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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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실점이 두 번 언급된다. 도입부와 후반부에서 소실점은 다시 조명을 받는다. 소실점은 사라질 준비로 연결된다. 죽음을 의미하면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한다. 반면 조산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여인도 기억하게 된다. 죽음만큼 탄생도 큰 축을 이루게 된다. 조산원이 되어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맞이하는 것은 축복이 되는 일이 되면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도 다르지가 않다.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소설은 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까지 위대한 삶의 여정들을 담담하게 전하는 소설이다. ​ 태어난 이유와 죽음의 의미는 늘 질문을 쌓아 올렸던 과제였고 이제는 질문이 아닌 초연한 자세로 삶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이유로 답하게 해준 굵직한 의미가 된다. 이 소설을 자주 기웃거리게 한다. 그만큼 큰 나이테를 만들어준 소설이 된다. 매끄러운 번역과 인물들을 통해서 깨닫는 수많은 것들을 열심히 다시 주워담기 위해서이다.

마음이 없는 가족이 있다. 이곳에 있지 않은 마음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지도 보여준다. 준비했다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인물을 통해서 전해진다. 대립하는 인물들은 없지만 상황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부당하지만 인물들은 견디는 존재로 남는다.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 강하게 자리잡는 작품이다. 버티고 있는 존재이며 인생이다.

떠나는 마지막 상황에 보여주는 모습들은 저마다 달랐으며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도 있다.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달력 뒤에 쓴 유서> 민병훈 소설이 생각난다. 가족으로 이해한 것과 떠나고 난 뒤 가족의 존재는 다른 존재로 각인된다. ​​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정리가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인물들의 가계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대적 상황과 번뇌, 갈등, 사랑 등이 전해진다. 천문학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동기와 그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 첫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된다. 대학 강의 내용도 인상적이다. 존재에 대해, 방출과 흡수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언젠가는 죽어갈 바보들은 그저 북적거릴 알아채지도 못한다." (426쪽) ​

'도요코'라는 소에지마 아유미의 어머니가 있다. 그녀의 성장 이야기와 결혼, 시어머니인 요네가 첫 출산 때 태아에게 건네는 말과 태어났을 때 첫 손녀에게 건네는 말들은 일상 속의 시어머니와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남편의 행동에 마찰하지 않는 태도와 자신의 일과 생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울증 증세가 있는 에미코에게 보여주는 언행을 기억하세 된다. 그녀가 느낀 부당함에 분노를 한 번도 분출하지 않으면서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견딘 여성이다. "도요코는...어머니가 야단친 것도,... 감정의 배설이며 어깃장이라고 생각했다." (35쪽) ​


'요네'라는 그녀는 조산원이라는 일에 집중한다. 남편이 집에 거주하지 않고 다른 여인과 살고 있지만, 그녀는 그것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에 삶의 비중을 더 두게 된다. 자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기모노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요네의 아들은 사춘기 때 그가 누릴 수 있었던 반항은 소실된다. 타인을 읽지 못하는 결점은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삶이 되어버린다. ​

치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청결하고 깔끔한 노인이었지만 치매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는 것죽음에 대응하는 나름의 방식도 전해진다. 에토 이치이가 아유미의 죽음을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아프고 눈물나지만 떠나가는 사람에 대해 평화롭게 보내주면서 떠나는 자도 떠나보내는 자도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

누나의 죽음 앞에 남동생이 갈등하는 모습과 아버지의 죽음을 집에서 맞이하는 방식도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나 떠나며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며 병원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선택하며 남겨진 가족은 고통을 덜 느끼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소설은 여러 가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

옥수수 굽는 냄새를 노란 냄새라고 표현하며 냄새의 낱알에 형태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표현에 오랜 시간 머무르기도 한다. 영상미와 다르게 활자가 주는 무한한 상상을 매일 그리워하는 만큼 소설을 읽게 된다. 온전히 읽는 사람만이 독자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정리와 청결, 정심에 대해서도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몸을 사유하게 한다. 탄생과 생애, 죽음이 그러하다. 자기의 것이라고 오만하지 않게 하며 주어진 것임을 인식하는 순간 생명을 확장해서 사유하게 된다. 다시 주어진 시간, 새롭게 태어난 순간을 경험하면서 몸은 기회의 땅이 된다. 쓸데없는 것들과 어리석은 것들로 물들이지 않도록 정진하게 한다. 더불어 느슨한 것들도 존재하지 않도록 매진하게 된다. 겹겹이 쌓여가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심취한 이야기이다.


냄새의 낱알에 형태가 있다면 56


옥수수 굽는 냄새. 달콤하게 구워지는 노란 냄새 228

몸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라는 걸 절감해. 406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그 말에 드러났다. 441


예수와 사도들의 세계에는

쓸데없는 것, 느슨한 것,

어리석은 것, 쉬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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