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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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각각의 계절』을 인상 깊게 읽으면서 작가의 작품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언니가 공원에서 살해되면서 용의자와 목격자, 남겨진 가족들과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는지 추리하기 시작한다.


봄날을 빼앗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 봄날을 왜 빼앗긴 것인지 의문을 찾고자 복수가 시작되는 주문, 레몬, 레몬, 레몬. 갑자기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왜 죽었어야 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덮어버린 사건이 있다. 용의자와 목격자들이 흐려지는 형체처럼 사라지면서 남겨진 가족도 멀리 이사를 가고 남겨진 여동생도 전학을 가버린다. 피해자 가족들의 삶은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소설은 펼쳐놓는다.

사랑하는 가족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남겨진 가족들은 어떠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지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아기 엄마가 자살하는 이유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어린 아들의 교통사고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 엄마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게 된다. 남겨진 가족들이 어떻게 치열하게 이겨내야 하는지, 이겨내지 못하여 자멸하는 어둠속으로 깊게 빠져드는지도 전해진다.

이 소설의 피해자 엄마와 여동생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자신들이 일상을 찾은 듯하지만 어느 누구도 괜찮지가 않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이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하는 엄마와 여동생의 선택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죽은 큰 딸의 이름은 개명하는 움직임과 둘째 딸의 얼굴을 성형시키는 움직임은 끔찍하고도 오싹하게 전해진다. "무서울만큼 다연은 말라 있었다." (42쪽) 바싹 마른 몸으로 살아가는 여동생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언니의 죽음은 그렇게 남겨진 가족들의 인생까지도 혼탁해지면서 여동생의 복수를 향한 발걸음을 뒤따르게 한다.



목격자의 진술과 형사의 수사 진행 상황을 통해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정학시킨 학생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전해진다. 치킨을 배달하는 목격자였던 한만우의 인생도 놓치지 않게 한다. 부자의 아들과 생의 전선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만우의 인생은 공평하게 법과 사회가 보호하였는지도 조목조목 상황들을 대비시킨다.

범인일 거라고 추정하면서 학교 학생들은 두 편으로 나뉜다. 또 다른 추정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목소리가 더 크고 의견 표명이 거침 없었기에... (다른 쪽) 조심스럽고 목소리는 작고 낮았다... 주장에 더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득되는 느낌 " (56쪽) 목소리가 크다는 것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진실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은 사회에서 모순적인 공방이 이 상황에서도 전개된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약자, 가난한 자, 권력이 없는 소외계층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형사가 만우를 대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따지고 다그치고 집에 찾아와서 이 가족을 괴롭힐 상황들이 불편해진다.

만우가 형사에게 진술하는 모습이 꽤 위태롭다. 불리할 수 있는 진술들이 이어진다. 억지를 부리면서 짜집기하는 형사의 모습도 낯설지가 않다. 범인을 잡는 것인지,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범인은 누구였을까? 누가 언니의 머리를 가격했는지 밝혀진다.



사회가 얼마나 어정쩡한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서도 엿보게 된다. 만우 가족의 이야기가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난쟁이 엄마, 아버지가 다른 두 남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는지 만우에게 고스란히 남겨진다. 만우가 치열하게 배달 일을 하면서 살아간 이유와 여동생이 좋아하는 꽈배기를 사서 가져다주는 이유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처럼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했을 만우의 십 대 이야기와 위협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휘어졌는 법과 사회가 두드러진다. "오빠가 죽어라 돈 버는 게, 아빠들처럼 안되려고... 안 사라질라고 그런 거 아닌가." (143쪽)

육종이라는 암으로 무릎을 절단한 상황까지의 안타까운 사연과 장애인의 노동과 만우의 죽음까지가 짙고 무겁게 전해진다. 만우집에 가까이에 있는 종교시설은 어떤 의미로 있었는지도 질문을 쏟아붓는다. '신을 믿지 않지만 시는 믿는다'는 묵직한 글귀가 무겁게 자리잡는다.



윤태림의 시를 유심히 바라보게 한다. 태림이 들려주는 말에는 범인과 피해자가 죽은 상황과 끈, 태림이 피해자와 같은 상황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가 조명된다. 태림이 쓰는 시와 종교적 말들은 진실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진짜 범인이 누구였는지 알게 해준다. 지옥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유도 태림을 통해서 알게 된다. 이 부부의 사라진 아이와 피해자 언니의 죽음도 같은 슬픔이 된다.


소중한 가족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다. 죽음의 원인도 범인도 모른다는 것은 남은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는 흐지부지한 덮개로 가리는 사건이 된다. 가혹한 삶에 던져진 이들이 이겨낼지 이겨내지 못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회는 강제적으로 사건을 덮는다. 작가가 레몬리본을 상기시킨다고 언급하는 인터뷰를 보면서 세월호 사건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작가의 깊은 의중과 시선을 소설을 통해서 여러 번 여러 날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밝은 말투와 생기 있는 얼굴, 두터운 외투에 가득해지는 육체가 회복이며 치유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라지지 않기를 희망하게 된다. 자신의 삶과 인생은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지 않도록 남은 가족들 모두를 불러보게 한다. 만우의 여동생, 만우의 엄마, 다언의 엄마, 다언.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려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145

휴지처럼 우리 자매도 죽었다...

나는 내 삶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었다.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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