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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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암선고를 받았다. 병상에서 치료를 받으며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를 떠올린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그의 말을 사유하면서 자신도 병을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일기를 쓴 기록물이다.

삶과 질병, 죽음을 무수히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암은 소설에서도 과학자들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하는 질병이다. 일상을 흔들며 치료 과정의 고통도 전해지기에 낯설지 않은 인생의 한 부분이 된다. 대처하는 마음 방식도 다양하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춘들에게도 갑자기 타격하는 것이 암이다. 암은 곧 삶이 마감될 수 있다는 회고록이 된다. 탄생과 인생을 돌아보면서 죽음까지도 진지해지게 하는 것이 암이다. 언제든지 죽음은 도처에 도사린다. 갑자기 사라지는 생명도 있기에 죽음을 준비할 수 시간이 허용되는 깜빡거리는 등불이 된다.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 암이다.

철학자가 암을 받아들이며 사유한 궤적은 솔직하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나면 책등을 매만지게 되는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망각의 불빛이 고마웠던 만큼 죽음도 준비가 필요해진다. 어떻게 살아갈지, 어떠한 마지막을 준비할지도 다양하게 사유하게 된다.

죽음은 교만하지 않게 한다.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간이 된다. 암도 그러하다. 철학자의 일기는 또 하나의 선택이 되어 사유의 궤적을 한 걸음씩 지긋하게 눌러서 걷게 하는 글들이다. 이언 매큐언의 <검은 개>소설에서 장모가 프랑스 남부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지 않고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다가 병으로 요양원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묘연하다고 사위는 회고한다. 요양원에서 부적응하였던 장모가 갑자기 의료진에게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이유를 사위에게 설명하는데 <도덕경>의 구절로 이해시키는 장면이 있다. 장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선택한 것들과 대처한 삶의 방식이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꺼져가는 등불이 선택한 것들은 누군가에게도 갈림길이 된다. 철학자가 메모한 것들과 의지가 뚜렷하게 길이 되어준다. 항암 과정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마음 준비가 되는 기록이 된다. 낯설고 막연한 암들과 싸우는 이들도 있고 받아들이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의 글들은 무겁기도 하고 가벼워지기도 하는 묘연한 글들이다.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가볍고 진지해질수록 글들이 무거워서 오랜 시간 책장을 여러 날 걷게 하는 일기가 된다. 병원에서의 검사과정도 다르지가 않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눈을 계속 보게 된다.

주어진 삶에서 살아있는 이유를 무수히 발견하게 된다. 수술방에 있을 때 홀로 눈물 흘린 외로웠던 한 사람이 있다. 그때 그 사람은 이후로 매일 웃고 긍정적으로 응원해 준다. 단 한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면서 검사과정도 이겨낸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철학자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전해진다. 고통이 없는 날은 없어서 함께 기뻐한다. 숨막히는 고통에는 글이 짧게 끝난다. 짧지만 강하게 버틴 철학자의 의지가 여백을 가득히 채운다. 인생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을 채우면서 버티는 과정이 된다. 삶의 여정과 마지막 순간을 짐작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만나는 철학자이다. 혼동과 충격, 고통과 평온, 찾아오는 순간까지 남긴 메모장의 글은 삶의 의지로 남는다. 사랑했던 순간들과 기록한 글의 이유들이 명확하게 전해진다.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81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160

류샤오보가

부인 류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잘 살아가세요."

"늘 기쁨을 잃지 말고 살아가세요." 42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242

책을 통해서도 삶의 여정을 깊게 사유한다. 수술을 하고 깨어나면서 밀려오는 심한 통증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이 책을 꾸준히 펼쳐보게 된다.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으로 진통제 투여를 멈추고 수술 후 통증을 참다가 잠을 청할 수 없어서 그제야 마약성 진통제를 천천히 넣어달라고 요청한 후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얼마나 아프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지 짐작하게 된다. 병상의 통증을 알기에 철학자의 고통은 절절하게 사실적으로 전달되면서 묵직해진다.



때로는 눈을 감으면 놀라운 것들을 보기도 한다. 즐기기에 바쁜 삶에서는 보지 못하는 단상이 존재한다. 놓치고 있는 것들, 소중한 것들을 보아야 한다. 평범한 날에도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글을 통해 오늘이 너무나도 소중해진다. 오선지에 분명하게 음을 그려 넣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유전적인 병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일기이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글에 녹아 흐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생은 쌍곡선 운동이라는 글을 보면서 힘을 내고 있는 시간들이 전해진다. 희망을 간직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순간들을 담아서 쓰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마지막까지도 유지한 선율이 되면서 마지막 장을 마감한다.

사이사이 지나가는

천진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138

울음도 연주가 아닐까... ​

추락하는 눈물들이 어떤 노래가 되지 않을까. ​

그 어떤 비상의 노래... 208

『델러웨이 부인』을 읽는다...

첫 문장의 빛은 역시 해맑은 아침 햇살이다.

"델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스스로 사겠다고 말했다." 47

물들은 사랑의 역학을 가르친다.

물들의 사랑은 급하고 거침없고 뚫고 나간다. 49

지나가는 것들을 지나가도록 놓아주고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을 있는 모양대로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것들도 무심하게 담담하게 맞이한다. 50

글을 메모하고 남긴다는 것이 남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그리움이 되는지 알려준다.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된다. 화해하고 놀라운 질문들과 변화를 보여주었던 가족들이 생각난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여정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가족들이 떠나는 순간까지 보여준 모습들은 글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빛이 되면서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 장편소설에서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에 기록된 일기가 있다. 명징하게 울리는 글귀들을 다시 주워 담게 한다.



이 책은 남겨질 이들을 위한 일기이다. 타자를 지키려는 의지와 진심이 일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자기만을 생각하면 매일 약해진다고 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남은 이들을 위한 마음이 자신을 버티게 해줬음을 보여준다.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인생이라는 계절 중에는 누구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경험하게 된다. 겨울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오늘이 소중해진다. 오늘을 찬미하게 한다.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느끼며 감사함이 가득해진다. 기력이 노쇠해지는 글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행복을 가득히 담는다. 겸손하고자 노력하는 문장들이 보인다. 음악의 선율로 전달되는 일기로 남는다 몸과 정신을 어떻게 정진하였는지 기록하면서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해진다. 죽음은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면서 삶도 함께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애도 일기'를 통해서 다시 살펴본다.

사랑하기,

기쁜 감정 충분히 표현하기,

겸손하기,

행복 느끼기,

감사하기.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을 누구나 홀로 가야 한다. 그래서 더 겸손해지고 더욱 밀착해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읽을 때마다 다른 깊이를 체감하게 된다.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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