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계영 옮김 / 레모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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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 『길모퉁이 카페』, 『마음의 파수꾼』, 『어떤 미소』/, 『마음의 푸른 상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을 읽었기에 젊은 사강이 친구에게 써 보낸 진중하고 다정한 글이라는 문구에 펼친 도서이다. 경솔하면서도 플라토닉하며 사랑스러운 이를 만날 수 있다는 소개글에 더욱 기대감을 높이게 된다. 플릭과 폴록이라고 호명하는 사이, 친구 사이를 무한히 떠올리게 한다. 첫사랑과 첫 우정을 구별하느냐는 질문도 꽤 흥미롭게 한다. 두 감정의 닮음을 비교하면서 충동이 주는 감정들을 우정과 어우러지게 한다.

시련의 순간에 자신이 서 있는 채로 늙어가는 느낌이라고 토로하는 사강의 솔직함과 시련은 도움이 안 되는 난관이라고 생각한 얕은 관조도 보게 된다. 시련은 분명히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고난의 시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시련과 난관은 불필요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시련을 통해서도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찾아오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무수히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고 버티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한 난관을 비켜갈 수 있다면 기꺼이 피해가야 하는 것도 인생이다.



사강의 작품과 일상의 귀퉁이들이 조금씩 엿보게 된다. 우정을 나눈 친구와 나눈 수많은 편지글에서 무수히 사강의 작품들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유분방함이 편지 속에서도 느껴진다. 사진작가인 연인이 어떤 가치관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지도 편지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친구에게 솔직하게 대하는 글들에서 그녀의 진심들이 전해진다. 하지만 우정은 계속 이어진 것은 아니다. 소원해진 이유도 소개글에서 전해진다. 지루함을 참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은 편지 중에도 전해진다. 파티와 위스키, 자동차와 호텔이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빠른 속도로 달렸던 자동차와 사고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두 사람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골반을 다친 친구와 치료 과정에 마약중독 증세를 호소한 사강의 상황들도 이해하게 된다.

소설 작업을 통해서 사강은 변화한 듯하다.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소설 작업을 통해서 그녀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을 살피고 살펴보았을 것이다. 글 쓰는 작업이 얼마나 성숙하게 하는지, 정화되는 작업인지 엿보게 한다. 다시 사강의 작품들을 읽게 한다. 깊게 사유한 것들이 너무나도 좋아서 사강의 작품들은 아끼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식사하기 10분 전에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을 함께해 줘야 한다는 언급도 놓치지 않게 하는 글이 된다. 좌우명을 "죽던가 달아나든가"라고 정한 이유도 들려준다. 죽을 수 있는 상황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떠올리게 한다.

네가 나를 보면 아마 변했다고,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거야.

소설이 나를 정화했어 82

여행을 많이 할수록 여행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사강도 그러한 것들을 깨닫는다. 사강 가족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가족들이 읽었던 책들과 작가들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면서 사강이 읽은 루소에 대한 책에 대해서도 편지에 전해진다. 루소의 위선적인 모습에 포복절도하는 사강도 떠올리면서 친구에게 루소를 발견하면 그것을 읽어라고 권한다. 우울하지 말라는 부탁까지도 전해진다.


시험을 보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젊은 청춘이 그려진다. 청춘의 시간은 그렇게 점철된다. 무수히 많은 시험과 합격 소식들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불안이 함께 하면서 자유로운 삶도 만끽하게 된다. 죽을 만큼 지겨운 상황과 사람을 싫어하고 함께 있을 때와 단둘이 있을 때의 지루함도 경험하는 사강을 보게 된다. 쉰 살의 동성애자를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강도 떠올려보게 된다. 친구에게 조숙함과 성급함에 대해서도 짧은 글귀로 편지에 남긴다. 지성을 논하는 사강을 마주 대하게 된다. 사강 어머니와 오토바이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웃음도 나온다.

여유가 없는 스케줄과 기자들의 모든 질문을 불쾌하게 여겼던 사강이다. 그녀가 기분 좋았던 것은 돈이다. "멋진 집, 테라스에서 우리는 벌거벗고 햇볕을 쬐거든. 미래를 걱정하지 마... 미래는 신화야." (72쪽) 사강이 남긴 말들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젊었던 사강의 편지글에서 그녀가 우정을 나눈 친구와 나눈 편지글도 연장선에 올려놓으면서 사강을 만나게 된다. 모든 사소한 문제들이 너무나 미미해 보이는 이유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느낀 사강의 깨달음이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도록 대화를 나누며 인생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도 듣게 된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책을 읽고 있다는 것도 전해진다. 돌아가며 열심히 토론하자는 사강의 편지와 친구가 가장 멋진 추억이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받고 답변을 회피하면서 다른 답변으로 내놓은 이 대답이 멋지게 감동을 준다. "밤새도록, 위스키도 마시지 않고 잠들지도 않은 채, 모든 것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 방 ( 프랑수아즈를 떠올릴 때면 어떤 방을 생각해요)" (19쪽) 토론이 주는 멋진 순간과 밤의 고요함 속에서도 더욱 선명해진 영혼들의 사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추억인지 보여주는 책 한 권이다.

조숙함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성급함은 지성에 이르는 탁월한 상태다 _프랑수아즈 사강 74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115

방탕한 생활을 하고, 망나니처럼 굴고, 프리마돈나처럼 행동하거나 불안에 떨던 순간에도 결코 자신 자신의 명석함을 잊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불행하지 않으니까. 단지 그들은 몇 가지 측면에서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이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할 뿐이야. 자기 자신은 실망보다 타인의 불행을 원하면서 말이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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