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서사의 영토 1 - 실사와 허구 사이, 한문단편소설
임형택 지음 / 태학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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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열전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32516073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24936447

 

 

 

처음부터 한문소설-조선시대의 소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심도 없었고,

기억을 떠올려 본다고 해도 기껏해야 ‘정비석의 홍길동’ 정도만을 읽어보았을 뿐이고, 

그걸 과연 한문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 제대로 읽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대답일 것 같다.

 

그래도 이상하게 관심은 갔었다.

이유는 없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최근 들어 조금씩 관심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조선시대의 소설들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며 있었다한들 조선시대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경직적인 사회 분위기와 구조, 신분제, 지나칠 정도로 견고하고 강건한 도덕관념-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에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았었다.

 

삼강오륜을 소설로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아예 조선시대의 소설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았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저런 지식들을 접하게 되면서 조선시대도 그런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순간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견고한 사회구조를 흔드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과 단지 딱딱하고 틀에 박혀져 있는 구조-구성으로서만 바라볼 수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논의들을 산발적으로만 접했을 뿐이고 체계적으로 접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찾아볼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하나씩 알아가기에는 한계를 느껴 막연한 추측과 상상만으로 조선시대를 조금씩 다시 생각하게 되었었다.

 

궁금함을 궁금함으로써 그대로 둔다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그 길고 긴 시대로 인해서 어디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어야 할지도 마땅찮아서 간혹 생겨나던 관심도 그저 관심에서 머물렀을 뿐이고 항상 그렇듯 잠시 생각나다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책벌레들...’은 막연하게만 느끼던 관심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혹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할지를 담고 있었고, 무척 단순하게만 느껴졌던 조선시대가 그동안의 선입견과는 달리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렇게 조선시대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면서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뒤집어주었던 (그래서 여전히 충격적이고 항상 관심을 갖게 만드는) 아날학파의 논의들처럼 조선시대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런 인식의 전환과 함께 좀 더 관심은 커져버렸지만 때때로 헌책방에서 구하게 되는 책들 위주로 읽게 되어서 앎의 진척은 더디기만 했고 그나마 ‘평민열전’과 같은 책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길고 긴 시대처럼 단순함으로서 느껴지는 이면에 감춰진 다양하고 복잡한 시대의 풍경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찮게 빌려 읽게 된 ‘한문서사의 영토 01’ 또한 이런 조선시대의 다양함을 그리고 풍부함과 풍요로움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단편소설들로 채워진 소설집이고 실사와 허구 사이라는 부제처럼 실제 사실을 글-소설로써 남겨진 글이 있는가 하면, 사실이나 실제로 있었던 내용이기 보다는 창작에 의한 혹은 그 이전의 고전들을 그들 나름대로의 시대와 상황에 맞게 각색한 내용들도 있어서 다양한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인식-사고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탁월하고

빼어나다

다채로운 이야기에 넋을 잃고 감탄하게만 만든다.

 

전체 2권으로 되어 있어서 아직 모든 내용을 읽어내지 못해 절반만을 말하자면,

번역자는 1권에서는 조선건국 초기에서부터 임진왜란 직후까지의 시기 순으로 여러 한문단편들 중 번역자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선별한 작가와 작품들로 꾸며졌으며, 각각의 내용들은 단순히 기묘하고 독특한 내용의 이야기들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시대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와 함께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 알게 모르게 읽어가며 스며들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히 고전을 발굴하고 구성-배치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작품들이 어떤 연유에서 쓰인 글인지를 그리고 작가와 시대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 속에서 해석하고 해설해주고 있어서 그저 읽기만 할 뿐이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내용들도 함께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더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번역자는 그런 해석과 덧붙임을 최대한 절제하고 최소한으로 제시하려고 해서 조선시대의 신분적, 지배 이데올로기적 특성과 그 해체-전복이 이뤄지는 순간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까지는 진행시키지 않아서, 반대로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 구성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논의들은 따로 다루지 않고 있어서 그런 이야기 이면에서 찾아야만 하는 해석들을 읽어내는 사람들이 직접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여백으로 남겨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충분한 길잡이를 해주었으니 우리들은 이제 그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향하거나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번역자 본인이 무척 중요한 시기로서 언급하는 임진왜란 시기에 대해서 예상보다 적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체제존립이 뒤흔들어졌던 시기에 남겨진 글들을 통해서 그 당시의 지배계급-신분이 어떤 위기감과 체제유지를 위한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가 어렵기도 했다.

 

아마도 조선시대 전체를 다루다보니 분량의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임꺽정이나 황진이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민중들의 구전을 통해서만 전해졌을 것 같은 이야기들 또한 함께 담겨져 있어서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태도와 관념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좀 더 실감나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고,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될 때마가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강력한 도덕관념으로 무장된 지배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이 되었었는지를, 반대로 어떻게 흔들려지고 부정되어졌으며 전복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자는 그런 정치적 / 사회적인 해석만이 가능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 이야기 그 자체의 매력으로 충분한 글들도 수록하고 있고, 엇비슷한 이야기들이 어떤 차이와 유사성 그리고 변형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글들을 읽어낼 수 있는 여지를 계속해서 남겨놓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 초기와 중기의 이야기 구성이나 진행방향이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를 검토해보는 것도, 번역자가 자주 언급하는 서사의 구성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번역자는 이처럼 단순히 재미나고 매력적인 혹은 특이한 이야기들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수록해서 여러 방식들로 읽어낼 수 있도록 정교하게 채우고 있다.

 

번역자의 언급처럼 일반 독자, 문학 및 영상예술의 작가, 전문 연구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이 다채롭고 풍성한 잔칫상을 마음껏 즐기고 그 이후에 어떤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1권에 수록된 단편 중 빼어난 실력의 악사가 자신의 음악을 글처럼 남기지 못함을 서운하게 생각하며 슬퍼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생각을 이어가며 생각해보니 ‘책벌레들...’에서 결국 조선을 지탱해왔던 것은 글-책이라는 결론을 떠올리게 되고, 문(文)이 무(武보)다 앞세워진 이데올로기적 지평 위에 세워진 시대이고 공간이었다면 그들의 생각과 사고 그리고 그 시대와 관한 수많은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이렇게 남겨진 글-이야기들을 통해서 우선 확인해야만-검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쉽게 만들어질 수 없었던 시대에 만들어져서

쉽게 남겨질 수 없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남겨진 책들과 글들은 그런 이유로 인해서 나름대로의 남겨지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찾아내고 확인해가며 조선시대를 그리고 과거의 선조들의 생각들과 지혜들을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남겨진 이유가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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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윈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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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말로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3626754

빅 슬립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3630168

안녕 내 사랑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95187485

호수의 연인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3817476

기나긴 이별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3423765

 

 

 

레이먼드 챈들러의 세 번째 필립 말로 시리즈인 하이 윈도는 언제나처럼 자신만의 규칙을 지켜내는 필립 말로를 중심으로 추악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들을 허무감으로 찌든 시선으로 뒤쫓고 있다.

 

항상 그렇듯 피곤하고

언제나처럼 회의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정한 규칙을 포기하려고 하진 않는다.

어떻게든 지켜내고 그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깨달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번역자나 해설자의 지적처럼 다른 필립 말로 시리즈에 비해서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 물건을 찾는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필립 말로 시리즈에서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큰 차이로서 생각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우리들에게 레이먼드 챈들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 구성과 의뢰된 사건을 해결해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과 그 상황들에서 나타나는 우리들의 숨길 수 없는 본연의 모습들을 들춰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은 비겁하고

그 비겁함 속에서 각자 무언가를 지켜내려고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들이 그러는 모습들을 부족함 없이 담아내고 있다.

 

항상 강인한 모습만을 보이고

모든 것에 대해서 거리감을 갖고 냉소적인 말로 사람의 기분을 비비꼬이게 만드는 필립 말로의 말재주는 여전하고 그의 냉소와 재치 그리고 추악한 모습들을 보고 싶지 않지만 결국 들여다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서 스스로를 비관하면서도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는 모습을 통해서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점점 더 자신이 정한 방식에서 멀어지게 되어가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찾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매끄럽게 만드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지 계속해서 앞부분을 다시금 들춰보며 이야기를 쫓아가게 만들고, 잘 외워지지 않는 이름들을 확인하느라 짜증스럽게 책을 뒤적거리게 만들지만 필립 말로라는 매력적인 주인공 덕분에 귀찮고 짜증나면서도 흥미롭게 그의 고생담을 함께할 수 있었다.

 

탁월하다는 말만 나오게 되는 멋진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져 있고, 그 문장들을 읽어가며 도시를 그리고 하드보일드를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우면서도 지저분하게 써내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재주의 매력에 한껏 빠져들었다.

 

 

 

참고 : 무척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필립 말로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좀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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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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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인상파 작품들을 무척 좋아하고,

인상파로 분류되는 이들 중에서 모네의 그림들을 특히나 좋아하기 때문에 인문학 특강을 통해서 운이 좋게 얻게 된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는 우연하게 얻은 책이기는 하지만 무척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인상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과 그림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저자는 그림에 주목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딴청을 부리는 책일지도 모른다며 그림과 화가에 얽힌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그림과 화가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을 함께 다뤄내면서 단순히 그림을 그림으로서만이 아닌 한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시도이기도 하다는 것을(그림을 통해서 한 시대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을) 읽는 이들이 이해하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대중적이면서도 단순히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논의들도 있어서 입문자로서 무척 소중한 내용들로 채워진 것 같다.

 

하지만 인상파에만 한정된 논의이기도 하고,

인상파들이 활동을 했던 19세가 중반 / 20세기 초라는 한정된 시기만을 다루기 때문에 그림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거나 자세함이 적게 느껴질 수 있기도 하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서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논의가 되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함께 읽으면서 좀 더 풍부한 읽고 보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더해서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파리, 모더니티를 읽게 된다면 19세기의 파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상파의 탄생과 종언이라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시켜나갔던 수많은 작가들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해주며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고, 단순히 그림에 대한 평가만이 아닌 그 그림이 만들어지게 되는 사회적인 변화와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무척 상세하게 다뤄주고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인상파 그림이 완성됨과 함께 그 그림을 넘어서려는 시도 또한 다루면서 하나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이어짐으로 논의는 완성되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되는 이유와

보다 거리감이 거치게 된 도시와 농촌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망의 주도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파리

기차의 등장으로 인해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발전으로 인해서 생겨나게 된 여가

그렇게 변화되는 사회와 공간과 문화는 삶을 변화시키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시선도 그리고 그림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게 만들었고 저자는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인상파를 다뤄내고 있다.

 

좋아하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인상파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어째서 그들의 그림()이 좋았는지에 대해서도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논의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아마도 저자가 줄기차게 얘기하듯 인상파가 바라보던 시선에 눈길이 끌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상파가 바라보았고 그 바라봄을 통해서 자신들의 시선을 그림으로 남기듯이 지금 세상을 바라보고 현재의 감수성을 찾아내며 그것들을 무언가로 남겨내는 사람들이 과연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척 고민스럽게 대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있기나 한 것인지... 그게 의문스럽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 중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생각하고 싶어질 때마다 펼쳐보게 될 것 같다.

 

 

 

참고 : 자주 언급되는 시선과 시각에 대한 문제를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해본다면 원근법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인상파라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 벗어남이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냈는지를 떠올려봐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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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4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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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그리틱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트랜스그리틱이 무척 의미 있는 논의들과 여러 생각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논의들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저서들을 찾아 읽게 되면서 그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어떤 논의와 어떤 의미들을 찾았느냐고 물으면 입만 뻥긋거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사상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국내에서는 그의 저서들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은 제목처럼 일본 근대문학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검토이면서도 단순히 그런 검토로서 끝날 수 있는 논의를 넘어선 시선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비평가에서 이론가의 입장으로 넘어서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그의 저서들과 그의 업적들 그리고 시기적인 특성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부족하기만 하니 그런 것들은 그에 대해서 좀 더 면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니체와 푸코의 계보학적인 방식으로 일본 근대문학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그런 방식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입장이 일정하게 가미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풍부한 논의기 가능할 것 같으며 그의 문제의식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매우 압축적인 방식으로 근대화가 진행된 한국의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특히나 더 한국에서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질 수 있기도 한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이 자주 거론하고 있는 작가들 중 기껏해야 나쓰메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정도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논의를 쉽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일정하게 거리감을 갖고 이해되기도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은 (그리고 번역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 대해서 여러 방식으로 언급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의 근대문학이 생겨나게 된,

무척 오랜 기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고 느껴지고 이미 있었던 것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 역사와 기원은 짧기만 하다는 것을 주장하며 논의를 시작하고 있고, 나쓰메 소세키를 대표적으로 근대문학이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일정한 정체성에 대해서 인식하게 만들게 되는지를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풍경을 인식하게 만드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감수성과 시선을 갖게 되는 과정을 정교하게 검토하고 있지는 못하지만(무척 짧은 방식으로 논의를 정리한다) 여러 작가들에 대한 분석과 함께 변화의 과정을 알려주며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갖게 되는 시선의 변화에 대한 논의를 더하면서 이런 외부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내면의 발견을 통해서 무엇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언문일치 운동에 대해서 언급을 하며 그동안의 말하기 /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 나타나면서 어떻게 내면이 다뤄지게 되는지를 검토하고, 글과 말의 관계가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관계가 되는 것과 함께 그것이 사회-국가의 제도를 통해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런 변화에 대한 예민한 분석과 함께 내면이 인식되고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푸코를 통해서 더욱 더 강조되는 고백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일본 특유의 사소설에 대한 특징들과 어떤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와 함께 그것들이 어떻게 그 기원이 은폐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기원에 대한 검토 중에서 일본에 유입된 기독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이 흥미로웠고, 후반부에 논의되고 있는 질병이 갖고 있는 의미의 변화와 은유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어떻게 질병이 언급되고 논의되는지를 분석하는 내용은 제프리 C. 보커 / 수전 리 스타의 사물의 분류가 잠시 떠올려지기도 했다.

 

이런 논의와 함께 일본의 문학에서 어떻게 아동이 등장하고 논의가 되는지를 검토하는 등 일본의 근대문학을 통해서 근대화가 갖고 있는 특징과 함께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의 일정한 연속성이 있기도 하지만 급격한 도약이나 단절이 있기도 하다는 점을 가라타니 고진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특히나 아동의 발견을 통해서 어떻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시선이 나타나는지를 검토하며 근대로 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화들에 대한 검토는 아날 학파의 방식들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석을 해내기 때문에 비슷한 결론을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찾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에서는 문학이 갖고 있는 구성력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근대 이전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특성들과 그 이후의 특성들을 비교하며 무엇이 변했는지를 찾아보면서 그런 변화와 함께 그것이 우리들의 시선의 변화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원근법으로 대표되는 시선의 변화가 이야기의 구성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알려주면서 반복해서 가라타니 고진은 그 변화의 중심에는 근대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다.

 

근대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행하면서 겪게 되는 그 수많은 변화들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 영향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그 이전의 과거들을 바라보면서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는데, 가라타니 고진은 바로 그것들을 깨우쳐주고 있고, 이야기의 완성과 함께 그 이야기의 완성을 일부러 거부하는 방식들이 갖고 있는 특성들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면서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대화 과정이 갖고 있는 특성과 일본 사회가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나타냈던 특이성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확인하고 있다.

 

마지막 나쓰메 소세키를 다시금 논의하면서 장르적인 구분과 그 사라짐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서도 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해와 장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서 짧은 내용 속에서 무엇을 논의하는지 쉽게 이해되지가 못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의 근대문학을 통해서 근대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고 그 형성의 과정 속에서 이전의 과거와 어떤 단절들을 보여주고 있는지 자세히 검토하고 있는데, 연속성의 특성보다는 단절과 절단의 특성을 좀 더 강조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특성에 대한 논의에서 일본만이 아닌 근대화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변화와 함께 그 변화에서 함께 나타나는 개별적인 차이들을 함께 검토하며 일정한 같음과 일정한 다름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문학에만 한정해서 논의하면서도 문학에만 한정되지 않는 논의이기도해서 무척 흥미롭기는 했지만 생각만큼 쉽게 이해되기가 어렵기도 해서 앞으로도 좀 더 생각해보며 그 논의를 다시금 파악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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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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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대단원의 끝맺음인 문라이트 마일은 그동안의 고생담에 대한 자연스러운 안식이면서도 그 결말이 후련함 보다는 쓰디씀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비극성과 암울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개운한 마무리가 아닌

뒤숭숭한 기분의 우울한 마무리를 선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4번째 작품 가라, 아이야, 가라의 속편의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가라, 아이야, 가라의 속편만이 아닌 다른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작품들도 부분적으로 다시금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재구성-재활용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과 비교하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과거 작품들의 되새김이 문라이트 마일의 독자성을 부족하게 만들고 시리즈의 끝맺음을 위한 내용 구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야기 진행이고,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끝을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내용 진행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언뜻 과거 작품들을 언뜻 생각나도록 만드는... 그런 느낌이 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데니스 루헤인은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말고도 하드보일드-범죄소설 장르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만큼의 재미와 흡인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실패한 시도들이라고 생각되지만(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미스틱 리버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조금은 미뤄야 할 것 같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이외의 작품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와 재미가 있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좋은 작가라고 생각되고, 아쉽게도 이번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만날 것 같지 않다는... 마지막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들이 어떤 완성도를 보여줄지 궁금함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문라이트 마일가라, 아이야, 가라의 속편의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고, 아만다 실종 사건이 종결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건은 시작되고 있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부터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는 사립탐정으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와 내면적 갈등 그리고 자괴감은 좀 더 커졌고, 그런 고민과 함께 앤지와 가정을 꾸리고 딸아이가 있는 등의 가장으로서의 모습과 시대적으로는 경제적인 불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경제적인 곤란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전보다 더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를 바라는 기도이후 10년이 넘는 기간의 공백기를 읽는 이들도 느끼도록 하려는 듯 다양한 소품들과 여러 대화들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변해버린 시대상을 확연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고, 그런 시대의 풍경 속에서 자신이 늙었음을 그리고 모든 것에 지쳤고 회의에 빠졌음을 알려주는 여러 독백들을 통해서 문라이트 마일은 한편으로는 다시금 사라진 아만다를 찾고 그 찾게 되는 과정 속에서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의 선택에 대한 (예상하기는 했지만) 뼈아픈-현실적인 결론을 마주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패트릭 켄지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 패트릭 켄지의 현실에 좌절하고 세상에 좌절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가 진행이 될수록 앤지 제나로는 점점 더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만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거의 비중이라고 찾을 수 없는 조역에 불과할 뿐이고 부바와 마찬가지로 예전의 개성 넘치는 모습들을 기억나게만 만들고 그 모습들마저 희미하게만 기억나게 되는 그런 미미한 존재로서 축소되는 느낌이 들어 앤지와 부바의 팬들이라면 아쉽게 느껴졌을 것 같지만 달리 본다면 데니스 루헤인은 좀 더 패트릭 켄지에 집중해 이야기를 완성시킴으로써 이 시리즈가 마치 보스턴-도체스터를 배경으로 하는 오디세이아로 완성시키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디세이아와 엇비슷한 끝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볼 수 없기도 할 것 같다.

생각에 따라서는 이보다도 더 불편한 결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라이트 마일은 어떤 의미에서든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의 패트릭 켄지의 선택을 철저히 부정하는 작품일 것이고, 사정없이 가혹하고 잔인하기만 한 보복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견디기 어려운 결말이고 충분히 가슴 아프고 애초의 선택에 대한 불길함을 설득력 있게 서글픈 결말로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분적으로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의 결말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아만다를 통해서 신성한 관계에서의 데지레를 좀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진행과 흡인력 그리고 박진감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결말에 가서의 반전과 슬픈 마무리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가 갖고 있는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이 갖고 있는 비극성과 완결성을 충분히 만들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완성에 있어서의 만족감은 이전과 달리 조금은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 같다.

 

우선 느끼게 되는 아쉬움은 패트릭 켄지가 많은 모순과 틀렸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선택했던 그 결심들에 대해서 다시금 그 선택을 반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런 선택들로부터 도망치거나 그냥 그대로 두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인데,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고 감춰졌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거기서 더 이상의 행동을 옮기지 않고 개입하기를 꺼려하면서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아만다를 통해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그릇된 결과를 만들었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 패트릭 켄지 본인이 아만다에 대한 선택에 후회하거나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없으면서 새롭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어떤 선택이나 갈등도 없이 도망치듯 가족으로 향한다는 점은 좌절로 인한 더 이상의 선택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만 느껴진다.

 

변명하듯이 도망치는 모습이랄까?

그동안의 고난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갖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그동안 겪어왔던 수많은 고난들과 고비들 덕분에 모든 것으로부터 환멸을 느끼게 된다는 점과 그래서 결국 지금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보겠다는 모습에 멋진 마무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선택 전에 그동안 그가 수많은 갈림길에서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해냈던 선택들을 이번 작품에서는 그 선택에서 비켜서고 미루기만 하는 모습에서 좀 더 복잡한 존재로서 패트릭 켄지가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흔한 말로 좀 더 현실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주어진 선택에 대해서 우리들과 다를 것 없이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자신과 무관함을 좀 더 내세우는 모습에서 패트릭 켄지가 그간 갖고 있었던 자신만의 규칙에서 사회와의 일정한 갈등에서 도망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로 선택했다는 생각을 들도록 만든다.

 

아마다가 겪었던 과거와 그리고 겪어야 할 미래들을 생각하며 그녀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게 되거나 한편으로 대견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선택했고 행했던 여러 잘못들에 대해서 단순히 훈계나 비판으로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은 좀 더 패트릭 켄지의 모습에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 같다.

 

작품은 아만다에 대해서 그릇됨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녀의 선택에 어떤 매력을 불어넣고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데니스 루헤인이 부분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수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도 예전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입장의 변화 이후의 결론이 어떤 의미에서 무척 자연스럽기도 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패트릭 켄지는 세상과의 갈등을 뒤로하고 가족으로 향하고 자신의 가족과 친구인 부바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은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그가 그 수많은 모험과 온갖 고난 끝에 선택하는 가족이라는 명확한 테두리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자신과의 무관함을 강조하는 모습은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등을 돌린 것이 맘에 걸려서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드는 모습과 분명하게 달라졌음을 알려주고 있고, 그 자기부정과 자기긍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보다는 모든 것들을 잊고 안정과 평온을 찾겠다는 결론을 찾아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 속에서는 당연한 결말인 것 같다.

 

가족과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변사람들에 대한 확실한 선긋기는 이전과는 꽤 달라진 모습이고 이것을 매우 미국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동안의 서구-근대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런 선택이 아만다와 대립되기 보다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마찬가지의 결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아만다 또한 그녀 스스로 자신만의 규칙 속에서 행동했고 그 과정 속에서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고 정당함을 항변하겠지만 자신이 정한 가족들을 만들어내는-지켜내는 과정으로 인해서 만들어낸 죽음들과 타협들(약물중독의 드레는 쉽게 죽이면서 온갖 범법을 자행하는 마피아 조직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마피아 조직 때문인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에 외면하고 있을 뿐이고, 그런 외면은 패트릭 켄지와 아만다 맥크레디 둘 다 동일한 정서와 논리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서는 누구도 죽일 수 있다는 가라, 아이야, 가라의 마지막 주장을 문라이트 마일은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현재의 미국은 바로 이 논리 속에서 모든 선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선택이 단순히 미국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논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대부분은 이 논리 속에서 선택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근데, 이 논리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쉽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게 된다면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세상과 다툼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바로 그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버지와의 격렬한 갈등과 함께 세상에 대한 냉소와 환멸 그러면서도 애정을 보여주었던 작품이 점차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는 세상 속에 머무는 것을 긍정한다는 점은 세상에서 이탈된 존재들이기도 했던 그것을 긍정하기만 했던 이들이 세상으로 귀환한다는 방식으로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이면서 서구-근대의 세계관이라는 밑바탕 위에 서있는 이야기 구조일 것이고 결론도 아주 틀린 결론은 아닐 것 같다.

 

하나의 성장소설일 것이며,

하나의 개인이 완성되는 작품일 것이며,

벗어난 존재가 세계 안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일 것이며,

어떤 합리화가 완성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걸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안타까움을 가져야 할 것이고 좀 더 치열하게 세상을 싸워나가길 독촉해야 할 것인가?

그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는 이미 패트릭 켄지가 겪었던 사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그런 결론을 내놓지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어떤 결론을 내놓아야 한다면,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는 전제 속에서 조심스럽게 지금의 패트릭 켄지의 선택에 대해서 의문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그렇게는 말해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이정도만이라도 말해야 할 것 같다.

근데, 이걸 누구에게 강요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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