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넘은 아이 (리커버 특별판)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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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함부로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함부로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살펴보게 된다. 인간이 만든 법은 완전하지 않기에 잘못된 내용은 바꾸고 수정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안온한 삶을 유지하고 대물림하고자 견고하게 벽을 더욱 높이 쌓아 올리는 움직임을 여전히 목도하게 된다. <재벌집 막내아들> 드라마의 내용과 <내 남편과 결혼해 줘>드라마 내용에서도 목숨값 함부로 생각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푸실이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이다. 어머니는 남동생을 열병에서 살리고자 약값으로 받은 것을 갚고자 대감마님댁에 가게 된다. 대감님댁에는 어머니를 잃은 비슷한 걔월수의 아기가 있다. 그렇다면 푸실이 여동생인 아기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의문스럽지만 부모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고만 말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막내 여동생을 살리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푸실이는 아직 이름도 없는 여동생을 살리고자 온갖 노력을 하면서 어머니가 없는 집안의 살림을 살게 된다.

푸실이는 어머니가 있을 때도 남동생과 차별을 당한다. 아버지와 남동생만 고깃국을 먹이게 하고 푸실이는 국물만 떠주면서 어머니는 푸실이가 먹지도 못하게 한다. 늘 배고픔에 허득이지만 아무도 푸실이를 챙기지는 않는다. 자식은 하나뿐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푸실이는 가슴을 맞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산에서 발견한 서책 한 권을 푸실이는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글을 배우고 싶어한다. 혼자서 나뭇가지로 그리듯이 땅에 쓰기도 한다. 지나던 아가씨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푸실이가 거꾸로 책을 보고 있다고 알려주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인근에 어머니 무덤이 있어서 푸실이는 아가씨를 자주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책의 제목과 내용이 무엇인지 아가씨를 통해서 살짝 듣게 되면서 푸실이는 글을 배우겠다고 아가씨에게 말을 한 후 글을 읽을 수 있는 친구에게서 글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푸실이의 서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글을 배우지 말라고 말하는 부모가 반복적으로 푸실이를 방해하지만 푸실이는 군자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성취하고 발전하는 즐거움을 주는 글과 공부를 이해하게 된다. 문이 막혔으면 담을 넘으면 된다는 말도 스스로 말할 정도로 사고력과 창의적인 발상을 거침없이 말하는 푸실이이다. 여동생은 이름도 없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부모의 나약함에 대항하며 자신이 여동생을 살리겠다고 의지를 보이는 아이이다.

남동생도 자신때문에 어머니가 대감마님댁에 갔다는 것을 이웃 친구에게 듣고 자신이 먹을 음식도 남기며 누나와 죽어가는 아기를 먹이라고 남기기도 한다. 생각하는 힘이 없고 나약하게 계급사회에 길들여진 부모가 거듭 보이면서 남녀차별하는 언행이 소설을 가득하게 채우지만 푸실이는 담을 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한계점을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계속 보여준다.

사회적 관습과 제도에 포기하지 않고 발언하며 자기 생각을 분명한 어조로 말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감마님을 군자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와 목소리가 또렷하게 전해진다. 푸실이 덕분에 선비와 아가씨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것에 애쓰는 푸실이가 변화를 일으킨다.

차별하지 않고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이다. 노동의 대가가 균일하게 대우를 받는 사회의 모범이 되는 나라의 교육제도도 떠올리게 한다. 귀하지 않은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노동이 있어서 우리는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천하게 대우받는 사회와 잘못된 법을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퇴계가 보여준 모범을 잊지 않고 실천하겠다고 말하는 선비의 의지와 푸실이가 대안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살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시대는 다르지만 현대사회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불편함을 느끼면서 읽은 소설이다. 남녀차별을 아직도 답습하고 있지 않은지, 직업의 귀천을 구분 지으면서 디스토피아에 안착하지 않았는지도 질문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소설에 등장하는 비웃음에 대한 글귀가 생각나면서 대감마님의 언행과 비웃음이 불편하게 한다. 군자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방점을 찍으면서 읽게 된다. 푸실이가 노력한 것들과 행적들을 빼곡하게 살펴보게 된다. 쉽게 포기하고 아기 이름도 함부로 지어서 부르는 부모와 상반된다. 푸실이가 지어준 여동생의 이름도 의미가 다시금 상기시키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격노에도 소신있는 발언을 하는 선비의 모습과 공조하는 아가씨의 관심과 애정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이다. 생명의 귀함을 아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꿈꾸게 된다.

선비의 아내이며 아가씨의 어머니가 관습에 답답함을 느끼며 자신의 재능을 모두 불태운 책들이 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질문하고 글쓰기한 서책의 의미가 푸실이를 통해서 길이 열리기도 한다. 기대한 것보다도 더 큰 수확을 거둔 도서이다.

대감마님은 군자가 아니십니다 139

이 아이에게 인정을 되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생명을 살리고자 애쓰는

저 아이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141

천하고 귀함이 어디 있습니까?

양반 양민 천민. 만들 때 이미 나뉘어졌다.

양반들의 법이며 이 나라의 법이니라. 141

사람의 도리... 어찌 고치려 아니하십니까?

참혹한 모습을 어찌 외면하십니까? 144

성취하고 발전하는 즐거움에

열심히 글을 읽으셨을 겁니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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