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뒤에 쓴 유서 오늘의 젊은 작가 41
민병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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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책표지 가득히 채워진 밥상만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의 따뜻한 밥상이다. 음식을 차려낸 사람이 존재하고 이 음식을 먹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밥상이다. 이 손길과 마음은 사랑이 된다. 그런데 누군가 이러한 밥상을 등지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가장이다. 아내도 있고 고등학생 아들도 있다. 왜 달력 뒤에 유서를 남기며 떠났는지 질문하게 하는 작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아버지. 고등학교 때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엄마는 집을 가출하였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 아들과 통화를 하고 있는 엄마이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상황이며 실직 상태이다. 환경미화원의 반장이었는데 직원들과의 불화로 퇴직하고 구직하고자 신문을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척이 방문하며 가져다준 검은 봉지와 굳은 얼굴을 작가는 기억해 낸다. 그리고 새벽에 아버지 방에서 들려오는 못질 소리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유리창을 깨고 구급차를 부르게 된다. 온전히 홀로 아버지의 자살 상황을 직접 목격한 청소년 아들이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9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는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이틀 동안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병원에서의 상황도 혼자 감당하며 친척들을 기다린다. 또렷하게 그 상황들이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치열하게 그 기억들을 소설속에 남긴다. 이 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유, 왜 쓰야 하는지 질문을 거듭 반복하면서 아버지 죽음의 이유들과 집필하는 이유들을 마주한다.

분철되는 이야기들. 툭툭 끊어지는 이야기와 장소들, 인물들. 읽는 동안에는 흐름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읽고 나니 이 모든 분철된 장소와 이야기, 소설의 작품들, 인물들은 소설이 집필된 이유가 되어 선명해진다. 종합된다. 무수히 많은 조각들이 연결된다. 그리고 귀결된다. 희망이라는 욕망을 마주하게 해준다. 아버지 자살과 남겨진 달력 뒤의 유서 내용과 병원에서 남긴 말과 어머니가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혼자 가는 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죽은 아버지를 향한 말이 된다. 어머니가 재혼할 기회가 몇 번 있어도 하지 않았음도 아들은 언급한다.



친척들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집을 나가서 아빠가 죽었다는 말로 죽음의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긴다. 표면화되는 사건의 흐름으로 짐작하고 그 책임을 아내에게 부과하는 이 사회가 등장한다. 유일하게 엄마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들이 있다. 그 이유는 달력 뒤의 유서 내용과 병원에서 남긴 아버지의 말과 아버지 공구용품을 하나씩 닦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대변해 준다.

비디오 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면서 아들은 그 시절의 가족들을 만난다. 행복했던 이 가족의 모습들을 하나씩 회상하게 된다. 민박 일을 하면서 부부가 보였던 즐거워한 모습도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떠올리게 된다. 불행은 어머니의 가출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아버지의 자살 원인이 아님을 되짚는 과정이 된다. 이들의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도록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이 가까이에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뚜렷한 존재로 드러나고, 어떤 이들은 묘연하게 흐릿하게 주변을 맴돌면서 불행으로 이끈다. 희망보다는 불행을 부추김한 사회의 인간들의 모순들을 이 소설의 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서 목도하게 한다.



나는 인사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어른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나는 빤히 바라봤다. 18

구직란이 펼쳐진 신문. 종아리. 심각한 상태. 60

민박을 열어. 그 과정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간의 여름 안에서 부모님은 분명 행복했다. 누가 신고했을까. 61

<소망 없는 불행>소설의 작가 어머니 자살 이야기도 떠오른다. 마작으로 선산을 팔아버린 큰할아버지 이야기에는 <인생>위화 소설 내용도 떠올랐다. 돼지와 닭, 칼이 등장하는 내용에서는 <고트 마운틴> 소설 내용이 기억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문학 소설들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애도일기>,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소설집, 다자이 오사무 <만년>, <사랑의 중력> 사라 스트리츠베리 소설 등을 만나게 된다.


기이한 일도 전해진다. 그 기이함을 여러 개 만나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빙벽에 매달린 아버지, 북소리, 신내림을 이야기하는 아주머니가 그러하다. 읽는 동안 안타까움이 내내 짙어지게 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사건이 어른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을 영원히 함께 할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살을 하기 직전까지 집에서 양말을 신었던 아버지의 발에 대해서도 저자는 죽음 이후에 알게 되는 사실들이 등장한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는 말 한마디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스스로 죽을까 봐서 선택한 가출이다. 아버지가 선택한 자살과도 연관성을 띤다. 죽지 않으려고 선택한 그녀의 삶은 힘겨운 날들로 점철된다. 벌판에 던져진 그녀의 남겨진 시간들과 아들의 시간들은 포기하지 않는 삶으로 그려진다. 그것이 희망임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소설이다. 화려하고 안락한 삶만이 인생이 아니다. 고난 속에서도 서로가 의지하지 않고 두 다리로 설아간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사연들도 충분히 짐작하게 해준다. 고통이 잠식한 질병과 희망을 가지지 힘든 상황들에 그가 선택한 죽음에는 무책임함도 엿보인다. 미성년인 아들이 목격할 상황, 남겨진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선택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슬픔을 긴 세월로 온몸으로 이겨냈고 지금도 동행하는 시간들로 그려낸다. 여행 다녀온 사진을 고르는 상황과 자전적 소설을 집필한 이유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홀로 남겨진 삶에 위축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서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완성시켰고, 그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참지 않았다. 131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143

친정에는 가지 않았다.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네게 미안하다고. 이렇게 살수 없는 거라고. 나 스스로 죽을까 봐. 그래서 나온 거라고, 그걸 네게 보여 줄 수 없었다고. 아드님은 혼자서 봤어요... 우린 어른이지만 갠 아니었어요. 경찰이 말했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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