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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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유럽을 중심으로) 중세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게 될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뒤늦게 읽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추천을 해서 읽어볼 생각을 했었지만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서 미루게 되었는데, 너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읽지 못하기는 했지만 대충이나마 읽어보게 되었다.

 

요즘에는 책을 읽으면서 집중을 하면서 읽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저자인 리오 휴버먼은 미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하고, 그의 대표작인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전세계적으로도 자본주의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지금과 같은 체제-체계-구조로 이뤄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가장 명쾌하고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꽤 오래된 책이지만(1930년대 말에 출판되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 꼽히는 것 같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분석해보려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리오 휴버먼 또한 좌파적-진보적 시각 속에서 자본주의의 시작과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에 관해서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봉건제에서 어떤 식으로 자본주의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내용과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변화들을 두루 살펴보고 있는데, 이미 이런 내용들을 다른 책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고, 알고 있던 내용들을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순서 없이 알고 있던 내용들을 좀 더 정돈시켜 알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에 좋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통 받고 핍박받은 이들에 관한 내용들과 가혹한 노동조건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었고, 분노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들, 투쟁과 억압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번 접한 내용들이지만 여전히 함께 분노하게 만들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든다.

 

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에 발표된 내용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허전함을 느끼게 만드는 끝맺음이었지만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에 대해서 무척 불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리오 휴버먼의 통찰력을 알 수 있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만한 체제-체계도 아니고 세상이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가 바라보듯이 명쾌하고 명확하게 다뤄지기가 어려운 복잡함으로 가득하기는 하지만 저자의 단호한 입장을 받아들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사회가 구성되었는지를 알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있어야지만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내용인 것 같다.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나

경제학과 관련된 이론적 논의에 대해서나

많은 내용들을 쉽게 잘 간추려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입문서로 부족함이 없는 내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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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전집 3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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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 중 하나로 항상 꼽게 되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저자인 이탈로 칼비노는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도시들말고는 읽어본 책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작가라고 말하기도 머뭇거려지고 어떤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인지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궁색해지기만 했던 작가였다.

 

물론, 그렇게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작가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한두명으로 끝나겠나)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워낙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해서 자주 감탄해왔었고, 그렇게 요란스럽게 칭송하는 책의 저자에 대해서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인 것 같았다.

 

나에게 있어서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위대한 책의 저자라고만 말하게 되었고, 그렇게만 알고 있는 작가였다. 그리고 그건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소설들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구하게 된 나무 위의 남작은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이탈로 칼비노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나무 위의 남작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비해서는 (당연히) 덜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읽는 재미를 만들어내고 흥미로운 이야기 진행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한 각별함 때문에 실망하며 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이 잘 읽혀지지 않았는데, 건성으로 읽어가다가 점점 더 놀라움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감탄하며 책을 덮게 된 것 같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이탈로 칼비노는 (다분히) 감정적인 선택에 의해서 나무 위로 올라가 생활하게 된 코지모를 주인공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과 함께 시대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게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어쩐지 숨겨진 의미가 있어 보이는 몇몇 상징적인 설정들과 의미심장한 내용들은 단순히 우화로 읽혀지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싶어지게 된다.

 

옮긴이의 상세한 해설 덕분에 그런 적극성은 더욱 부채질해졌지만 아쉽게도 옮긴이처럼 감춰진 의미들을 찾아내진 못해서 그저 우화를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지금 시대를 곁눈질하게 된다는 말 정도만 꺼내게 될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거듭해서 지적되는 상상력으로 채워진 설정들과 이야기들이 일정하게 역사적 사실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어가면서, 하나의 우화로 다뤄질 수 있는 내용들이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도록 만드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혀지게 되는 것 같다.

 

주인공인 코지모의 동생이 형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면서 진행되는 나무 위의 남작은 어째서 코지모가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나무 위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게 되었는지를, 처음에는 감정에 휩쓸린 선택이었을 뿐이고 고집스럽게 그 선택을 고수하던 코지모였지만 그 고집스러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세상에 대한 관조와 이해를 하려고 하게 되었는지를, 여러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거리감을 갖으면서도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빼어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인상 깊은 순간들을 어렵지 않게 설득시키고 재미로 가득하게 읽혀지도록 만드는 재주가 놀랍기만 할 뿐이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숨겨진 의미들을 깨닫게 만드는 능력 또한 감탄하게만 만들 뿐이다.

 

처음에는 별난 설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무 위로의 올라섬이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의 이어짐을 보여주는지 감탄하며 읽게 되었는데, 타고난 이야기꾼인 이탈로 칼비노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에 여러 의미들을 겹쳐놓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더욱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쉽게 읽혀지지만 세상에 대한 통찰력은 비범함으로 가득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끼어들기도 하고, 하나의 우화이면서 역사적 순간을 패러디-모방하기도 하고 재평가하기도 하면서 이탈로 칼비노는 다양한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 의미들을 생각해보도록 알게 모르게 의도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그 설정을 갖고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훌륭함 덕분에 무덤덤하게 읽혀지면서도 읽는 재미를 조금씩 느꼈을 뿐이었는데, 점점 더 이야기가 탄력을 받고 빠른 속도로 이끌어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단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저자로 기억하기에는 그의 글재주는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조금씩이라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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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1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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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acomics.co.kr/archives/17835#.U8rq4UDSxNY

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78144072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걸작) 그래픽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 중의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고, 단순히 그래픽 소설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추켜세워질 뿐만 아니라 그래픽 소설을 넘어서 문학작품으로서 평가되기도 하는(하지만 앨런 무어는 그런 식으로 평가된다면 무척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앨런 무어는 오직 그래픽 소설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만 ‘왓치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할 것 같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그 명성으로 인해서 너무 큰 기대를 갖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래픽 소설의 영역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는 그래픽 소설에 대해서 많은 이해가 없음에도 충분히 공감되는 평가일 것 같고, 그림과 글로 구성된 작품을 넘어서 좀 더 유기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작품이기도 할 것 같다.

 

그래픽 소설에 대해서 좀 더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더 호들갑스럽고 자세하게 설명해줄 것 같으니 이 위대한 작품에 대한 장황한 칭송은 이쯤에서 그쳐도 될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왓치맨’을 원작을 통해서 접하기 보다는 영화를 통해서 거꾸로 접하는 경우게 된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느슨한 진행을 이유로 들어) 영화에 비해서 야박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세세한 내용들까지 다뤄지고 있고,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여러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해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원작의 탁월함을 반복해서 얘기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진행의 순서상으로는 영화와 조금은 다른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영화나 원작이나 크게 차이가 없으며, 영화가 원작을 좀 더 압축시켜서 진행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렵거나 헷갈리게 만들면서 읽혀지진 않고 있다.

 

코미디언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해서 의문스러움을 느낀 로어셰크가 코미디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뤄내고 있는 ‘왓치맨’은 영화에서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대해서 원작에 비해서는 덜 상세하게 다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원작을 보게 된다면 좀 더 등장인물들의 관점들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로어셰크의 경우 일기를 통한 독백으로 사회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혐오를 계속해서 강조하면서 어째서 그렇게 뒤틀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깊숙이 탐구하고 있는데, 나중에 다뤄지는 정신과의사와의 면담이 더해지면서 코미디언의 냉소적인 입장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무척 다른 입장을, 외골수 적이면서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어떻게 삐뚤어진 방식으로 사회로 향하도록 했는지를 알도록 만들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잠시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다.

 

이처럼 ‘왓치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서는 견디기 어려운 작품으로 생각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진행 도중 별도의 내용들(회고록의 발췌, 기사, 인터뷰, 보고서 등등)을 통해서 좀 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고, 작품이 진행되는 시점 이전의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왓치맨’의 세계관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내용들도 있어서(그게 아니면 장황한 설명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생략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무척 복잡한 성격의 작품으로 이해되도록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다지 친절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코미디언의 죽음으로 인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와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되짚고 있고, 그런 거슬러 올라오는 과정을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성격 그리고 특징들을 강조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고 확장시키고 있기도 한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수성과 내면에 대해서 조금은 단편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었던 내용들이 그래픽 소설을 통해서는 좀 더 공감하게 만들고 있고, 그들의 고독과 우울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게 되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앨런 무어는 그래픽 소설만이 그가 원하는 수준만큼 깊이 있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을(또한 이야기를 통한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권의 후반부에서 자세하게 다뤄지는 닥터 맨해튼이나 로어셰크에 관한 내용들을 생각한다면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닥터 맨해튼의 고독이나 

로어셰크의 어둠이나 

 

오직 그래픽 소설을 통해서만 더 그들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왓치맨’의 다른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검은 수송선 이야기는 빼버렸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좀 더 암울함과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만족스럽게 ‘왓치맨’의 이야기와 결합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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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2 - 시공 그래픽 노블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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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고 : http://acomics.co.kr/archives/17835#.U8rq4UDSxNY

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78144072

왓치맨 – 1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067280084

 

 

 

1권에서 이어지는 2권은 그동안 코스튬 히어로 생활을 그만두고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나이트 아울이 자신의 무기력하기만 한 삶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 곁에서 그를 응원하는 실크 스펙터와 다시금 코스튬 히어로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스스로를 옥죄듯이 지내던 나이트 아울이 코스튬 히어로 생활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무기력에서 벗어나 활력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성적인 무기력에서도 벗어난다는 설정은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되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서 진행되고 있는데, 나이트 아울을 통해서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고 있고, 나이트 아울이 로어셰크를 탈옥시키면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았지만, 다시금 닥터 맨해튼을 등장시키며 로어셰크-나이트 아울, 닥터 맨해튼-실크 스펙터로 분할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시간이 미래와 과거가 하나로 겹쳐져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닥터 맨해튼과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닥터 맨해튼에게 질릴 만큼 질려버린 실크 스펙터의 갈등을 ‘왓치맨’은 무척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런 갈등과 함께 실크 스펙터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함께 다루면서 감춰졌던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진실을 알게 되어 괴로움에 빠진 실크 스펙터와 그런 실크 스펙터의 모습을 바라보며 삶과 생명의 의미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닥터 맨해튼의 모습은 약간은 주된 이야기의 진행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지만 코미디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고, 과거의 코스튬 히어로들의 복잡한 관계들과 닥터 맨해튼을 통해서 무의미함에서 의미 있음으로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내용도 함께 구성시켜서 느슨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핵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상황은 악화되어가고, 로어셰크와 나이트 아울은 코미디언의 죽음부터 시작된 모든 음모가 한때는 그들의 동료였고,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 중 하나인 오지맨디아스가 꾸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로어셰크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일기와 그동안의 삶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오지맨디아스, 그들이 벌이는 결투와 함께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계획했는지 그리고 실행했는지를 알려주며 지금까지 느껴졌던 수많은 궁금증들을 하나씩 해소해주고 있고,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오지맨디아스의 결과물은 한꺼번에 모든 진실을 알려주고 있으면서도 충분한 설명과 함께 놀라운 상황을 맞이하게 만든다.

 

너무나 엄청난 규모의 음모였고,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지기만 한 계획이었는데, 이야기의 진행에서 조금씩 흘려주던 조각난 사실들이 하나로 합쳐지니 당혹스러운 진실로 펼쳐지게 된다.

 

그래픽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영화에 비해서는 좀 더 각자의 입장을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논의들과 타협들을 좀 더 생각해가며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만들어내는 결말에 비해서 좀 더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는데, 여전히 오지맨디아스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런 계획을 실행하게 되기까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지만 그걸 실제로 저질렀다는 점에 로어셰크와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저질러진 상황에서 로어셰크와 같이 끝끝내 진실에 등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커지겠지만, 단호하게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게 아니면 나이트 아울이나 닥터 맨해튼과 같이 거짓된 진실이고 추악한 평화이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무척 고민된다.

 

결국 코미디언처럼 애초부터 현실에 대해서 냉소하고 비웃듯이 살아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로어셰크처럼 구역질나는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싶으면서도 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등 돌리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더 적절한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여러 내용들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작품이고, 방대한 정보로 가득한 내용이라 한번으로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도 있고, 좀 더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도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열혈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유도 쉽게 납득하게 되고.

 

좋은 작품이고, 그래픽 소설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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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동문선 현대신서 40
알랭 바디우 지음, 이종영 옮김 / 동문선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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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랭 바디우

 

이름으로만 접했을 뿐이고,

명성으로만 접했을 뿐인...

어쩐지 관심이 들기는 하지만 쉽게 이해될 것 같지 않기에 나중으로 미뤘을 뿐인...

 

그의 저서들이 하나씩 출판을 하게 되면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게 되었지만 책을 집었던 손은 잠시 집었을 뿐이었고, 다시금 제자리에 놓고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었다.

 

그러다 그의 생각을 되도록 간략하고 명확하게 써냈다는 ‘윤리학’을 알게 되었고 알랭 바디우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내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분량도 적어서(100쪽 정도의 짧은 글이다) 쉽게 읽을 수 있진 않았지만 다행히 괴로울 정도의 책읽기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옮긴이는 알랭 바디우의 글이 결코 이해하기 어렵게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다지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인지 결코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는 말을 꺼내면서 ‘윤리학’에 대해서 간단하게 끄적거린다.

 

옮긴이의 언급처럼 ‘윤리학’은 프랑스와 유럽(그리고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에서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윤리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올바름과 차이에 대한 인정과 존중에 대해서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것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우월감과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 적인 무시, 배제와 제외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듣기에는 설득력 있고 쉽게 호응하게 되는 논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틀린 점들을 찾게 되어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묘하게 찾아지는 부분들을 정교하게 풀어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윤리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세련된 방식의 지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경우도 해외에서 논의되는(유행하는)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그냥 그대로 가져오며 얘기되는 경우가 많아서 ‘윤리학’에서의 논의가 나름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한국사회에 적용될 수 있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면서 읽어내면 좀 더 흥미로운 책읽기가 가능할 것 같다.

 

알랭 바디우는 우선 윤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날 윤리가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논의하며 왜곡된 방식의 이해를, 잘못되고 결국에는 부정적이기만 한 이해를 갖게 되는 현재의 윤리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폭로하고 반박하고 있다.

 

제대로 이해를 하면서 읽어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알랭 바디우는 지금의 논의들이 갖고 있는 위선과 잘못된 입장과 이해가 결국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기 보다는 배제하고 제외하는 결론으로 향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윤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는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허무에 대한 의지로만 가득한 현대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진리로 향해야 할지를, 과연 진리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 구분이 쉽게 이해되지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 앎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지금 시대의 허무에 대한 의지에 이미 너무 물들어 있기 때문에 알랭 바디우의 논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열린 자세로

개별성에 대한 이해를

진리에 대한 열망과 

무언가를 깨달음을 수 있게 되기를

 

‘윤리학’은 그런 것들을 되도록 명확하게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논의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읽고 알아가기 보다는 어렴풋하게만 느껴질 뿐이고, 쉽게 이해되진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알 듯 말 듯 하고 머리에서 정리가 되질 않고 있어서 말로 꺼내지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읽었어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고,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쉽게만 느껴질 뿐이다.

 

워낙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 도중에 읽게 되어서 솔직히 읽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대충 들여다봤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래도 알랭 바디우의 글을 이런 식으로라도 접하게 되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의 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이해보다는 겨우겨우 읽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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