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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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와 김기태의 『보편 교양』, 김남숙의 『파주』 단편소설을 읽는다. 소설보다 겨울』을 통해서 이미 읽었던 김기태의 소설이라 반가웠다. 공현진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을 읽으면서 모 회사 브랜드들이 떠올랐다. 공장 사고로 죽는 사람이 있어도 벌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분위기와 공장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은 똑같이 나와서 하던 일을 한다는 이야기에 공허해지는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가 만드는 것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날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그 제품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읽은 소설이다. 생명의 소중함이 최우선에 자리잡아야 하는데 어느새 생명은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도통 적응하기가 어지러운 세상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잊지 않아야 하는 사건들, 소중한 우리들이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듭 상기시키는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비난을 받으며 수군거림을 받아도 주호가 포기하지 않고 보였던 언행들을 떠올리게 된다. 수영장 강습 강사의 행동에 주호가 물살을 일으키면서 다가가서 그에게 말하는 대화 내용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주호와 희주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숨을 쉼다는 것, 잘 호흡한다는 것, 살고 싶다는 것, 잘 뜨고 싶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우하게 된다. 음식을 대하는 희주의 모습도 의미심장해진다. 음식을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미가 아닌 소중한 의미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주호가 퇴사한 이유에서도 찾게 된다.

소중하게 대하는 것을 찾고 잘 호흡하는 법과 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는 주호와 희주는 속도는 느렸지만 결코 제자리에 머무르는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변화하지만 암묵적으로 침묵하고 외면하고 무관심해진다면 잘못된 사회는 계속 잘못된 움직임으로 굴러간다는 것을 수영장 사건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소중하게 대하는 일상의 순간들과 의미들을 다시금 정리하게 하는 소설이 된다. 죽고 싶다는 마음과 살고 싶다는 마음을 어느 정도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질문하게 된다. 계약직이라는 압박감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수영장 강사의 안타까운 모습과 사연도 우리 사회의 민낯임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모든 게 하나씩 사라진다니.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니. 거대한 사슬을 상상했다. (82쪽) 한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우리 모두를 사라지게 하는 사회이며 조직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작품이다. 하나의 생명조차도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도록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희주는 음식을 단순히 맛있게 먹는다기보다

소중하게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89

살아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 때가 있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죽음을 시도한 적도 없었다. 91

죽음에 대한 충동이나 갈망 없이도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90

김남숙의 『파주』소설은 D.P 시리즈가 생각났다. 현철의 눈동자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전역을 하고 3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나타난 현철은 일 년 동안 해야 하는 일을 말하면서 불이행시 회사에 폭행한 증거들을 알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현철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고 초조해하면서 매달 입금하는 이는 현철을 군대에서 폭행한 가해자이다. 현철의 허무한 기운과 울음을 찾는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화자는 오랜 시간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다.

3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어제의 일과도 같았다는 것이 전해진다. 그 시간에 묶여서 허우적거리면서 살아야 했던 현철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현철의 손에 있는 폰 게임에 대해서 대답해 주는 모습에서 현철은 친절한 존재, 착한 존재, 순한 존재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절함과 착함과 순함을 게임이라는 가상의 존재에서 찾아야 할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멍청한 건 너지.

그런 짓을 해 놓고도

다 잊어버렸으니까. 183

시시해 보일 만큼 자연스럽고

명이 긴 미움은 어떤 것일까 168


화자는 현철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깨닫는다. 느리고 엉성하지만 현철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쉽게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가해자에게 진짜 쓴맛이 나는 말로 무엇이 부족한지 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슬픔은 다양한 모습들을 하면서 주변에 상주한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준 현철이가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만 죽이지 않고 시시해 보이는 방식이라도 보상받고 싶었다는 말의 의미에 그의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서걱서걱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는 그녀는 그 소리를 파주 소리라고 부르게 된다. 파주 소리는 피상적이지만 무슨 소리인지 현철을 떠올릴 때마다 이해하게 될 소리로 각인된다.


그녀가 논술 선생이지만 아이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별로인지 아이들이 알아버릴 것 같아서 싫어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일과 속마음은 일치하지 못하면서 가면을 쓴 상태로 부유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노동까지도 섬세하게 전달된다.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우리는 서로를 전부 알지는 못한다. 같이 동거하는 사람조차도 그의 과거를 모두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숨겨진 존재, 가려지고 지워진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슬픔으로 기억되고 상처로 남겨지기도 한다. 오늘을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면서 친절함과 순함과 착함이 얼마나 겸비되어 있는지도 살펴보는 소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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