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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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

부패

 

넓은 의미에서는 비슷하게 다뤄질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엄격하게 나눈다면 인간에게 유용한 경우에는 발효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패라고 한다.”

 

시골빵집에서 천연효묘와 씨름을 하면서 단지 더 좋은 빵을, 자연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생산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닌 자본주의와도 싸워내려고 하는 빵집 아저씨 와타나베 이타루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철학과 입장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떤 식으로 지금 시대의 시대정신을 이겨내려고 하는 것인지 어째서 그런 생각과 행동-실천을 하게 된 것인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지역적이고 생태적인 입장이지만 분명하게 원론적이고 근본적이기도 한 생각이고 의견일 것 같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주목받은 책이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알지는 못했지만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되었고 가볍게 읽혀지면서도 꽤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좀 더 젊고 다른 세상과 시대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이끌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저자는 반골기질로 가득한 자신의 성향과 세상의 불합리와 잘못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괴로워하던 (때로는 나태하고 안이했던) 입장으로 인해서 어떤 식으로 세상이 요구하고 강요하는 방식의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그러면서도 세상의 방식을 다시금 알아가고 진정으로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 하게 되었는지를 솔직하고 상세하게 알려주면서 다른 삶의 태도가 가능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빵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어째서 마르크스를 공부하게 되었는지를

 

그 어울리지 않는 과정을 알려주고 있고, 2가지가 어떤 식으로 (전문용어를 쓴다면) 변증법적인 해답을 찾았으며, 그 해답을 통해서 과연 지금과는 다른 삶과 생산방식과 삶의 태도가 가능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누구나 저자와 같은 삶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지는 못하겠지만 한명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저자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과 선택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고 자신의 시행착오들을 말해주며 누구나 실수할 수 있음을, 용기를 잃지 말라고 응원한다는 점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과 신념을 잃지 않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 올곧음과 진심에 감명을 받게 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감출 것 없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통해서 증명하려고 하는 솔직한 모습에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따지고 들고

이것저것 반박하려고 한다면

 

저자의 방식과 생각 그리고 입장과 태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수 있을 것이지만 반대로 저자와 같은 삶을 살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 또한 무책임하고 어떤 생각에 기울어진 입장일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저자가 얘기하려고 하는 논의가 굳이 마르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마르크스를 들먹이면서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떤 극단적인 모순과 잘못들 그리고 자본주의로 인한 왜곡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참고 : 숨어있는 좋은 책이라는 평가는 정말... 그런 평가를 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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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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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독일에서 출판 직후 무척 이례적인 반응 속에서 주목을 받았고, 현대 사회에 대한 기존의 분석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생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분석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관점은 기본적으로는 니체의 시선과 생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니체의 생각만을 토대로 자신의 분석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고 그런 관점을 빌려오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더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와 진단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보드리야르, 아렌트, 프로이트, 푸코, 아감벤 등의 학자들이 내놓았던 분석은 지금의 시대와는 맞지 않는 점을 강조하며(틀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전혀 시대 자체가 변했다고 말한다) 지금 시대에 맞는 질병에 대한 진단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고, 그런 입장 속에서 21세기 현대 사회는 부정성에서 찾아보기 보다는 긍정성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말하려고 하고 있다.

 

이질성

타자성

차이

면역학

이방인

 

기존의 시대적 정서는 이처럼 무언가 적을 만들고 내세우는 성향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와 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찾기 보다는 스스로를 착취하려고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향과 정서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기존의 분석들이 갖고 있는 한계와 오해들은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면서 포화시키고 고갈시키려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되도록 명료하게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규율사회가 아닌 성과사회로의 변화,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닌 해야 하고 해내야만 한다는 긍정성을 내세우는 사회지만 끊임없는 목표와 숙제 그리고 계속해서 넘어서야만 하는 외부적 내부적 강제로 인해서 결국에는 각 개인-주체는 피곤에 찌들고 시스템에 질식하게 된다는 분석은 긍정성의 사회라고 말하지만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사회이고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한 새로운 착취 방식이라고 저자는 판단하려고 한다.

 

저자보다 앞서서 지금 시대를 보다 정확하게 분석해내려고 했던 이들이 빠졌던 오류들과 앞선 거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학자들의 분석과 이론적 틀의 한계를 강조하며 새로운 시선과 생각으로 지금의 변화된 시대와 사회를 분석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분명 신선하고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저자가 머물고 있는 독일 사회에서는 그런 분석의 제안이 알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 발달과 발전이, 흔히 말해서 성숙도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설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아직은 성급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진단을 내리고 있으면서도 어떤 처방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을 찾게 되기도 한다. 니체의 생각을 근거로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진단이라는 단호한 입장과는 달리 진단에 따르는 처방에서는 소극적이고 무척이나 철학적이기만 한 입장에 머물 뿐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내놓고 말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대안과 제안에서는 한걸음 물러서 있다는 점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지치고 탈진하게 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째서 그렇게 느끼는지를 무척 신선하고 인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피로사회는 무척이나 짧은 분량의 글을 통해서 흥미롭게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고 있으며 여러 방식으로 지금 시대를 이해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조금 읽기가 어려운 부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더 읽어내고 싶고 저자의 생각을 더 알고 싶다고 묻고 싶은 글이었다.

 

어째서 반향을 일으키고 주목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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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의 대화 한나래 시네마 3
프랑수아 트뤼포 지음, 곽한주 외 옮김 / 한나래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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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의 신인감독프랑수아 트뤼포는 할리우드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편지를 쓴다. 히치콕은 흔쾌히 승낙하고 트뤼포는 미국으로 건너가 일주일간 이어질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날은 히치콕의 생일이기도 한 1962813일이었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의 대화는 <히치콕/트뤼포>라는 책으로 출간된다(한국 제목은 <히치콕과의 대화>). 이 책이 히치콕과 트뤼포의 팬은 물론 수많은 시네필과 영화감독들, 나아가 영화비평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프레드 히치콕을 숭배하고 찬사를 보내지만 그 누구도 프랑수아 트뤼포와 같은 마음-수준으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이미 거장이었고 엄청난 명성과 유명세가 있었던 히치콕이었지만 지금처럼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어떤 감독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올라설 수 있게 된 이유 중에는 프랑수와 트뤼포를 비롯한 영화를 예술로써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던, 새로운 방식-시선으로 영화를 보려고-이해하고 평가하려고 했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영화평론가들의 노력이 컸으며 그런 이들 중에서 트뤼포는 특별히 좀 더 히치콕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더욱 높게 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트뤼포에게 히치콕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애정 그 자체와 같은 존재였으며 트뤼포는 (어쩌면) 히치콕의 영화들을 통해서 그 자신이 영화에 부여했던 의미를 증명해줄 수 있는 존재처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트뤼포는 그의 삶에서 히치콕과의 만남과 히치콕에 대한 글쓰기는 평생을 걸쳐서 검토하고 다듬어야만 했던 목표였으며 그걸 해냈을 때 얼마만큼 만족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히치콕과의 대화는 트뤼포의 만족스러움은 알 수 없겠지만 그저 읽는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히치콕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지는 않을지라도 히치콕...’은 히치콕의 영화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들을 상세하게 확인하고 있고 검토하고 있으며 히치콕 또한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무척 명료하고 정확하게 (객관적으로든 비판적으로든) 평가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자신의 생각과 당시의 상황을 그리고 자신의 의도들을 전달하고 있다.

 

어째서 히치콕을 다루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트뤼포는 간단하게 자신이 히치콕의 영화들을 논의하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으며 어떤 과정과 상황 속에서 그들이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히치콕과 트뤼포의 대화는 아마도 영화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순간 중에서 다시는 있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지는 않았을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 감독에 대해서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서 이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대화가 나눠진 경우는 없을 것 같다.

 

트뤼포는 히치콕의 위대함과 특별함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감독들 중에서 작가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는 감독들의 특징과 이유 또한 설명하고 있으면서 히치콕과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지 말해주며 그들의 대화를 정리한 글은 시작하고 있다.

 

히치콕의 영화를 즐겼던 사람들이라면

히치콕의 영화에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트뤼포의 질문들과 히치콕의 대답들은 별 것 아닌 질문과 대답일지라도 이상할 정도로 흥미로움으로 가득하게 읽혀지고 있고 히치콕은 그 자신의 길고 긴 경력을 무척 상세하게 설명해주면서 자신의 결과물들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지 않고 미화시키지 않으면서 설명해주고 있다.

 

어떤 때는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때때로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을 나누기도 하면서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히치콕의 영화에 대한 대화를 통해서 영화라는 예술이 어떤 식으로 완성되었고 변화가 되었으며 또한 관객들의 취향과 관심은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에 관해서 등 단순히 히치콕의 영화만이 아닌 영화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해하려는 대화이기 때문에 히치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영화에 대해서 큰 애정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도 무척 흥미롭게 읽혀질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결국 히치콕의 영화들을 중심으로 얘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히치콕의 재미로 그리고 긴장감으로 가득한 여러 영화들을 즐기고 난 후 그들의 대화에 참여를 한다면 더욱 더 재미나고 즐겁게 읽혀지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에서는 트뤼포의 설명을 통해서 히치콕의 쓸쓸한 말년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모든 것을 다 이뤄냈음에도 그래도 허무함이 짙은 히치콕의 말년은 조금은 뒷맛이 쓰기도 하지만 그런 슬픈 끝자락 보다는 히치콕이 이뤄낸 위대한 결과물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더욱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다.

 

히치콕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일 것 같다.

 

문제는?

어째서 이런 책도 절판된 것일까?

 

 

 

참고 : “히치콕...”은 절판되었다. 1년에도 몇 편의 천만관객 영화가 만들어지는 나라에서 이런 책이 절판되었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그저 영화를 즐김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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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nyfink 2016-12-0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하고 싶은데 중고가가 꽤 되더군요...

배군 2016-12-05 12:4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운좋게읽었어요.
 
필로디자인 - 삶과 철학으로 시대를 디자인한 22인의 이야기
김민수 지음 / 그린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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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디자인

훌륭한 디자인

예쁜 디자인

 

그런 것에 대해서 떠올려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예쁘고 멋진 그리고 뭔가 색다른 물건과 사물을 곧장 떠올리게 된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여러 인물들이 어째서 선정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의아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디자인에 관해서 너무 협소한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너무 쉽게 잊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여러 분야와 영역의 디자이너들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좀 더 폭넓은 이해와 사고를 해보도록 해준다.

 

그리고 디자인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리고 훌륭한 디자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대답과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면 저자가 어떤 이유에서 22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어림잡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연재하던 글들을 모았기 때문에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을 다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부족한 분량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의 가장 중요한 점들만 설명해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저자가 다뤄내고 있는 인물들 대부분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생소한 기분으로 읽기는 했지만 무척 읽는 재미를 그리고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어주었고, 전혀 모르던 인물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자의 다른 저서들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필로디자인을 읽을 생각은 없었다. 익숙한 이름들 보다는 생소한 이름들만 찾을 수 있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약력에 눈이 가게 되고 어쩐지 약력을 보게 되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는데,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연한 선택이 무척 기분 좋은 선택이 된 것 같다.

 

저자가 단순히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선택하려는 것만이 아닌 삶과 철학을 디자인을 통해서 증명하려고 했던 인물들을 골라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면 시대의 흐름에서 어떤 식으로 그 시대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만들어냈는지를 혹은 그 시대도 어렴풋하게만 생각하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는지를 생각하며 읽어내는 것도 괜찮은 책읽기가 될 것 같다.

 

반대로 그 시대를 이해함으로써 앞으로의 시대를 예측하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저자가 말해주는 디자이너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흥미를 느끼며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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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문명을 오르다 : 바로크~20세기 - 계단의 역사를 통해 본 서양 문명사
임석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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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어떤 때는 올라가기 위해서

어떤 때는 내려가기 위해서

하지만 무언가를 의식하기 보다는 그저 일상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계단을 경험하고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 당연하게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고 자주 겪게 되는 순간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런 계단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논의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 소소한 일상을 세세하게 독창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려고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하다하다 별걸 다 진지하게 바라보려고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저자는 너무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계단에 대해서 좀 더 세부적이고 상세하게 검토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런 노력에 대해서 저자 본인은 무척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내용을 읽어본다면 그리 폄하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동서양의 문명이 아닌 서양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 한정해서 계단의 역사를 다듬어보고 있는 계단...’2권으로 논의를 나눠놓을 정도로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고 자세하게 논의를 꺼내고 있는데, 저자는 그렇게 생각 이상으로 길게 분석을 이끌어가게 된 이유까지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째서 계단에 관해서 이렇게 진지하게 검토하게 되었는지는 솔직하게 말해주면서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얘기해주고 있다.

 

물론, 그런 접근 자체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저자의 논의는 그저 헛된 노력이고 시도처럼 느껴지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바로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계단의 역사를 혹은 계단을 다뤄내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계단이 어떤 식으로 이해되었고 건축-건물이 완성될 때 시대적 변화 속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완성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으면서 과거의 방식들이 어떤 식으로 현재에 재해석되고 재평가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다.

 

시대마다의 차이와 개성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니 조금은 달리 보이고 저자가 어째서 이렇게 자세하게 파악하려고 했는지를 조금은 이해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상세하게 파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의 논의는 흥미로우면서도 어쩐지 논의가 속도감을 갖으며 진행되기 보다는 지지부진함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논의를 압축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계단이라는 것이 단순히 부속물로 혹은 건축-건물의 주변으로만 생각하던 단순한 (당연한)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기 위한 (어쩌면) 일부러 조금 더 상세하고 다양한 검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단순하고 당연하게만 생각하던 것을 무척 색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려고 하고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에 대해서 그리고 노력에 대해서 우선은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걸 가벼운 시도가 아닌 진지하고 여러 방식으로 검토하려고 하는 저자의 집념에 다시금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아마도 그런 노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족한 이해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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