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집을 펼치는 순간부터 선연하다. 빠른 호흡으로 책장을 넘길 수가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을 쉬어야 했던 시집이다. 이렇게 깊게 여러 날들을 함께 할 줄은 몰랐다. 시집의 분위기와 비슷한 소설들을 최근에 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만나서인지 낯설지 않은 많은 영감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시집이다.

많은 문장들과 시어들을 여러 번 부여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결한 문장이지만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그 묵직한 질량으로 전해지는 시는 오히려 무겁게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시집의 많은 시들은 쉽게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꽤 오랜 시간 햇살 가득히 들어오는 장소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읽었던 시집이기도 하다.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때 갑자기 읽게 된 시도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중략)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중략)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오만과 무능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중략)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살아 있어라, 산 자들이 숙제를 다할 때까지.

<봄의 이름을 차지 못하고 있다> 중에서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지금의 내 아이와 같은 또래들이었다. 아픔은 또다시 할퀴고 간다. 그때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도 아픔은 그대로이다. 우리의 현주소가 너무나도 참혹하였던 그날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시인과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들만이 아픔에

순진하게 공명한다 124쪽

기운을 내라 그대여

만 평도 백 평도 단 한 뼘의 대지도 소속은 같다

삶이여

먼저 쓰는 묘비를 마저 써야지

잘 놀다 갔다

완전한 연소였다 160쪽

시집에 푹 빠져서 보낸 날들이었다. 어느 순간은 시집을 꼭 잡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오늘을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묘비를 오늘도 써 내려가야 하는 이유를 더욱 확고하게 부여잡는 날들이기도 했다. 시인의 시들을 켜켜이 품어안으면서 살아가게 한다. 함축된 의미들과 상징적인 시어들은 심연 속으로 더욱 들어가게 해주었다. <녹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집인 이유를 무수히 찾아낸 시집이다.

몸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1월이 시작되면 12월이 온다.



당신이 내 마음을 들락거린 10년 동안

나는 참 좋았어.



사렁의 무덤 앞에서

우리는 다행히 하고픈 말이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