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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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에 빠지면 수면으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소방대원인 도담의 아버지가 딸에게 일러준 말이다. 아버지와 나눈 추억들이 가득한 도담에게 어느 날 일어난 사건은 도담에게는 엄청난 여파가 할퀴고 간다. 급류에 떠내려온 두 사체에 많은 소문이 작은 마을을 뒤덮는다. 도담의 아버지와 마을의 미용실 사장인 해솔의 어머니가 발견된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도담과 해솔은 경찰에 진술을 하면서 작은 마을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소문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도담과 해솔은 동갑이며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다. 둘은 사랑을 느끼지만 각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과 사건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로 힘겨워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섭섭함이 지배적인 도담과 해솔의 감정은 또 다른 감정이 되어 팽팽해진다. 십대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겨운 일을 경험하면서 도담과 해솔은 20대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술에 취해서 살아가는 도담의 대학생활과 긴장감을 놓지 않는 해솔의 일관된 대학시절의 모습도 대조적이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때의 일들로 도담과 해솔은 일반적인 20대 시절의 연애와 감정들을 온전하게 보내지 못한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158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상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처보다 그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 앞에서 더 아프다. 159

너무 아팠다. 결국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왔다... 처음 해 보는 자해... 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지 알 수 있었다. 82

도담은 엄마를 위로할 줄 몰랐고, 정미도 딸을 위로할 줄 몰랐다. 이런 일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정미의 텅 빈 눈... 점점 대화를 피했고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83




작은 마을 사람들이 지어내는 가짜 소문들에 침묵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감당한 도담은 무척 안쓰럽게 비추어진다. 도담의 어머니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불행한 시간들을 보낼 뿐, 딸의 상처와 슬픔은 돌보지도 않는다. 도담의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 죽음으로 상처 입은 도담을 살펴보지 못한다. 모두가 피해자이다. 사건의 가해자들은 죽음으로 떠났기에 어떤 경위로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피해자들로 남겨진 도담과 도담의 어머니, 해솔은 부유하는 존재로 기나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지만 정상적인 범주에서 치유의 시간들을 보내지는 못한다. 연애, 대학생활, 가정생활도 일그러진 자화상이 되어 균열이 일어난 20대를 보내는 도담과 해솔이만 있을 뿐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해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100



해솔의 외할머니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삶에는 남편과 사위, 딸의 죽음을 떠나보낸 기나긴 세월이 있었을 것이다. 긴 상흔으로 남는 죽음들이 드리워진다. 그 많은 죽음들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짐작조차도 하기기 어려워진다. 해솔이라는 외손자와 함께 살면서 보여주는 할머니의 언행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는 말은 도담과 해솔에게도 치유가 된다. 닫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 도담과 해솔을 계속 보게 되지만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달라진 두 사람은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단하게 변한 해솔과 움츠리게 된 도담이 그러하다.

예전과 달라진 두 사람이 재회하면서 나누는 대화들도 인상적이다. 원을 맴도는 느낌으로 살아간 두 사람이 드디어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시작하고자 한 걸음 걸어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해야 한다는 것!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두 사람은 이 두 가지를 한 번도 해보지도 못하고 자신만을 상처내고 죽음속으로 자신을 던지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자해하는 도담의 모습, 죽음속으로 달려가는 소방대원이 된 해솔의 불안한 모습들이 주변인들에게도 감지된다.

너를 미워하지 마라.

언제나 이 할미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 95


둘은 세상 누구보다 귀하고 누구보다 행복해져도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을 축복해 주었다. 141


활머니가 사준 떡볶이. 오늘 잠시 진평을 잊고 오롯이 행복했다. 142



외할머니가 기도한다는 말과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감동적이다. 매서운 말로 할퀴는 마을 사람들과 도담의 어머니 모습과는 상반된다. 희진이 느꼈을 죄책감도 잊어서는 안된다.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서 긴 시간을 그 사건에 갇혀서 살아왔음을 알게 해준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큰 등불이 되어준다. 해솔의 외할머니가 말해준 그 말은 모두에게 치유의 말이 된다. 자신을 사랑하며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모두가 서로를 안아주게 된다.

가까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큰 상실로 남는다. 부조리한 죽음까지도 이겨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치유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 (290쪽) 사랑이 무엇인지 무수히 질문하고 찾아헤매는 소설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것과 "창석이 살아있을 때 싸우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해졌다. 죽음... 창석은 그 무서운 것과 싸우던 사람이었다." (293쪽) 소방대원으로 무수히 위험한 상황속에서 죽음과 싸웠을 도담의 아버지를 알게 된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던 도담의 아버지, 해솔과 도담도 마지막 장면에서도 머뭇거림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공포보다도 타인을 살리는 모습을 보게 한다.


두렵지만, 구해야 한다. 203


도담과 해솔을 죽음과도 같은 늪속으로 밀어넣었던 마을 사람들의 말과 가짜 소문에서 이겨낸 도담과 해솔의 변화된 모습들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희진도 도담에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응원을 한다. 행복을 찾도록 응원해 주는 사람들인지, 불행을 겪고도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학교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인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된다. 기나긴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느라 무척 기운이 빠졌는데 외할머니의 기도와 축복, 희진의 응원에 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소설이었다. 지옥같은 사회이지만 등불이 되어주는 한 사람, 말 한마디, 응원이 되어주는 가슴이 되어주도록 이끌어준 인물들에게 치유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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