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요안나 콘세이요 지음, 백수린 옮김 / 목요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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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들을 좋아한다. 그림과 글을 여러 번 읽게 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아버지 죽음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과 글이다. 그림이 가득하고 여백이 많아서 천천히 넘기면서 그림들을 세세하게 살펴보게 된다. 터치와 색감들, 인물 묘사와 구도까지도 글과 어우러지면서 감상하게 된다. 푸른 빛깔이 따스하게 다가선다. 푸른빛이 발산하는 따스함에 매료되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작가가 관찰하는 자연 풍경의 세밀한 변화들이 함께 전해진다. 해가 지는 하늘의 풍경, 계절이 변화되고 있는 미세한 풍경들까지도 아버지의 동선과 산책길, 집안의 풍경, 일상의 흔적들을 따라가게 한다. 새벽녘에 창밖을 살피는 아버지의 시선, 아버지의 아침 식사 풍경, 매일 산책하였던 길, 고양이와 나눈 사랑과 교감들도 전해진다. 부부가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들은 선명하다. 사랑하며 살았던 날들은 또렷한 얼굴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홀로 보내고 있는 아버지의 시간들에는 얼굴을 묘사하지 않는다. 형상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짙게 그와 함께한 외로움의 날들, 그리움의 날들, 아쉬움들이 글과 그림들의 색채들에서 느껴진다.



아버지가 매일 산책한 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관찰한 것들이 그려진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보내는 산책길에 그가 기다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전한다. 우편함 열쇠가 상징한 기다림과 상실감도 전해진다. 고지서를 기다린 것이 아니다. 인생의 시간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시간을 짧다고 말하는 이유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걸어온 인생들에 기다림, 외로움들이 느껴진다. 젊은 날을 회상하였을 것이라고 유추하면서 그려진 아버지의 어린 시절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우리들의 시간도 다르지가 않다. 길지 않은 시간인 것 같은데 많은 세월이 흔적을 남기면서 돌아보면 짧은 시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들을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들을 전하는 작품이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제대로 하면서 살고 있는지, 외롭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작품 속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는 시간들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에게 표현하면서 다정함을 실천하려고 매번 노력하게 된다. 부족하지만 노력하며 타인들을 통해서 배우고 반성하게 된다. 이 작품도 부모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어떤 부모인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부모의 죽음에 남겨진 자식은 어떤 회상을 할지도 우리들에게 남기는 숙제가 된다.



죽음을 직조하는 작품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정리를 할까? 이 질문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잊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안개가 자주 등장한다. 분명하지 않은 흐릿한 안개가 우리들의 삶과도 같다. 명확하지 않은 죽음의 순간, 추운 겨울날은 인생의 마지막을 상징해 준다. 배우자가 떠난 혼자 남은 노년의 시간을 아버지가 홀로 보내면서 교감하면서 나눈 고양이, 산책길의 자연 풍경, 하늘의 풍경들이 따스하게 느껴진 그림들이다. 적막과 고요를 즐겼던 아버지이다. 책표지의 고양이 표정과 아버지의 표정에 계속 눈길이 머무르게 한다. 푸른색이 주는 따스함에 푹 빠져들었던 작품이다.


지금까지 겨우 일흔 해의 시간을 썼을 뿐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한히 짧은 시간이군.

그는 스스로가 까치밥나무 열매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 용기가 났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온 존재를 다해

고양이 털의 부드러운 잿빛 심연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의 아버지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딸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잘 몰랐던

모든 아버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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