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9
빌렘 엘스호트 지음, 금경숙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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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6의 『식탁 위의 봄날』, 『크리스마스 잉어』, 『은수저』, 『치즈』,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 5권 중의 한 권에 해당한다. '소중한 것일수록 맛있게'라는 타이틀로 기획된 소설 5권이다. 다섯 작품의 만찬을 한 권씩 만나보도록 기획된 세계문학전집이다. "회사원에게는 거룩한 뭔가가 없지. 그저 맨몸으로 이 세상에 서 있는 인생들인 걸." 글귀가 강하게 책장을 펼쳐들게 한다.

화자 어머니의 죽음과 영면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처하는 아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머니가 죽음과 싸우고 있는 날 그는 술을 마셨고 취기가 오르면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를 희망하게 된다.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도 슬픔을 몇 걸음 더 물러나 있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친척인 수녀의 모습과 큰 형님의 모습, 몸이 불편하였던 어머니를 돌보았던 누이와 매형의 모습도 몇 걸음 물러난 관찰자처럼 보인다. 직접 어머니를 돌보지도 않았고, 어머니가 홀로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집안에서도 멀찍이 물러나서 갈피를 못 잡는 모습만 보인다. 깊은 슬픔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만큼만 느낄 뿐이다.



나이가 오십이 코앞인 그에게 찾아온 우연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회사원으로 살아온 긴 세월과는 대조적인 사업을 제안받는다. 부자들의 모임에 초대를 받으면서 부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 공실과 세입자 문제, 임대료 지체에 대한 불평과 불만들을 듣게 된다.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와 이탈리아 이야기도 듣게 된다.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사퇴한 이유와 결혼할 때 재산을 공평하게 내놓았느냐는 찬반 의사 표명도 모임에서 듣는다. 그가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나누었던 대화들과는 간극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어떤 대화의 흐름에도 호흡을 맞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모임을 주선하는 집주인이 사업을 제안하는데 돈도 필요 없다는 제안에 솔깃해진다. 치즈 사업 대리점을 제안받으면서 그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가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전해진다. "먹는 장사는 망할 일이 없어. 어쨌거나 사람들은 먹어야 하니까." (33쪽)

대리점 사무실을 준비하는 과정들과 달라질 자신의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들로 부풀어 오르게 된다. 하지만 아내와 큰 형님은 그와는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다. 계약서를 사인하고 온 그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는 아내의 모습부터 떠올리게 된다. 바느질하고 살림을 살아가는 아내이지만 그녀는 계약서를 조목조목 한 문항도 놓치지 않고 읽고 이해하면서 난해한 문항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난해한 조항의 의미를 어떻게 간파했는지" (70쪽) "바느질을 했지. 그 모습에는 어떤 엄숙함이 어려 있었는데, 마치 세상에 홀로 서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걷는 사람 같았어." (62쪽) 아내가 바느질하는 모습에서도 깨닫는 것이 스쳐 지나간다. 홀로 자기만의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놓치고 있지 않는지 반문해 보게 한다.



부자 모임에서 서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직업이 어떻게 타인에게 인식되는지도 꼬집는다. 묵묵히 살아온 기나긴 세월의 자신의 일은 어떻게 흩어지고 조각나는지 그는 그 모임에서 경험하게 된다. 모임의 자리에서도 그의 위치는 정해진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때와 사업을 시작하면서 달라지는 모임의 자리 위치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모임 사람들의 응대하는 모습까지도 예리하게 전해진다. 위선적인 모습들이 모임에서와 사업을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펼쳐놓는다. "직함이 나 하나의 위선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자신과 모든 친구의 위선까지 올려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106쪽) 건들거림이 묻어나면서 노동자들을 바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은 사업을 시작하였다는 자만심에 녹아흐르는 속내들이 거침없이 전개된다.

치즈 꿈은 기어이 이루어질 것인가?...

건들거림이 묻어났지. 34

저 바보들은 저렇게 살고 있다네.

반면에 나는 비즈니스 세계라는 정글 속에서

내 손으로 열심히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어. 88

치즈 사업이 시작된다. 그의 치즈 사업은 출세의 시작이 되었을까? 허세가 어느 정도 첨가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안전한 미래를 위한 방법도 모색하는 아내와 큰 형님의 도움도 준비된다. 영업할 사람들을 모집하였으니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하였을까? 절묘한 순간에 그의 성공은 폭죽을 터트렸는지도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사무원과 노동자를 비교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러시아 노동자들이 이룬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19세기 작가가 집필한 소설에서 현대 노동자들을 대비시켜보게 된다. 사무원들이 어떻게 대체되고 버려지는지 직설적으로 묘사한 글귀에 섬뜩해진다. 계약직의 용도, 인턴의 용도, 아르바이트의 용도 등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노동자와 부자들의 관점과 삶의 궤도가 대립적으로 묘사된다. 부자들이 돈을 버는 방식과 노동자가 돈을 버는 방식을 펼쳐놓는다.

쓸모를 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사회의 노동자의 삶을 보게 한다. 단조로 노래되는 인생의 단면이 연주된다. 부자 모임에서 노동자의 신분을 향하는 멸시하는 분위기도 기억하게 된다. 쓰임을 다하면 어떻게 정리되는지도 계약서의 문항을 통해서 시사하는 소설이다. 자신이 오랜 세월 몸을 담았던 직장의 분위기가 편안했는지 처음으로 인지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가 여행한 짧은 사업가의 삶이 변화시켜준 것들이 무엇인지도 보여주는 작품이다.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을 찾게 해준 경험이 치즈 사업이다. 치열하게 포착한 것들이 작품에서 펼쳐진다. 네덜란드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이고 언론인인 얀 흐레스호프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찾고 바라보고, 희망하고 기다린다"라고 말하는 밤의 흔적들을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치즈 문제로 안 히던 기도를 갑자기 하게 된 치즈 재앙이 무엇인지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나는 종합해양조선 회사의 노예 신분 51


내 나이가 오십이 코앞이고 30년 동안 종살이를 한 흔적은 당연히 내 몸에 새겨져 있지. 사무원은 고분고분한 사람들이야. 저항과 단결을 무기 삼아 어느 정도 존중을 얻어낸 노동자들보다 훨씬 고분고분하지. 러시아 노동자...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고들 하지 않나... 어쨌거나 피의 대가로 얻은 결과이니까. 사무원들은 대체로 전문성도 별로 없는 데다... 하루아침에 뻥 차 버리고 똑같이 일을 잘하면서 싸게 먹히는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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