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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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책에 대해 시인이 들려주는 글이 있다. 『듣는 사람』은 책들과 작가들을 소개해 준다. 알지 못했던 작가들과 책들을 소개받기도 한다. 이 책이 그러하다. 시인의 글을 통해서 슬픔을 긴 시간 바라보게 된다. '슬픔은 영혼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슬픔들이 있다. 슬픔이 찾아오면 빠르게 닦아내려고 하였던 순간이 있다. 하지만 시인은 슬픔을 얼른 닦아 없애야 할 것이냐고 되묻는다. 영혼의 감정에 기쁨과 즐거움만 있었다면 지금의 내가 오롯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유와 시인의 질문은 접목된다. '슬픔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매만지면서 슬픔을 보게 된다. 슬픔이 있어서 단단해진 내가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흐지부지 분명한 선을 지니지 못하면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슬픔이 왜 우리에게만 찾아온 것인지 의구심도 들지만 덕분에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슬픔이었고 나를 단단하게 만든 매개체였음을 알게 된다.



남녀 차별을 당하면서 긴 시간, 그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게 살고 있지만 그 사고의 범주에서 오래전에 탈출해서 자립한 영혼이 되었다. 부러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고 인정받으면서 살고 있는 딸이 된 배경에는 슬픔이 온전히 채워져 있었다. <도깨비>드라마의 주인공이 이모 가족에게 받는 서러움에 동요되었던 이유들도 같은 맥락이 된다. <가녀장의 시대> 소설을 읽으면서 시원하다고 느꼈던 감정이 지난날들과 지금도 진행형으로 여전히 변함없는 유교주의와 가부장제를 향하는 사이다가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곪은 상처에 계속 슬퍼한다고 달라지지는 않는다. 깨어나는 영혼이 되도록 슬픔은 쓴맛의 영혼의 약이 되기도 한다.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된다.

온기가 가득하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 냉기에 온몸을 떨었고 눈물을 흘리는 슬픔이 분노가 되지 않고 자신을 살리는 영혼의 운동이 되도록 잘 매만져야 한다. 슬픔을 다루는 법이 서툴렀던 날도 있다. 그것이 자신을 날카롭게 상처 내게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지 않는 세대는 그대로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닫힌 사고가 어떻게 삶을 황폐하게 하였는지 여성의 삶을 보면 확인하게 된다.

관습과 법에 익숙해지지 않는 질문하는 습관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슬픔은 영혼의 운동이었고 슬픔을 통해 강해진 것을 증명하게 된다. 뿌리가 튼튼해야 쓰러지지 않는다. 슬픔을 견디고 버티는 힘은 배우고 성찰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페미니즘 도서들을 꾸준히 읽는다. 읽을 때마다 매번 놀랍다. 『사물의 가부장제』 책을 통해서도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다르다. 슬픔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성경과 예술 분야까지도 잘 살펴보는 힘을 가지게 해준 것도 페미니즘이다.

우리는 슬픔을 통해 강해진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76

슬픔은 우리를 좌절시킬 수 없다.

슬픔은 좌절 너머에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무기력하지 않다.

무기력할 겨를이 없다.

슬픔은 강렬하고 능동적인 감정이다. 78


슬픔에 너무 깊게, 흠뻑 빠지지 말자. 슬픔이 있어서 강해진 영혼을 무한히 발견하게 된다. 가장 좋았던 문장이 있다. 슬픔은 강렬하고 능동적인 감정이며 우리를 좌절시킬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슬프다고 무기력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역동성을 띠면서 노력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었던 시대에 의식이 깨어있었던 할머니가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주었고 덕분에 지금도 할머니를 잊지 않는다. 배워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듣는 사람』을 통해서 굴곡진 인생의 슬픔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게 된다. 슬픔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다르지가 않다. 대학병원의 외래진료를 대기하는 시간은 감정 소비가 엄청나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장소에 머무르기도 하고 걷기운동도 하면서 몸을 꾸준히 사용하기도 하면서 기다린다. 좋은 검사 결과를 듣고 나오면서 다시 다짐을 하게 된다. 슬픔은 보냈고 슬픔이 다시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두 차례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작가이며 히틀러에 충성을 맹세한 안톤 슈낙 작가의 책을 소개해 준다. 『고양이와 쥐』 작가와 『삶의 한가운데』 작가도 함께 떠올려보게 된다. 삶의 궤적은 영혼의 흔적이 된다. 무엇이 충성을 맹세하게 하였는지도 궁금해진다. 전쟁은 슬픔을 무수히 만들어낸다. 수용소와 참전용사의 망가진 영혼도 다르지가 않다. 이 책을 소개한 시인도 작가의 실수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언급한다. 지식과 지성은 다르게 사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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