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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소설이며 아니 에르노 시리즈 중의 한 권인 신간인 『남자의 자리』는 허구의 인물이 아닌 실제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절제되고 담담하게 사실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의 인생과 삶과 가치관들은 고스란히 그의 아들인 아버지에게도 영향력을 준다. 아버지는 자신만큼은 가난하게 살지 않으려고 절제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을 구축하면서 더 나은 삶을 향하도록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배움이 많지 않았기에 노동자의 삶을 선택해야 했고 그곳에서 활발한 어머니와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독일과의 전쟁으로 큰 혼돈을 거치기도 하고 부상을 입기도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아이가 병으로 죽는 죽음을 감당하는 한 아버지의 몸부림도 작품에는 전해진다. 하층민으로, 노동자로써 살아왔지만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살리고자 최선을 다하였음을 담담하게 전한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종부성사였다. (종부성사란, 생전에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의식) 97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 내며 말하는 법 말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몰랐다. 63쪽
예의 바른 말투는 낯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63쪽
작가는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 소설을 마무리한다. 아버지의 유쾌한 모습과 농담을 좋아했던 모습과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대화하지 않았던 모습까지도 사실적으로 전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꾸중을 하는 순간 절제되지 않는 표현들로 아이를 혼냈던 것도 고스란히 소설에 전해진다. 도서관에서 경험했던 기억들도 작가는 떠올린다. 아버지가 경계선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작가는 담담하게 기록하는 소설을 완성하고 있다. 작가인 그녀는 부르주아 계층으로 살고 있고 기억 속의 아버지는 다른 계층으로 삶을 살아왔음을 기억한다. 단적으로 사위와 장인의 관계에서 그것들이 설명된다. 장인의 죽음은 사위에는 소속되지 않은 죽음이라고 떠올린다. 충분하지 않은가.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부모들과 고학력으로 사회적 계급층으로 진입한 자녀 세대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낯선 경계선이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느꼈을 사위에 대한 감정들과 사위가 불편하게 느꼈을 감정들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있었다. 작가인 그녀는 성장한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소설로 남기면서 그녀는 아버지를 담담하게 회상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가 자신만의 방식을 살아간 명확한 이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절제하고 조심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이 작품 덕분에 정리가 되는 시간이 된다.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보여주었던 모습과 눈빛까지도 그녀는 기억하고 작품에 전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삶을 마지막으로 대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오랫동안 런던에서 지냈다. 먼 곳에서 그는 추상적인 다정함을 가진, 변함없는 존재가 됐다. 나는 나 자신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80쪽
공부는 좋은 환경을 얻고 노동자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72쪽
어머니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후 " 다 끝났다"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도 남편은 많은 기억들로 그려질 순간이 아니겠는가. 죽음이라는 경계선은 사라짐이 될 수도 있지만 영원히 기억하게 될 순간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읽는 동안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무수히 떠올려보게 했던 작품이었다. 저마다 삶의 이야기들이 다른 아버지들이다. 그래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이유를 깊게 공감하게 된다. 작가가 떠올리는 여러 감정들을 동일한 연장선에서 느끼게 하는 시간들이었다고 떠올려보게 된 작품이다.
잊고 있었던 일을 다시 불러오는 일은 새로 지어내는 것만큼 어려웠으니까. 기억이 저항한다. 90쪽
그는 자기 가게가 자신과 함께 사라질 잔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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