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에는 먹는 것에 관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단순히 먹는 것 자체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먹는 것과 관련하여 좀 더 포괄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헷갈려지게 될 때가 있다.

 

먹거리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아진 관심보다는 좀 더 편하고 쉽게 그리고 저렴함을 우선하게 되면서 높아진 관심에 비해서는 다른 선택을 (혹은 전형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들은 죽음의 밥상에서 우리가 이제는 조금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된 대규모 공장식 농장에 관해서만 다뤄내는 것만이 아닌 좀 더 윤리적인 방식에 대해서, 먹거리에 대한 여러 접근들을 시도하면서 우리들에게 다양한 정보들과 함께 어떤 선택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를, 윤리적인 선택이란 과연 어떤 선택인지를 제시하며 우리들에게 지금의 방식과는 다른 식습관을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되도록 자세하게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고,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와 내용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인지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고 개인적으로는 저자들이 말하는 윤리적이고 채식 위주의 식습관도 아니기 때문인지 조금은 어렵게 읽혀지게 되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먹는 것에 대해서 무척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고,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진지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었음에도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식습관을 지켜낼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민망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로 먹는 것에 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난감한 책읽기가 그리 후회되진 않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의 공간 - 어느 건축가의 은밀한 기록 여행의 공간 1
우라 가즈야 지음, 송수영 옮김 / 북노마드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낯선 곳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시공간과의 만남, 이것이 호텔의 존재 이유다.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서비스가 담긴 설계의 산물인 호텔 게스트룸을 찾아 스케치하는 여행을 앞으로도 절대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여행이란 게스트룸을 측량하고 그리는, 말하자면 호텔 탐험의 여정이다.

 

안전하고 조용하고 청결하다면 다소 인테리어가 소박해도 그 호텔은 인상이 좋다. 욕실에 들어가 옷을 다 벗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말하자면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가 될 수 있는 안도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호텔을 발견하면 나는 보물을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된다. 낯선 곳에서 안심할 수 있는 시공간과의 만남, 이것이 호텔이라는 존재의 일면임은 틀림없다.

 

 

 

 

저자는 여행의 공간을 통해서 다른 (건축과 관련한) 글쓴이들과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방식-접근은 외형에 대해서 그 개성과 특별함을 그리고 주변과의 조화에 대해서 혹은 그것 말고도 찾아볼 수 있는 다른 특징들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고 있고 확인하려고 한다면 여행의...’의 저자 우라 가즈야는 (물론 건물-건축의 외적인 모양새와 주변에 대한 관련도 고려하지만) 철저할 정도로 내부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고 그 공간의 구성과 조화에 대해서 꼼꼼하고 치밀하게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저자의 생각과 입장과는 달리) 반대로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우면서도 묘한 반발감이 느껴졌었다.

 

저자의 꼼꼼하고 상세한 확인과 다양한 호텔에 대한 경험과 이해와 호기심들 그리고 덧붙여지는 일화들과 소소한 정보 및 개인적인 소감들이 짧은 글들로 묶여져 쉽게 읽혀질 수 있었고 (너무 짧은 내용으로 인해서 지나친 밋밋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당시 투숙했을 때 (아마도) 호텔에서 제공되는 편지지나 종이들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공간 구조가 배치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려주는 저자의 간결하면서도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에 관심이 들기도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지만) 분량이 너무 짧은 경우도 있고 간간히 반복되는 언급들도 있어서 조금은 심심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경험 자체에 대해서 뭔가 질투심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호텔이라는 곳을 어렵지 않게 들락날락거릴 수 있다는 것에 여러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위치에서 수많은 호텔들에 관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불필요한 반감과 시기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겠나? 그걸 숨기려고 하기 보다는 그렇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그런 잘못된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야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니.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여러 경험과 그 공간이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여러 가지로 관심이 갈만한 부분들이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약간은 허무한 느낌도 들게 되는 것 같다. 그걸 알아서 뭐하냐는 식으로...

 

살다가 몇 번 경험하지도 못할 것에 그렇게 비교하고 검토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런 경험들을 자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몇 번 경험하지도 못할 것을 세세하게 따지고 골몰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다만,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이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에서 벗어나고 일상에서 일탈된 경험이고 그 경험 중에서 어딘가에서 머물고 잠들고 휴식을 취하는 것-공간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지만 반대로 무척 중요한 상황-공간이고 어떤 부족함도 바라지 않는 상황-공간이기 때문에 그 공간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있는지, 수많은 방문객들을 통해서 어떤 최적의 공간과 비율 그리고 서비스를 찾아내고 있는지를 알아가면서 우리들의 일상 공간에서도 그 앎을 통해서 다양한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자와는 달리) 오히려 호텔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공간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실내를 좀 더 효율적이고 (혹은 화려하게) 꾸며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실내건축가들의 공간들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어버리게 된다.

 

실내건축가들의 일상적인 공간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어떤 식일까? 그들은 어떤 식으로 공간을 생각하고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공간은 그 벗어남으로 인해서 불편함과 안락함 모두를 감수하면서 (혹은 마음껏 즐기면서) 그 공간을 경험하고 (짧든 길든 그 시간 동안에는)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불편함과 안락함 중 안락함은 좀 더 만들어낼 것이고 불편함은 최대한 줄여나갈 것이니 어떤 식으로 그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벗어남을 통해서 머물고 있는 공간을 재구성하고 수정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무척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편안함도 불편함도 바꿔가기 보다는 일정하게는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습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려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편안함을 쉽게 잊기 마련이고 우리들의 불편함 또한 쉽게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몇 시간에 걸쳐서 실측하고 확인하는 작업들을 폄하하거나 무시하고 싶진 않다. 저자는 그 (실측의) 과정을 통해서 공간의 구성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공간의 이유와 이해를 찾게 되고 다른 공간을 만들어나갈 때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었던 것 같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고려사항들을 검토하게 되었을 것이니 그런 검토사항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엿보고 엿들을 수 있는 (어깨 너머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고 굳이 마다하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것이 많을 때 아는 척을 하게 될 때에는 자신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뭔가 아는 척을 할 때의 쾌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저자의 소중한 경험과 박학함을 내 것으로 만들고 모르고 잊었던 것들을 다시금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을 더 말하자면 수록된 멋진 그림들처럼 인상적인 책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책표지를 펼쳐본다면 좀 더 멋져진다) 좀 더 신경을 기울여 내지에 있는 그림들에 적혀진 내용들도 번역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만약 재판이 허락된다면 그런 부분들이 개선되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참고 : 1. 저자가 묵어간 호텔 중에서 한국에 있는 호텔도 한 곳 있다. 그리 찾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지만...

2. 꽤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일까? 2권도 출판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노력해서 읽을 생각은 없다. 그래봤자 호텔이겠지... 라는 생각이다. 더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는 5.18 광주에 관한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 부족해 읽어야 할 것들은 많지만 (모르는 것 천지라 읽어야만 했지만) 광주에 관해서는 읽어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 같다. 무슨 수로 광주에 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겠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부끄럽게 느껴질지라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나마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오월의 사회과학정도는 읽어봤기 때문에 아주 모른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그건 결국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 같고, 읽게 되면 괴롭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읽혀지지도 않아 쉽게 손이 가질 않았고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광주에 관한 책은 부담스러워 읽을 수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한강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름은 쉽게 기억할 수 있겠다고 깐죽거리기 딱 좋기는 했지만 그동안 이름을 들어보진 못했었다. 어쩌면 들어봤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흘려들었을 것이다.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해외 유명 문학상을 수상한 다음에야 알게 된 이름이고 이름이 알려진 다음 다른 저서들도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는데, 저서들 중에서 광주에 관한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다가 그걸 선택하게 되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걸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읽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읽어야 했던 것일까?

어쩌다보니 소년이...’는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200) 때문인지 읽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느낌은?

참 잘 썼다는 생각이 우선 들게 된다.

 

책 뒷면의 평론가들의 (홍보용) 호평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그들처럼 호들갑스럽게 환호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잘 써내려갔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어려운 이야기를 설득력 있고 진심을 담아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그 고통을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써낸 것 같다.

 

저자에게 글을 허락한 분의 말처럼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써냈다.

 

그 당시 그 순간의 광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지만 되도록 서정적으로 그 순간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려고 하기 보다는 마치 무더위 속에서의 꿈과 현실의 어딘가에서 머물 듯이 글은 쓰여 있으며 그렇게 광주로 저자는 우리들을 향하도록 만들고 있다.

 

허무함까지는 아닐지라도 뭔가 허탈한 기분으로 고통은 지속되고 이어지고 있지만 무척 길고 긴 시간이 지난 이후의 (소년들처럼 죽은 이후의 감정처럼) 그 순간들을 생각해보고 있고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그리고 슬픔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한 소년이 있고

그 소년은 친구를 찾고 있다.

 

친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려고 하지만) 그 소년은 어떤 의무처럼 혹은 죄책감처럼 광주의 중심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죽음들을 기록하고 분류하고 있다.

 

그곳에서 소년이 만나게 되는 몇몇 누나와 형들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어떤 식으로 죽어갔는지를 소년이 온다는 담담하게 써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설명-독백을 통해서 우리는 광주를 다시금 알아가면서 그 이후의 삶과 시간 또한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음과 마찬가지였던 삶을.

 

분노

고통

희생

적개심

죄책감

두려움

울분

슬픔

잊을 수 없음

기억하기 싫음

수많은 죽음들

수많은 시신들

수많은 피해자들

그리고 가해자는 없음을

숭고함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저자는 사실을 근거로 하지만 그 사실을 그냥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사실을 근거로 심리부검을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사려 깊게 감싸주면서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완성시키고 있다.

 

그 순간의 고통과 함께 그 순간 이후의 길고 긴 고통을 부족함 없이 담아내고 있고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독백을 통해서, 조금씩은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면서 조각난 개별적인 이야기가 전체의 모습을 갖추도록 의도하고 있다.

 

너무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설득하고 이해되도록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다.

 

끝까지 읽은 다음의 기분은 그리 좋진 않다.

당연히 좋은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너무 빨리 읽어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고통과 그 이후의 더 큰 고통을 너무 빨리 읽어내며 알아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고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니 읽고 답답하고 괴롭기만 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 지구사 연구소 총서 2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 김서형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조류독감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735802187

스페인 독감 :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D%8E%98%EC%9D%B8_%EB%8F%85%EA%B0%90

스페인 독감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35661&cid=40942&categoryId=32799

 

 

 

 

나에겐 작은 새가 한 마리 있었네

그 새의 이름은 엔자였네

나는 창문을 열었네

그러자 엔자가 안으로 날아 들어왔네

 

 

 

마이크 데이비스의 조류독감을 읽은 다음 전염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이 가게 되어서 조류독감에서 꽤 비중 있게 다룬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관한 책인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가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고, ‘조류독감처럼 흥미롭게 읽혀지진 않았지만 느닷없이 발생해서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19181919년의 혼란스러운 순간을 최대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강렬한 충격과 흔적을 남겼지만 너무 순식간에 지나쳤기 때문인지 마치 전설처럼 혹은 그런 일이 있었기는 하지만 그다지 기억나는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다는 듯이 다뤄지는 스페인 독감의 신비함과 당시로서는 연구의 한계와 기술적인 한계 그리고 인식의 한계로 인해서 원인규명을 위한 분석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으며, 쉽게 파고들 수 없는 분야지만 되도록 최대한 많은 연구 결과와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당시의 참상을 자세하게 알려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 그 순간의 혼란을 잘 살펴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우선 스페인 독감은 그 이름부터 오해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듣기만해서는 당장 스페인에서 시작한 독감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 시작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발생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그리고 동부와 서부로 나눠 사실들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후에 유럽과 다른 지역까지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추가로 다루고 있다.

 

당시는 1차 세계 대전이 거의 막바지로 진행되는 중이었고, 전쟁의 격렬함이 가장 극심한 시기였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은 발생되는 피해와 확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었고, 감기-독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 또한 그다지 큰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수를 생각다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와 별반 차이날 것 없으면서도 주목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깊은 무지와 불감증에 대해서 한탄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서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과 과잉된 인원으로 인한 비좁은 환경이라는 전염병이 발생되기 최적의 상태가 만들어진 병영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스페인 독감이 어떤 식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급작스럽게 확산되었으며 비좁은 환경과 비위생적인 상태가 어떤 식으로 더욱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는지를, 폐렴을 동반하게 만들어 어떤 끔찍함을 겪게 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 위험성과 치명성에 비해서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고, 정치적 정책적으로도 적극적으로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급박해지고 악화되어가게 되었고 전염성은 더욱 높아지면서 확산의 강도가 커져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흔히 말하는 위정자들과 최고 권력자들이 스페인 독감 때문에 어떤 정치적 정책적 실책을 하게 되었는지, 그 급작스러운 등장과 사그라짐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못하게 된 상황과 여러 논쟁적인 논의들 그리고 손쉬운 잊음과 망각, 지구화 된 상황 속에서 앞으로 그런 상황이 다시금 일어났을 때 과연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까지 마무리로 향할 때 여러 중요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압축적으로 다루거나 어떤 부분들은 필요 이상으로 장황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여러 아쉬운 부분들이 찾아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다뤄내는 내용을 잘 조절했다면 더 만족스럽게 읽혀질 수 있진 않았을까?

 

한편으로 1918년이라는 시대를 생각한다면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적극적이고 재빠른 대응과 대책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도대체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원인규명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당시의 모습과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달라진 점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무지에서 우리들은 많이 벗어났으며 전염병에 대한 여러 연구와 높아진 이해로 인해서 이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으며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같은 잘못들을 반복하고 있고 더 급격한 피해의 가능성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과연 과거를 그리고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제멋대로 받아들이고 회피하려고 하는 것인지 허탈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우리는 노출된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건축가 서현은 우연히 접하게 된 강연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자신만의 건축에 대한 관점과 (일종의) 신념을 느낄 수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책을 통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고 글을 통해서 알리려고 하는 (자신의) 생각과 입장에 대해서 공감하고 동의하기 때문인지 꾸준히 그의 저서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빨간 도시의 경우 제목부터 꽤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느낌이 들어 조금은 낯선 느낌이 들었는데, 저자의 다른 저서들의 경우에 비교했을 때 좀 더 도드라질 정도로 특색이 있는 제목이고 그 제목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향의 글이었던 저자가 어떤 이유에서 이런 제목으로 묶인 글들을 쓰게 된 것일까?

 

들어가는 말인 프롤로그와 끝맺는 말인 에필로그를 통해서 저자가 어떤 입장과 생각을 갖고 빨간 도시의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를 무척 간략하고 명료하게 알려주고 있고, 그 내용을 읽고 나머지 글들을 읽어나간다면 어렵지 않게 저자가 무슨 생각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큰 한숨과 애석함 그리고 때때로 불만과 분노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의 특징들이 건축을 통해서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는지를, 건축들을 보면서 한국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지를 시도하고 있는 빨간 도시는 아파트로 가득하고 빼곡하게 채워진 도시의 모습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도시로 향했고 살아왔으며 옛 기억을 혹은 삶의 관습과 습관을 몸에 새겨놓으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루면서 시작하고 있고,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간과 건축들이 우리들의 삶을 얼마만큼 짓누르고 있으며 우리들의 생각과 의식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하려고 하고 있다.

 

급격하게 변하고 뒤바뀐 시대와 사회상에서 그 급격한 변화가 어떤 식으로 뒤틀린 모습으로 지금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으며, 건축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려고 있기도 하다.

 

정상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비정상으로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건축들은 어떤 식으로 기괴한 모습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는지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 기묘함의 여러 가지들을 논의하고 있으면서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깊은 근심과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저자는 그 급격한 속도로 인해서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멈추지 않고 앞서나가고 있으며 그런 변화가 사회적으로도 건축적으로도 어떤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지를 기대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 기대 속에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도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우수한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그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무엇이었는지를 찾기도 한다.

 

결말로 향하면서 저자는 다시금 건축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건축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묻고 있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있는데, 그 대답의 과정 속에서 과연 한국의 교육은 얼마나 잘못된 방식인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미치고 있고, 건축계 내부의 몇몇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과 (여전히) 일확천금에 눈이 먼 욕망과 탐욕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본모습까지 지적하며 근본적인 질문과 이해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이 없이 마구잡이로 즉흥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깊은 실망감을 말하며 자신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건축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다른 저서에 비해서는 비판의 날이 매섭고 준엄하게 꾸짖고 있으며 여러 가지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의외의 내용들이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참고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작심하고 글을 써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축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고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방식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무엇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쉽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건축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고 있지만 이런 글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는 것이 기분 좋기도 하고 씁쓸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저자가 원하는 사회와 건축이 혹은 도시가 조금이라도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한국 사회도 조금은 바뀌고 나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저자가 감탄하고 긍정하는 건축들이 조금씩이라도 만들어지고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