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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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정의를 쉽게 생각하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족의 정의는 난제가 된다.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숙제를 가득히 안으면서 보내게 한다. 영화의 강열한 여운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소설로 나온 책까지 활자로 만나게 된다. 영화는 이미지로 전달되는 것이라면 소설은 영화가 설명해 주지 않고 빠르게 지나친 것들을 꼼꼼하게 부연의 설명을 듣는 작품이 된다. 그래서 영화가 소설로 나오면 꼭 읽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의 대본집도 다르지가 않다. 드라마가 전부 전달해 주지 않는 묘사와 설명들을 풍성하게 음미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다. 이 소설도 그렇게 영화에서 놓친 것들을 세밀하게 보게 된다.

가물거린 영화의 기억들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하나씩 제자리를 찾는다. 봤던 영화이지만 기억은 파편적이다. 소설로 설명되는 인물들의 감정들까지도 내밀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가혹하게 힘들게 했던 작품이다. 부모들이 당혹스러워하면서 가족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힘들어하는 만큼 힘들게 한 작품이다. 아이가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그 사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우리들에게도 주어지는 숙제가 된다.

낳고 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게 한다. 생물학적인 부모와 키운 기나긴 세월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두 아이가 성장한 환경은 대비를 이룬다. 두 아이는 그만큼 다른 감성으로 다른 자아로 온전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로 되돌아가면 아무일 없는 듯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작품은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해준다. 더불어 부모들의 혼돈의 시간과 과정들도 빼놓지 않는다.


사회와 타인이 규정하는 판단이 얼마나 오류인지 보여준다. 100% 부모들이 선택하는 길이 현명한 답인지도 되묻는다. 속앓이를 하는 두 아이가 있다. 한 명은 감정을 분출하지만 다른 아이는 속으로 삼킨다. 주어진 삶과 인생을 너무 일찍 경험하게 되는 두 아이는 진짜 행복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자신이 갑자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폭풍이 된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의도적으로 가혹하게 계획된 불행에 모두가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된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해진다. 자신의 핏줄, 혈통이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료타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의 관계가 조명된다. 새어머니의 불행을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외면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지금 그가 경험한 사건과 비교하게 된다.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가 스쳐 지나가면 새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가족의 정의가 얼마나 협소했는지 보게 된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책을 통해서 새로운 식견을 가지게 되면서 이 영화까지 연결고리가 이어지게 된다. 가족은 다양하다. 부모도 다양하고 자녀의 형태도 다양하다. 얼마나 편협하게 학습되고 세뇌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매 순간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해지는 세상이다. 이 부부들에게도 그러한 과제가 주어지게 된다. 아이가 뒤바뀌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가정에서 중학생 남자가 외친 말과 모자가 보인 행동은 가족의 정의를 확장시킨다. 우리 엄마라고 외친 단호함과 확고한 외침이 세상을 살아가는 난제를 해결할 현답이 된다. 료타도 그렇게 한 뼘 성장하게 된다. 자신이 가야 할 운명을 깨닫게 해준 것은 어린아이의 행동과 새어머니인 그녀의 행동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넌 관계없을 텐데. 우리 엄마야! 328

키운 6년. 떨어져 지낸 6년.

그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했을까?

그것을 부모가 선택해야 했을까?

게이타도 류세이도 분명 인공림의 매미였다.

사람의 손에 의해 그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240

지금까지 자기를 지탱해 온 것들이

소리를 내며 무너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들이 자기 주위에서 도망쳐 버렸다 336

료타의 손에 무엇이 남았는가?

은둔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

가족은 붕괴되기 직전 340

가족이지만 경계선을 만들고 내치고 외면하는 가족들도 많다. 남녀 차별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여성들과 장남과 차남의 차별로 홀로서기하는 이들도 많은 세상이다. 가족이지만 가족 같지 않은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회가 넘쳐나지만 가족은 온전하게 사랑하며 이해하며 서로를 두 팔로 벌리면서 따스하게 안아야 하는 것임을 보게 한다.

미안한 일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사과를 해야 한다. 영화 <세 자매>에서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겠다는 딸의 외침은 처절해진다. 이 소설에서도 료타의 아버지는 료타의 성장기에 지나친 상처만을 남긴 부모이다. 하지만 료타의 아기가 태어났을 때 나타나서 아기를 안으면서 하는 언행은 어떠했는지도 살피게 한다. 함묵하지만 남편의 어린 시절은 상처로 얼룩진 날들임을 알게 된다. 그가 일중독인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그가 충직하게 일하였지만 그는 이용된 노예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좌천되어 내려간 곳에서 그는 매미와 인공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아이의 성장 시기와 매미를 매치하면서 서서히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어른들이지만 모두가 서툴고 휘청거린다. 인생의 강풍에 모두가 길을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좌충우돌하면서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인생임을 알게 된다.

작가의 영화들을 이미 여러 편 보았기에 공통점을 찾게 된다. 다양한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제시한다. 뒤바뀐 아이도 내 자식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 세월 아이와 나눈 추억들은 한순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두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불행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님을 보여준다. 성장환경을 확실하게 대비시키면서 두 아이의 혼돈을 막다른 길 위에 올려놓는다. 료타가 새어머니에게 사과 전화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다시 보아야 할 영화가 된다.


범인인 간호사가 뒤늦게 깨닫고 자백하며 사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기억해야 한다. 불행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료가 되기도 한다는 것과 자신이 행복함을 느끼면서 잘못을 사죄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결과가 된다는 것도 보여준다. 잘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전제가 드러나면서 이해하게 된다. 불행하지 않기에 간호사는 진심으로 이들에게 사죄를 한다. 그녀의 행복도 온전한 가족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료타도 이제는 불행한 일들을 멈추게 된다. 행복과 불행을 선명하게 분별하기 시작한다. 그가 확고하게 믿었던 행복은 불행이며, 불행을 행복으로 뒤바꾸는 노력들이 하나씩 그의 가정을 빛나게 할 것임을 보여준다. 퇴근도 늦고, 주말도 일하는 삶, 일에 중독된 삶이 진짜 행복한 것인지 작가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일본의 사회와 한국 사회는 매우 유사하게 닮아있다. 입시 학원과 사교육 열풍에서 진짜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하도록 이끄는 작품이다. 대비를 이루었던 전파사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과 가족 분위기도 기억에 남는다. 화려하지 않고 풍족하지 않지만 따스한 온기가 흐른다. 고장난 것은 고쳐가면서 살아가는 삶과 고장난 것은 버리고 새것을 사라고 말하는 삶이 대비된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진짜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스스로 찾는다. 어른들보다 아이가 더 현명해지는 순간도 많음을 보여준다. 어른들은 길을 찾지 못해서 늪에 빠져서 고함도 지르지만 아이는 자기가 있어야 하는 곳을 스스로 찾으면서 존재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르치는 지표가 된다. 입시학원이 제시하는 정답만을 외우고 말하는 앵무새가 합격하는 삶도 있지만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간 아이가 습득하고 경험한 것은 가치가 없는 삶인지도 질문을 던진다. 『황금종이』 소설이 생각난다. 삶의 가치는 황금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 영화의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의문에서 시작한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과연 피로 맺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함께한 시간만으로도 가능한 것인지

묻고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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