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상
에드워드 파머 톰슨 지음, 나종일 외 옮김 / 창비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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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계급’이 갖고 있는 의미는 가볍게 생각한다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특정 집단 혹은 구성원들을 뜻하는 것에 그칠 수 있을 것이고,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면 좀 더 상세하게 파고들어 사회 구성원들이 어떠한 구분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각각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보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로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든지 ‘계급’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더 이상 사회 구성원들을 계급(관계 및 구조)으로서 이해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얻고(호응도 얻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계급’을 통해서 사회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기 보다는 여전히 혹은 좀 더 말을 해야 하고 논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전과 같은 경직된 이해와 분석 속에서 논의하기 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 정교한 이해가(모순된 말인 것 같지만)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관한 광범위한 검토를 하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E. P.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국에서의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을 파악하려고 하는 위대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자본주의 발달 과정이 모든 국가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국가에 따라 노동계급의 등장과 형성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영국에서의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을 통해서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와 유사성을 갖고 있는지를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준점과 문제에 대한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하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다르게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내용에서는 그다지 명확하게 혹은 구체적으로 노동계급을 다루지 않고 있고, 무척 아리송하고 불투명하게 이해되고 있고 헷갈려지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동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하면서도 모호한 느낌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하고 있고 추적하고 있다.

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이런 복잡함 혹은 난해함고 난감함은 E. P. 톰슨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산업 및 상업의 노동자들에 대해서 파악함으로써 노동계급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단순명쾌하게 노동계급의 형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게 되는 곤혹스러움과 어려움일 것 같고, E. P. 톰슨의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이해와 논의는 무척 장황하게 느껴지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혹은 확대된 이해와 해석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머리말에서 본인 스스로 주장하듯이 E. P. 톰슨은 계급이라는 것이 하나의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거나 구조화-범주화 된 모습을 처음부터 보이고 있었기 보다는 역사적 과정-흐름 속에서 나타난 ‘어떤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E. P. 톰슨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인식 혹은 계급 인식이 있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혹은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을 인식하고 표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런 (포괄적인 의미에서) 저항의식에 대한 반대 작용(억압, 제재, 통제, 착취, 탄압 등)이 일어났는지를 다루면서 그 갈등과 대립 그리고 대결과 충돌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계급이 형성되고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집단으로의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그 이해와 인식의 과정과 전환의 과정을 무척이나 세밀하고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이해 방식이 어쩐지 역사학계에서의 최근의 (아날 학파 혹은 심성사로 대표되는) 분석 방식과 무척 유사한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떠올려진 생각은 나중에라도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 P. 톰슨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 초기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이라는 외부적 사건과 영국 내부의 종교에 관한 다양한 측면(감리교 및 각 종파 사이의 갈등과 기타 등등)에 관해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데,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등장이라는 외부적 사건과 변화가 영국 내부에서 저항과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의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반대로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 또한 만들어 급격한 변화의 가능성을 혹은 흔히 말하는 밑으로부터의 / 아래로부터의 거센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종교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갖고 있었던 다양한 정서적인 변화들과 좌절감과 분노들이 어떻게 관리-억제될 수 있었는지를 너무나 복잡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무슨 의도로 분석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E. P. 톰슨은 근대 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조건의 생산관계 및 노동조건과 노동형태(장인, 선대제 등과 같은 기존의 방식에서 분업과 기계의 등장)로의 전환과 이런 전환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생성되기 시작하는 계급으로서의 인식과 기독교적인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에서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의 정서적이고 심정적인 또한 행동과 기타 다양한 미세한 변화들을 주목하고 있고 그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야 말로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인식과 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E. P. 톰슨은 이런 급작스럽기 보다는 서서히 변화되고 미세한 차이들이 발생되는 일련의 변화의 과정과 계급인식에 관한 과정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파악하고 있고,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그 과정들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읽던 도중에는 도대체 무슨 논의를 하려고 이런 세세한 내용들을 검토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짜증스럽게만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면 하나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형성되는 것이 그저 단순하고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모든 것을 쉽게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반성도 읽다보면 생겨나는 짜증 때문에 쉽게 잊게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하권에서는 좀 더 이해를 하면서 E. P. 톰슨의 논의들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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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한길크세주 1
F. 블뤼슈 외 지음 / 한길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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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바쁜 일정 때문에 짧은 분량의 책을 찾거나,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책들을 찾게 되기 때문에 읽기 보다는 대충 훑어보는 수준으로 책을 보고만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선택하게 된 ‘프랑스 혁명’은 그동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이미 읽어왔었고, 특별히 새롭게 접근하려는 생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시금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혹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프랑스 혁명의 사건들의 과정들을 기억하고 있는 진행 과정과 맞춰보는 의미에서 읽게 되었다.

역시나 기억력이 형편없기 때문인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었음에도 ‘프랑스 혁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몇몇 부분에서는 기억하고 있던 내용들과 약간은 다른 부분도 있었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읽으리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여전히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1789년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혼란스러움과 위기에 빠지게 되어가는 시기부터 나폴레옹이 모든 권력을 움켜잡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과정 속에서의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다루면서도 단순히 사건들만의 연속이 아닌 그 연속 속에서 어떤 입장들이 있었으며 그 각각의 입장들이 어떤 갈등과 다툼 속에서 자신의 의도에 맞게 상황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분류 방식인) 국왕, 보수, 진보의 입장에 따라 각각의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고, 어떤 방향과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를 되도록 간단하게 다루고 있지만(다루려고 하고 있지만) 그 간략화로 인해서 좀 더 선명하고 명확하게 각각의 입장들과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 외의 개별적인 쟁점들에서 중요성이 느껴지는 부분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부족하게나마 언급을 해주고 있고, 이해를 높여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 부족한 사람들도 쉽게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몇몇 논쟁적인 점들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변역자의 성실한 추가 설명들과 저자들의 중요한 내용들만을 간추려서 잘 설명해주고 있는 내용 구성 때문에 쉽게 읽혀지면서도 부족함을 느껴지게 되는 점은 적은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분량 때문인지 혁명에 대한 논의의 끝을 나폴레옹이 등장하게 되는 순간에서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논의가 진행하다 끝을 맺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입문서로서 이처럼 잘 채워진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면 ‘프랑스 혁명’부터 읽기를 권하고 싶어지게 된다.

이정도면 최소한을 혹은 최대한을 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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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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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51546121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책은 한번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그저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수없이 되풀이 읽어야지만 이해될 수 있고 느껴질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사람들에 따라 그런 책이 어떤 책인지는 각자 달리 말하겠지만 그런 책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바로 그런 책이고,

이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하기만 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내용들은 끊임없이 다시 읽어나가게 만들고, 감동하도록 만든다.

 

무엇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이처럼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지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읽으면 읽을수록 뛰어남을 느끼게 된다는 말만 하게 될 것 같다.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이 나누는 알 것 같으면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선문답과 같은 대화들과 마르코 폴로의 입을 통해서 이탈로 칼비노가 들려주는 수많은 도시들의 풍경과 모습에 대한 묘사들은 누구에 대한 내용이 아닌 무엇에 대한 혹은 어떠한에 대한 내용임에도 다양함과 반복 그리고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짧막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들 속에서 여러 다양한 의견들과 세상에 대한 통찰들로 이뤄져 있으며, 도저히 묘사하기가 어려운 어떠한 형체에 대해서 어떻게든 묘사하려고 하는 노력들로 가득한데,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들고 있는 여러 가지의 글쓰기 방법들은 다시 한번 읽어도 여전히 감탄하게 되고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도시의 외부와

도시의 내부를

바깥에서 바라보고

안에서 둘러보는

 

이탈로 칼비노의 마술과 같은 시각과 글들은 언제까지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다시 읽도록 만들 것 같다.

 

어떤 것이 뛰어난지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탁월할 뿐이다.

 

어쩌면 나중에는 어떠한 부족함을 찾아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부족함 또한 아름다움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껏 읽은 몇 안 되는 책들 중에서 아마도 ‘보이지 않는 도시들’ 만큼 기억에 남을 책은 없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언제나 추천하고 싶고,

단연코 언제까지나 누군가에게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말하게 될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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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
페리 앤더슨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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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앤더슨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는 그저 평범한 맑스주의 이론가들에 대한 입문서 / 개론서로서 생각했었고,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 책을 찾던 중 찾게 된 책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읽게 되었지만 논의되는 내용들을 접하면서는 그렇게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읽어나갈 수 있기는 하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매우 의미 깊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맑스주의의 시작인 맑스부터 시작해서 68혁명 시기에 활동하던 알튀세르, 사르트르, 프랑크푸르트 학파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시기 순으로 살펴보고 있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는 단순히 살펴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논의들이 어떤 역사적 혹은 사회 /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었는지를 그 논의들의 장점과 부족함은 어떤 것인지를 다루는 등 좀 더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저작이다.

 

아쉽게도 저자는 분량의 한계 혹은 논의의 한계(그 수많은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상세하게 다루려면 몇천페이지의 분량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그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학자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로 인해서 각각의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간략하게 다루거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논의들만을 다루고 있고, 그 논의가 갖고 있는 탁월함과 함께 부족한 것은 어떤 것인지를 단순화 / 간략화 시켜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각각의 이론가들의 논의들을 정리해주고 있고(난이도를 조절해주고 있고), 그 논의들에서 어떤 점들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구성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맑스의 저작들을 살펴보며 맑스가 어떤 점들게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논의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있고, 맑스의 논의들을 받아들인 1세대 이론가들로 평가하는 이들이 어떻게 맑스의 논의를 받아들이고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고 있다.

 

그런 이론의 발전과 전개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하며 저자는 다른 입문서와 개론서 저자들과는 다르게 지리적인 점과 경제적인 조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처음 맑스의 논의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대부분 동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다는 점과 대부분의 맑스주의 이론가들이 노동자 출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고, 맑스주의가 항상 중요시 하고 있던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혹은 모색이) 시간이 흐를수록 분리되고 있었고(혹은 되어버렸고), 다시금 그 결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게 논의를 하고 있다.

 

맑스주의와 관련된 여러 이론가들 대부분을 간단하게나마 /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들의 활동하던 시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서 어떤 맥락에서 그들이 그와 같은 논의와 저작들을 발표하게 되었는지도 설명을 해주면서 각각의 이론가들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론가들의 논의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다고 해도 / 이해가 어렵다고 해도 읽어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각각의 논의들도 상세하게 검토하기 보다는 조금은 단순화 시켜서 혹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 각각의 이론가들의 논의에 대해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어려움 없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장점 또한 있었다.

 

저자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맑스주의자들에 대한 이론들이 갖고 있는 뛰어남과 탁월함 보다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 분석과 결론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를 하게 되기는 어려울지라도 충분히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일정부분은 인정하게 되기도 했으며, 그 문제의식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까다롭고 상세하기 보다는 쉽게 이해시키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저작이기 때문에 입문서와 개론서로서도 괜찮을 것 같고, 맑스주의 이론가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약간은 다른 시각으로서 현재의 맑스주의 이론들에서의 부족한 점들 혹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마무리로 저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부족함을 후기에 말하고 있을 정도로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는 무척 균형감각을 갖고 맑스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각각의 이론들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런 균형감각은 쉽게 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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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수잔 앨리스 왓킨스 외 지음, 안찬수 외 옮김 / 삼인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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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사람들에 따라서 1968년 혹은 68년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리고 68혁명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기분이 들뜨게 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인데(물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도 1968년에 대한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여전히) 갖고 있고, 그 1968년 전후에 있었던 혹은 그 기간 동안 생겨나고 변화되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때늦은 68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그래서 무언가 ‘미쳐 돌아간 시대’였다고만 말하게 되는 1960년대 후반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 시대에 대해서 논하는 것들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접하고 있기는 / 접했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못하는 처지였었고, 그런 무지함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1968년에 대한 일종의 사건 기록부와 같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이런 부족한 지식들을 채워줄 수 있는 만족스러운 기록일지라고 볼 수 있다(번역자는 그 이상의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만족은 준다).

저자인 수잔 앨리스 왓킨스와 타리크 알리는 1968년 한해에 한정해서 그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을 그리고 발언들과 여러 자료들로 1968년에 대해서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있다.

저자들은 1968년의 흔적들을 다시금 회고하며 미화되거나 오해되고 있는 1968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때 바로 그 시대의 상황과 실제 사건들을 글을 통해서나마 접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와 서유럽 그리고 남아메리카와 북유럽을 중심으로 1968년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 순으로 중요한 사건과 상황들을 풀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읽다보면 단순히 1968년에만 한정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저자들이 엮은 내용들은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고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당시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만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간간히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주고 있거나 저자들의 입장은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하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든 결국 1968년에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은 혁명의 달성이 아닌 패배로 끝이 났고 그 이후 여러 방식으로 그에 따른 반격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반격에 대한 저자들의 입장과 미래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끝으로 내용을 마치고 있다.

단순히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한 꼼꼼하고 상세한 기록으로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때 그 시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자들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상황들로 인해서 지금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책의 끝부분에 번역가의 해제가 워낙 자세하게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쓸데없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1968년에 벌어진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어차피 읽을 사람은 어떻게든 읽게 되기 마련이고,

안 읽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읽지 않기 마련이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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