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서사의 영토 1 - 실사와 허구 사이, 한문단편소설
임형택 지음 / 태학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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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열전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32516073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24936447

 

 

 

처음부터 한문소설-조선시대의 소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심도 없었고,

기억을 떠올려 본다고 해도 기껏해야 ‘정비석의 홍길동’ 정도만을 읽어보았을 뿐이고, 

그걸 과연 한문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 제대로 읽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대답일 것 같다.

 

그래도 이상하게 관심은 갔었다.

이유는 없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최근 들어 조금씩 관심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조선시대의 소설들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며 있었다한들 조선시대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경직적인 사회 분위기와 구조, 신분제, 지나칠 정도로 견고하고 강건한 도덕관념-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에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았었다.

 

삼강오륜을 소설로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아예 조선시대의 소설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았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저런 지식들을 접하게 되면서 조선시대도 그런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순간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견고한 사회구조를 흔드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과 단지 딱딱하고 틀에 박혀져 있는 구조-구성으로서만 바라볼 수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논의들을 산발적으로만 접했을 뿐이고 체계적으로 접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찾아볼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하나씩 알아가기에는 한계를 느껴 막연한 추측과 상상만으로 조선시대를 조금씩 다시 생각하게 되었었다.

 

궁금함을 궁금함으로써 그대로 둔다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그 길고 긴 시대로 인해서 어디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어야 할지도 마땅찮아서 간혹 생겨나던 관심도 그저 관심에서 머물렀을 뿐이고 항상 그렇듯 잠시 생각나다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책벌레들...’은 막연하게만 느끼던 관심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혹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할지를 담고 있었고, 무척 단순하게만 느껴졌던 조선시대가 그동안의 선입견과는 달리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렇게 조선시대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면서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뒤집어주었던 (그래서 여전히 충격적이고 항상 관심을 갖게 만드는) 아날학파의 논의들처럼 조선시대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런 인식의 전환과 함께 좀 더 관심은 커져버렸지만 때때로 헌책방에서 구하게 되는 책들 위주로 읽게 되어서 앎의 진척은 더디기만 했고 그나마 ‘평민열전’과 같은 책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길고 긴 시대처럼 단순함으로서 느껴지는 이면에 감춰진 다양하고 복잡한 시대의 풍경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찮게 빌려 읽게 된 ‘한문서사의 영토 01’ 또한 이런 조선시대의 다양함을 그리고 풍부함과 풍요로움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단편소설들로 채워진 소설집이고 실사와 허구 사이라는 부제처럼 실제 사실을 글-소설로써 남겨진 글이 있는가 하면, 사실이나 실제로 있었던 내용이기 보다는 창작에 의한 혹은 그 이전의 고전들을 그들 나름대로의 시대와 상황에 맞게 각색한 내용들도 있어서 다양한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인식-사고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기도 하는 작품이었다.

 

탁월하고

빼어나다

다채로운 이야기에 넋을 잃고 감탄하게만 만든다.

 

전체 2권으로 되어 있어서 아직 모든 내용을 읽어내지 못해 절반만을 말하자면,

번역자는 1권에서는 조선건국 초기에서부터 임진왜란 직후까지의 시기 순으로 여러 한문단편들 중 번역자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선별한 작가와 작품들로 꾸며졌으며, 각각의 내용들은 단순히 기묘하고 독특한 내용의 이야기들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시대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와 함께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 알게 모르게 읽어가며 스며들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히 고전을 발굴하고 구성-배치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작품들이 어떤 연유에서 쓰인 글인지를 그리고 작가와 시대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 속에서 해석하고 해설해주고 있어서 그저 읽기만 할 뿐이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내용들도 함께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더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번역자는 그런 해석과 덧붙임을 최대한 절제하고 최소한으로 제시하려고 해서 조선시대의 신분적, 지배 이데올로기적 특성과 그 해체-전복이 이뤄지는 순간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까지는 진행시키지 않아서, 반대로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 구성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논의들은 따로 다루지 않고 있어서 그런 이야기 이면에서 찾아야만 하는 해석들을 읽어내는 사람들이 직접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여백으로 남겨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충분한 길잡이를 해주었으니 우리들은 이제 그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향하거나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번역자 본인이 무척 중요한 시기로서 언급하는 임진왜란 시기에 대해서 예상보다 적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체제존립이 뒤흔들어졌던 시기에 남겨진 글들을 통해서 그 당시의 지배계급-신분이 어떤 위기감과 체제유지를 위한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가 어렵기도 했다.

 

아마도 조선시대 전체를 다루다보니 분량의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임꺽정이나 황진이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민중들의 구전을 통해서만 전해졌을 것 같은 이야기들 또한 함께 담겨져 있어서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태도와 관념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좀 더 실감나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고,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될 때마가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강력한 도덕관념으로 무장된 지배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이 되었었는지를, 반대로 어떻게 흔들려지고 부정되어졌으며 전복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자는 그런 정치적 / 사회적인 해석만이 가능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 이야기 그 자체의 매력으로 충분한 글들도 수록하고 있고, 엇비슷한 이야기들이 어떤 차이와 유사성 그리고 변형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글들을 읽어낼 수 있는 여지를 계속해서 남겨놓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 초기와 중기의 이야기 구성이나 진행방향이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를 검토해보는 것도, 번역자가 자주 언급하는 서사의 구성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번역자는 이처럼 단순히 재미나고 매력적인 혹은 특이한 이야기들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수록해서 여러 방식들로 읽어낼 수 있도록 정교하게 채우고 있다.

 

번역자의 언급처럼 일반 독자, 문학 및 영상예술의 작가, 전문 연구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이 다채롭고 풍성한 잔칫상을 마음껏 즐기고 그 이후에 어떤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1권에 수록된 단편 중 빼어난 실력의 악사가 자신의 음악을 글처럼 남기지 못함을 서운하게 생각하며 슬퍼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생각을 이어가며 생각해보니 ‘책벌레들...’에서 결국 조선을 지탱해왔던 것은 글-책이라는 결론을 떠올리게 되고, 문(文)이 무(武보)다 앞세워진 이데올로기적 지평 위에 세워진 시대이고 공간이었다면 그들의 생각과 사고 그리고 그 시대와 관한 수많은 것들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이렇게 남겨진 글-이야기들을 통해서 우선 확인해야만-검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쉽게 만들어질 수 없었던 시대에 만들어져서

쉽게 남겨질 수 없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남겨진 책들과 글들은 그런 이유로 인해서 나름대로의 남겨지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찾아내고 확인해가며 조선시대를 그리고 과거의 선조들의 생각들과 지혜들을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남겨진 이유가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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