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 세계의 고전 사상 7-001 (구) 문지 스펙트럼 1
에피쿠로스 지음, 오유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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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지기로는 ‘쾌락주의자’라는 식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방식으로 알려진 에피쿠로스이지만 그의 글을 읽어본다면 그가 말하는 ‘쾌락’이라는 것이 우리들이 말하는 그런 것과는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잠언들과 편지를 엮은 이 책은 단순히 ‘쾌락주의자’라는 식으로 평가하기 힘든 에피쿠로스의 사유를 엿볼 수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짧은 분량이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나와 같은 짧은 지식으로 인해 읽고자 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니체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몇몇 연구자들이 그의 글과 에피쿠로스와 일정부분 공유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의 유사점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떤 것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며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니체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을 통해서 어떻게 니체가 영향을 받았는지 조금씩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제목은 ‘쾌락’이지만 내용을 읽으면 어떻게 감정의 과잉을 자제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잠언들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접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가 고통과 불안 제거하고 평안을 찾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절제와 ‘지식’이라는 것에 한편으로는 이해하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철학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장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한 것은 아닐까? 라는 자조적인 질문도 하게 만든다.


초반에는 그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잠언들이 수록되어 있다면, 중반부터는 그가 보낸 편지들로 내용이 채워져 있는데, 그 편지에 있는 내용들은 잠언과 유사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보다는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원자론과 자연학 그리고 천체에 대한 논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째서 그가 자연학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을까?

당시 시대의 철학자들은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지금과 비교해서는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겠는가?)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모든 현상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찾아내고 있었고, 에피쿠로스도 다른 철학자들의 논의들과 자신의 차이를 지적하고 자신은 어떻게 삶과 자연 그리고 천체가 운행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했다는 것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통해서 내면의 안정과 행복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외부에 대해서는 자연학과 원자론등의 과학적 지식을 통해 신에 대한 미신(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모든 것이 신의 뜻으로 된다는 식의 생각에는 부정하는)에서 벗어나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우주와 천체의 운행과 자연의 흐름을 적절히 이해하게 되어 행복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을 이해한다면 후반부에 있는 논의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자연으로 통칭되는 외부에 대해서 지식과 이성으로 미신을 걷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계몽주의’와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다.


다만, 그런 부분에서 아도르노의 시각으로 그를 본다면 그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근대인으로 볼 수 있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지식이라는 것은 ‘지배’와 떼어놓고는 보기 힘들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기에는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고, 단순히 쾌락주의자로 설명할 수 없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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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리학의 문제들 프로이트 전집 10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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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이번 저서에서는 ‘신경증’에 집중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의 다양한 사례들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기존에 갖고 있었던 신경증과 히스테리에 대한 입장을 수정 혹은 번복을 하고 있고, 말미에 있는 ‘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을 통해서 ‘불안’이라는 감정 혹은 정서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신경증과 히스테리 그리고 불안에 대한 논의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후의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하던 모습에 비해서는 이번 내용들에서는 조심스럽고 판단을 보류하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자신이 이전에 내렸던 결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깨달으며 논의를 마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심정으로서는 적절한 결론이 없이 뜬구름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초창기의 정신분석이 갖고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는 모습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에 당연스럽게 반응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다.

 

신경증과 불안 증세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많이 어렵지만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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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결혼 - 기사, 여성, 성직자
조르주 뒤비 지음, 최애리 옮김 / 새물결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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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 학파의 거장으로 꼽히는 조르주 뒤비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저작들을 읽어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의 대담집인 ‘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정도만 읽었기 때문에 제대로 그의 학문적 입장과 논의에 대해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었다.

 

이번에 읽은 ‘중세의 결혼’도 그의 입장과 논의를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는 저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중세 시대에 대한 시각과 논의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르주 뒤비는 중세 시대의 결혼에 대한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과 변화 속에서 중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갔고 그 시대의 중요 계급들은 결혼에 대해서 각자 어떠한 이해관계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관계를 통해서 성직자 계급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결혼을 통해서 보다 사회 질서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하였고, 기사 계급은 자신들의 권력을 집중하기 위해서 결혼은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조르주 뒤비의 논의와 시각은 푸코라면 남녀간의 사랑과 성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사회를 관리하고 지배하려는 의도로 보았을 시각과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였다면 결혼을 통해 기사 계급의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을 시각을 균형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르주 뒤비의 균형 잡히고 뛰어난 통찰력은 감탄하게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위의 대립된 두 개의 입장이 타협하는 방식으로 중세 시대의 결혼은 하나의 사회 체제로 편입되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논의를 통해서 중도와 타협의 중요성을 역설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에 두 개의 대립된 입장이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나 서로의 시각이 대립되느냐에 따라서 타협의 결과물이 전혀 달라질테니까.

결론만 보고 타협의 필요성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개의 입장은 타협을 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기 보다는 서로의 입장과 충돌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적절한 방식을 찾아간 것이니까.

즉, 어떤 타협과 결론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어떻게 치고 받았냐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본인이 그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나 없냐는 둘째 문제이고...

 

그리고 그의 논의는 위에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중세 시대라는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데, 일종의 도구처럼 다뤄지기만 했던 여성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있느냐며 새롭게 질문을 하고 있다.

중세 시대의 여성들은 삶은 마치 레비 스트로스의 저작에서 다뤄지는 미개 사회 여성들의 모습이나 존재감과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데, 그러한 당시 시대의 남성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조르주 뒤비의 시각은 중세 시대부터 수평적 가족관계에서 남성 중심의 수직적 관계로 변화를 보였다는 분석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중세 시대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야할 시각인 것 같다.

 

그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갖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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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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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글은 항상 활력과 조롱을 엿볼 수 있고, 그의 글에서 어떤 이들은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경박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기분은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나와 다른 느낌을 갖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원색적인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가장 최근에 출판된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기존의 진중권의 글에 비해서는 보다 고민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이전의 냉소와 조롱보다는 근심과 고민의 감정을 더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의 날카로움이 무뎌졌다기 보다는 고민거리는 더 많아졌고, 해결의 어려움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느껴지게 된다. 세상과 대립하면서 그도 조금은 지치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도 사람인데 언제나 패기 넘치는 청년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자신이 부정을 하던 것들 속에서 일부분의 긍정의 의미와 그러한 상황과 선택을 할 수 밖게 없었던 부분들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한 느낌도 갖게 된다. 이것도 그가 화해를 모색한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것과는 거리를 갖고 자신의 생각을 발언한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신체와 정신구조라는 테마를 갖고(하지만 여기서의 신체와 정신구조는 니체와 푸코 그리고 부르디외와 엘리아스 등이 말하는 습속으로서의 신체와 정신구조다. 이것은 물질적이면서도 또한 명확한 실체가 없는 물질성이다) 사회의 급변함과 다양한 최근의 사건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와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모습과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일련의 상황을 만들어냈는지 풀어내고 있다.

 

그는 아날학파 혹은 월러스틴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한국이 타국에 비해 부족하고 낙후되었던 것이 오히려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그 발전에는 일정부분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혹은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이론적 틀을 토대로 한 자신만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풀어내고 있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독자는 한국 사회와 문화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다. 여전히 박정희의 망령이 한국사회를 둘러싸고 있고, 황우석과 그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전근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고 그러한 전근대적인 성격이 일제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이유로 인한 것인지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첨단화 되어가고 있는 문화와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부정적인 면들을 다루며 보드리야르와 기타 포스트모던 이론들을 가져와 분석하고 있다.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문화를 통한 분석에 치중하고 있는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그리고 정치적인)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조금은 아쉬울 것 같다.

 

하지만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으며 느낀 것인데, 그는 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전공영역과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의 틀을 상호보완적으로 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미학은 미학으로서 다루고 사회 비평과 문제제기도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면,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서 조금은 문화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앞으로의 행보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복합적으로 나아가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그의 행보는 여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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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암소 - ...한줌의 부도덕
진중권 지음 / 다우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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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은 최신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논쟁하며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본인은 그러한 행동과 함께 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의 모습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방송과 기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진중권의 모습은 싸움닭 바로 그 자체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미학에 대하여 글을 쓰는 진중권의 모습이 그의 본연의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생각과 실천들이 진중권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보다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고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문제제기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그의 존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그동안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발표를 했던 글들을 모은 ‘시칠리아의 암소’는 그가 발표한 미학에 관한 책들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미학에 관한 책에서의 그의 글은 되도록 차분하며 학문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느끼게 되지만(현실과 어떤 연결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를 해서 설명하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미학과는 거리가 있는 사회 / 정치적인 글들에서는(그의 표현으로는 ‘잡글’의 경우에는) 그의 글을 통해서 진중권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게 만든다.

 

냉소적이고,

유쾌하며,

신날하고,

공격적이며,

위선에 대한 조롱을 느끼게 만들며,

때로는 감상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를 비평하고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김규항, 박노자, 홍세화 등등) 아마도 글을 통해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글쓰기에서 하나의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면 진중권은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자기에의 배려’인 것일까?

조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사건과 이슈들에 대한 글들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근본적인 질문과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미 잊혀지고 있던 일들과 문제들을 새롭게 환기시키며 글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롱기가 가득하지만 유쾌함도 함께 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글도 써보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글들이 어디에 실렸던 글들인지 출처가 불명확해서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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