301

이 노래들 속에서 행복했다. 거기에서는 슬픔이 가볍지 않고,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고,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증오심이 맥없지 않고, 사람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았다. 529 _농담_밀란 쿤데라

결핍은 강한 힘과 맞붙을 때 아름다움을 불러낸다고 믿었다. 강함과 약함의 조합에서 나오는 뒤틀린 균형이 마음에 들었다. 301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말에 동기생들의 비웃음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악의를 압도하는 혐오감이 비웃음으로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소설에서 가치가 유린되지 않는 세상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세상은 슬픔과 웃음, 사랑, 증오심과 고통 등이 온전하게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비웃음의 의미는 보통의 기준에 미달된다는 이유로 냉혹하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의지, 똑같은 실기시험을 보고 입학한 대학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험준한 현실을 살아가는 작가의 작업실 위치도 상징성을 띈다. 화가가 성장한 환경과 어머니가 자신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사진사건, 왜소한 몸, 장애인 택시 운전석을 바라본 승객의 반응 등도 날카로운 질문으로 던져지는 장면이 된다. 가파른 언덕에서 자본주의의 현주소와 미래를 이 소설에서도 대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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