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 정신분석 테크닉
브루스 핑크 지음, 김종주 옮김 / 하나의학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영어권 라깡 연구자들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연구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브루스 핑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난해하게만 느껴지는(그냥 난해한) 라깡을 최대한 이해가 가능하도록(이해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상세하고 성실하게 라깡의 논의들을 전달하고 있고, 이론적으로만 느껴지게 되는 라깡의 논의가 갖고 있는 임상적 측면에 집중을 하며 라깡을 알리고 있는 연구자다.

 

다른 대부분의 라깡과 관련된 연구자들이 이론적인 측면에 몰두하거나 라깡의 정신분석에 관한 논의를 정신분석 이외의 영역에 적용하려고 하는 것에 열심인 것과는 달리 실제 임상 사례와 치료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 / 임상적으로 자신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탁월한 저작을 남긴 프로이트에 비해서 수수께끼처럼 다뤄지기만 하는(물론, 그렇게 다뤄지게 만드는 것에는 라깡 자신도 잘못이 있다) 라깡의 논의가 갖고 있는 이론적 / 임상적 측면 중 임상적인 면에 많은 집중을 보이며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오해를 조금은 줄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최근 ‘에크리’를 영어로 번역하는 등 영어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라깡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동을 보이고 있는 브루스 핑크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도 꽤 높아진 것 같은데, 기존에 출판되었던 ‘라캉과 정신의학’과 함께 그의 주요 저서들인 ‘라캉의 주체’와 ‘에크리 읽기’가 최근 번역되었고, 그의 저서들 중 다른 저서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도 번역이 되어 그동안 접근하기 어렵기만 했던 라깡에 대해서 그리고 더불어 브루스 핑크에 대해서도 (보다) 접근이 가능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복잡하고 다양-애매한 라깡의 논의와 그의 정신분석에 관한 입장에 충실하며 실제 환자들을 접하게 되면서 겪은 / 얻은 경험을 토대로 내용을 채우고 있는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은 다른 라깡과 관련된 저작에 비해서 실제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피분석자들과의 분석 과정의 경험을 통한 말 그대로 정신분석 과정에서의 경험에 근거한 정신분석 ‘테크닉’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관심에 따라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되기도, 불만을 갖게 되기도 할 것 같은데, 실제 임상 사례들과 정신분석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론적인 측면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면 실제 피분석자들과의 면담 및 정신분석 과정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진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에 대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불만을 갖게 되기도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신분석의 논의를 통해서 다양한 영역에 적용해 보는 것도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신적 / 신체적 어려움을 치료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는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이 보다 크기 때문에 생각처럼 읽어내기 까다로운 ‘라깡의 정신분석 테크닉’이 어렵기도 했지만 만족스럽기도 했다.

 

물론,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브루스 핑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분석자를 경험하면서 분석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그들의 발언들에 대해서 예민함을 갖아야 할 것이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고, 피분석자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고 대화 속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찾아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질문들과 대화 과정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감춰지고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순간들이 어떤 것-무엇인지를 최선을 다해서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라깡이 주장하는 정신분석의 방법론적 특성 중 하나인 ‘구두점 찍기’와 ‘운에 맞춰 끝내기’에 대한 수많은 오해들을 해명하고, 실제 라깡이 그리고 라깡주의자인 브루스 핑크 자신이 어떻게 피분삭자들과 면담을 하며 구두점을 찍고 운에 맞춰 끝내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언급하며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

 

피분석자와의 대화 내용을 토대로 어떻게 나눴던-발언한 대화-발언을 해석해야 하고, 분석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피분석자들이 꿈과 백일몽 그리고 환상을 통해 그들이 겪는 고통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논의하며 브루스 핑크 자신의-라깡의 정신분석 방법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 그가 이번 저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전이’와 ‘역전이’를 통해서 피분석자와 분석을 하게 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운 과정-순간이라 할 수 있는 전이와 역전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를 통해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정신적 / 신체적 갈등-고통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정신분석의 다른 논의들 보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전이 / 역전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해서 읽다보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브루스 핑크는 피분석자와의 분석 과정 중에서 분석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전이 / 역전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최대한 정교하게 라깡의 논의를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후 최근 들어 많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논쟁적인 ‘전화분석’에 대한 브루스 핑크의 입장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고, 정신병의 치료까지 다루면서 피분석자에 대한 정신분석의 시작부터 끝까지 라깡의 입장을 중심으로 그 진행-종결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브루스 핑크의 저작을 읽어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는 꽤 신중하게 / 진지하게 라깡-정신분석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고 마치 놀이처럼 써먹혀지는 정신분석 이론적 접근과는 조금은 달리 정신분석을 다루고 있고, 접근하고 있다.

 

실제 정신적 /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라깡 이외의 입장들에 관해서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고, 점점 처음과는 달리 변질되어가는 정신분석 치료에 대해서 큰 우려를 표시하며 정신분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주장하기도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론적인 측면 보다는 실제 피분석자들과의 분석 과정에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에 따라서는 읽기를 포기하게 되기도 하겠지만 정신분석의 실제 사례와 임상적인 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읽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는데,

읽기는 했어도 이해는 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저자와 역자는 주장하고 있어도. 그들로서는 쉬울지는 몰라도 일반인으로서는 뭐가 쉬운지 알려달라고 되묻고 싶어질 정도였다.

 

 

 

 

참고 : 최근 출판된 책들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디자인의 표지라고 생각한다. 겉모양만 본다면 구입을 정말로 망설여지게 되는데, 제대로 번역된 책인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니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적당히 겉모양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혹시... 안 팔리게 하려고 작정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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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외투 - 아버지에 관한 라캉의 세가지 견해 한길컬처북스 6
필리프 쥘리앵 지음, 홍준기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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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로 인하여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는 짧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회적 / 정신적으로 어떤 변화 속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석-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라캉-정신분석에 기대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정신분석에 의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대-역사적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아버지-부권이 변화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아버지’라는 존재와 권위-몰락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의 입장에서만 머물며 반복하듯이 논의되는 방식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기 때문에 가족에서의 그리고 사회적인 아버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면 가볍게 읽어보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분량이 짧기 때문에(130페이지) 상세하거나 다양한 논의를 진행시키기 보다는 간략하게 여러 관점들을 이동하고 있을 뿐이라 보다 정교하게 논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나치게 표면적으로만 다루는 것 같다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가족 내에서의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정신분석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이고, 어떻게 그 존재가 변화되었으며 그 변화들로 인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짧으면서도 여러 생각들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 할지에 대해서 기초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으로 충분히 제몫을 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라는 존재 / 이름-글자에 대한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것은 다루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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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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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예민하고,

지나치게 고독한 사람에 관한 우화이자 블랙 코미디인 ‘그로칼랭’은 무표정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으로 암울하고 서글프게 살아가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슬픈 이야기이다.

 

아마도 슬픈 이야기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고독함 속에 머물고 있는지, 누군가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뒤섞이지 못하고 홀로 지낸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딱함일 것 같다.

 

저자인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알지 못하고 그의 혹은 그들의 다른 유명 작품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알 생각도 별로 없기 때문에) 그(들)의 소설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는 나중에야 밝혀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팬이나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는 당혹스럽거나 충격적인 사실일지는 몰라도 나와 같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독자로서는 그저 흥미로운 여담에 불과한 것 같다.

 

우연히 소개를 받아(아마도 소개해 준 사람은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만) 읽게 된 ‘그로칼랭’은 프랑스 파리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쿠쟁이 키우는 비단뱀의 이름이고, 비단뱀을 키우며 홀로 살아가는 쿠쟁은 도시인의 자화상이면서 예민함으로 똘똘 뭉쳐진 고독한 사람이다.

 

항상 불안감에 빠져 있고, 과대망상과 신경쇠약의 사이에서 머물러 있는 쿠쟁은 단지 예민하고 조금은 확대해석하는 성향의 인물일지는 몰라도(그리고 도통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엉망인 일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가 떠올리는 온갖 생각들은 그 당시의 도시인들이 갖고 있는 머리 속 생각들에 대한 하나의 단면일 것이고, 지금은 쿠쟁이 떠올리게 되는 생각과는 조금은 다른 것들을 떠올리며 살아가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조금은 다른) 생각들을 해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쿠쟁은 하나의 인물임과 동시에 근대 사회-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쿠쟁은 지속적으로 낙태에 대해서 생각하고, 흑인 여성인 드레퓌스를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나치-히틀러와 냉전, 정치-사회적인 문제들과 복지사회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며 이 작품이 하나의 우화처럼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는 의도적이지 않는 듯 하면서도 의도적이라는 것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 쿠쟁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생각들 하나 하나가 웃게 만들기 보다는 씁쓸함을 그리고 비슷한 생각-감정을 가져보았다는 공감을 만들어낸다.

 

아무도 그의 곁에 없다는 것을 그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고,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열광하거나 몰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되어버린 근대 사회-도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도 뚜렷하게 만들기 보다는 모호하게 혹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어지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하도록 한다.

 

부정적이지 긍정적인지 판단이 모호한 결론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뒤틀린 ‘생태학적’ 결말보다 만족스러운 기분은 들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른 판단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아마도 좀 더 작품으로서의 읽는 이로서의 결말과 작가가 의도하는 쓰는 자로서의 결말과의 차이일 것 같다.

 

‘그로칼랭’을 읽은 다음의 기분은 아마도 주인공 쿠쟁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아니면 지나칠 정도로 이해되고 공감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처럼 홀로 지낸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전혀 경험-감정적으로도 동조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참고 : 주인공 쿠쟁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안정된 직장에서 통계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인종에 대해서 어딘지 모르게 의심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1968년 혁명에 대해서 무척 곤란해 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병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근대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중간계급-보수적 성향을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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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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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영역’ 즉,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상품소유자들로 만나는 시장 안에 머물러서는, 착취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입구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씌어 있는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야 비로소 사태가 변한다. 착취는 노동자가 판매하는 상품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즉 노동력 상품의 사용가치가 가치와 잉여가치의 원천인 노동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그 노동력이 가동되는 것은 생산에서이다.

 

- 맑스의 ‘자본론’에서 인용 -

 

 

 

무엇인가를 보다 정확하게 알려고 할 때에는 항상 그것의 겉만이 아닌 뒷모습 혹은 내부까지를 알아야 만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일 A 아이스니츠의 충격적인 현장 보고서 / 고발서인 ‘도살장’은 깔끔하고 시각적인, 아무런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고 그저 먹음직스러워 보일 뿐인 미국산 육류에 대해서 익혀먹으면 상관없다는 오해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며, 그동안 먹었던 고기들을 떠올리며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몇 년 전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는 소식에 그리고 광우병 소들이 몰려온다는 직설적인 소식에 한동안 한국은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혼란스러웠었는데, 얼마 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거대한 저항 / 반발감은 아무렇지 않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미국산 고기들에 대해서 별다른 저항감이나 불편함 없이 우리들은 씹고 먹으며 포만감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도살장’을 읽게 된다면 마치 중국산에 대해서는 무조건 불량품처럼 생각하듯이 미국산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무조건 오염되고 감염된 제품으로 의심하게 될 것이고, 그런 병적인 의심과 불안감이 오해가 아닌 진실이라는 것에 더욱 공포스러운 기분만 갖게 될 것이다.

 

동물 보호 운동가인 게일 A 아이스니츠는 미국산 육류(소, 돼지, 말, 닭 등)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으며 그 문제점의 핵심은 과도한 경제적 이익 추구로 인해 발생된 것이고, 그로 인해서 육류를 만드는 과정(도축 과정)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육류 제품들이 오염 / 감염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신체적 /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가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참혹하다는 평가를 하게 되는 도축 과정의 잔혹성은 책을 읽는 도중 읽기를 멈추게 만들 정도로 잔인함으로 가득하고, 동물-고기-음식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끔찍한 행동이 벌어지는 도살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정신적 / 육체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몰리게 되는지를 상세한 인터뷰(... ‘최악의 일이 가져오는 것 중 육체적인 위험보다 더 나쁜 것은 정서적인 피해야.’ ...)를 토대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오염된 / 될 수 밖에 없는 육류 제작 과정(도축 과정)과 그 오염된 육류 제품을 먹게 된 / 먹는 사람들이 어떻게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걸리게 되었는지를 인터뷰와 내용의 진행 도중 간간히 삽입되어 오염된 육류 제품에 대한 경각심과 불안감을 좀 더 고조시키고 있으며, 저자인 게일 A 아이스니츠 본인도 도살장과 관련된 업무로 인한 정신적 / 육체적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고 그걸 이겨내는 과정까지 다루면서 육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좀 더 사회 구조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내용이 겹쳐지게 만들어 더욱 인상적인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결국, 육류 제작 과정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사업과 관련되어버림으로써 발생하기 시작한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제어하려는 노력 / 논의보다는 그저 생산량과 수치로서만 모든 것을 말하는, 다시 말해서 경제적인 논리에서만 다뤄짐으로써 사태는 더욱 악화만 되어갈 뿐이고, 여기에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어떠한 해결점도 찾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더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다는 암울한 결론을 내리게 되지만 게일 A 아이스니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접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가면서 조금씩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 그리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되고 있는 일련의 ‘고기’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들은 육류 업계 관계자의 인터뷰처럼

 

내 생각엔 결국 탐욕이 문제였던 것 같아.

 

결국 지나친 탐욕이 문제인 것 같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제어가 그리고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 : 단순히 도살장에 대한 고발서로서만 ‘도살장’을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좀 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도살장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그리고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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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 - 인문사회과학총서
아니카 르메르 / 문예출판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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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가라앉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크 라캉에 대한 관심은 높은 것 같고, 그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에 라캉에 관한 여러 글과 책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출판되는 것 같다.

 

아쉽게도 라캉에 ‘관한’ 책들만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을 뿐이고, 정작 라캉이 직접 쓰거나 발표한 글들과 책들은 출판이 겨우 되었거나(세미나 11권) 준비 중에 있기 때문에(언제나 출판이 곧 된다는 말만 들리는 에크리) 라캉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논의는 여전히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난해하기로 악명 높고,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라캉이기 때문에,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입문서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그 중 라캉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초기에 출판이 되어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은 아니카 르메르의 ‘자크 라캉’은 라캉에 관한 입문서들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쉽게 라캉에게 접근하고 있는 책으로 꼽히고 있고, 실제로 라캉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하고 있다.

 

아니카 르메르의 안내의 특징은 다른 라캉과 관련된 책들에 비해서 ‘언어’에 대해서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라캉의 언어학적 특성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다른 라캉과 관련된 책들이 소쉬르의 영향에 대해서만 그리고 기표와 기의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다루고 있을 뿐 언어학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하지 않는 것에 비해서 아니카 르메르는 소쉬르에서부터 촘스키까지 현대 언어학의 흐름을 간략하게라도 다루면서 언어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라캉의 논의에서 갖고 있는 ‘언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라캉의 이론적인 측면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이 구성되어 있는 아니카 르메르의 ‘자크 라캉’은 라캉과 관련된 책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던 시기에 출판된 라캉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이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라캉의 논의에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해야 할 것 같으나, 라캉의 논의의 일부분만을 담고 있을 뿐 전반적인 논의를 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특히, 라캉의 논의에서 점점 더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 ‘실재’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몇몇 논쟁적인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관성 있고 상세하게 라캉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라캉을 접하려고 하는 입문서로서는 괜찮은 책이겠지만, 이것으로 그에 대한 많은 접근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일까?

라캉이 직접 쓴 서문도 어쩐지 자신에 대한 책이 발표되는 것에 대해서 만족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에 논의에 대한 이해는 제대로 되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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