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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문과 9편의 글로 구성된 산문집이다. 책 디자인부터 눈길을 끌었던 책이다. 그리고 겉표지의 글귀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에 한동안 눈길이 머물게 했다. 서문의 글부터 작가의 책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책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 (88쪽) 내가 책을 읽는 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88쪽) 독서라는 경이로운 애도 (12쪽)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기에 작가가 궁금했다.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독특하고 맑은 문체로 프랑스의 문단, 언론, 독자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사랑받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이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고독한 작가라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삶과 생활들은 작가의 글에서도 충분히 느껴지기 마련이다. 일상에서 스치고 지나치기 쉬운 순간을 작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었다. 두 소녀와 바람, 은행 소유의 주택단지, 성서, 요나 이야기 등으로 글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작가의 시선과 사유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게 된다. 작가의 글을 통해서 열리는 것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어렵지 않은 문체이지만 작가가 눌러쓰는 글에는 깊고도 깊은 깨달음이 넘쳐났다. 책은 두껍지 않지만 내용은 결단코 가볍지 않았다. 여러 번 멈추면서 작가의 글과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야 했다. 잰걸음으로 촘촘 거리면서 걸어가는 시간들이었다. 읽을수록 작가의 글은 점점 빠져들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찬사를 받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작품들이었다.
삶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하루하루는 가뭇없이 사라져간다. (21쪽)
12세기의 인물이 예시로 등장한다. 물론 20세기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가 찾는 건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무언지조차 모른다.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다.(39쪽)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38쪽) 삶에 대해서도 작가는 언급한다. 어느 시대이든지 모호한 열정으로 피와 시간을 잃고 있다고 작가는 강하게 말한다. 피로에 찌들었지만 무엇을 진정으로 찾고 있는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이외에도 독서에 대해서도, 책에 대해서도, 글쓰기에 대해서도 작가는 말한다. 그 무엇도 가볍지가 않다. 작가의 시선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신문 읽기와 성서 읽기에 대해서도 작가는 언급한다. 책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는 것이 독서라고 작가는 전한다. 읽는다는 것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와 독서가 가지는 의미를 분명하게 짚어보게 한다.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91쪽)
부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123쪽)
독서를 하면서 우리는 삶의 고통을 직시하게 된다. 상실과 슬픔과 불행을 대면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경험하며 그들과 대화하며 호흡을 같이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부재와 결핍이 더욱 빛나게 된다. 더불어 사랑이 무엇인지도 더욱 깊게 느끼게 된다. 사랑이 없다, 어른이 없는 어린이라고 지속적으로 작가가 말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성장하지 않고 그냥 늙어버릴 듯한 여자. 마흔다섯 살 먹은 아이. (53쪽) 자신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 되고 만다. 그냥 늙어버릴 수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른이 아닌 아이의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보게 된다. 눈을 씻고 봐도 어른은 없다. 무뚝뚝하고 시무룩한 아이들 천지다. 침울한 아이들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자신들의 시간과 힘을 소비한다. 하지만 어른은 아무도 없고, 아무 데도 없다. (22쪽)
가벼운 책 한 권처럼 보일 뿐이다. 이 책은 어떤 내용에서는 강열했고, 어떤 내용에서는 감명적이었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작가처럼 깊게 사유하게 하는 내용들도 만나기도 했다. 바람의 스치는 촉감마저도 작가는 결코 놓치지 않고 있었다. 작가가 부여잡고 있는 책과 독서와 글쓰기의 힘과 방향성은 분명했다. 그의 고독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도 더욱 선명할 뿐이었다. 서문에 적혀있는 책의 애도가 가지는 의미를 찾아 헤매면서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책 한 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 의미를 깊게 느끼게 했다. 고통을 직시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좀 더 넓고 깊게 만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가난한 여자가 글을 쓰는 시간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그러했다. 영원 앞에 나와앉은 가난한 여자. 그녀는 글을 쓴다. (83쪽) 노트와 고독과 침묵. 특이한 유형의 행복 (85쪽) 온전한 상실인 사랑. 사랑이 지나고도 살아남는 사랑 (85쪽) 그녀가 글을 쓰는 것은 그 삶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잉크라는 밀로 빚은, 빛과 침묵의 빵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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