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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마일 ㅣ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평점 :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대단원의 끝맺음인 ‘문라이트 마일’은 그동안의 고생담에 대한 자연스러운 안식이면서도 그 결말이 후련함 보다는 쓰디씀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비극성과 암울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개운한 마무리가 아닌
뒤숭숭한 기분의 우울한 마무리를 선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4번째 작품 ‘가라, 아이야, 가라’의 속편의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가라, 아이야, 가라’의 속편만이 아닌 다른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작품들도 부분적으로 다시금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재구성-재활용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과 비교하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런 과거 작품들의 되새김이 ‘문라이트 마일’의 독자성을 부족하게 만들고 시리즈의 끝맺음을 위한 내용 구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야기 진행이고,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끝을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내용 진행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언뜻 과거 작품들을 언뜻 생각나도록 만드는... 그런 느낌이 들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데니스 루헤인은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말고도 하드보일드-범죄소설 장르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만큼의 재미와 흡인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실패한 시도들이라고 생각되지만(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미스틱 리버’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조금은 미뤄야 할 것 같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 이외의 작품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와 재미가 있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좋은 작가라고 생각되고, 아쉽게도 이번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만날 것 같지 않다는... 마지막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들이 어떤 완성도를 보여줄지 궁금함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문라이트 마일’은 ‘가라, 아이야, 가라’의 속편의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고, 아만다 실종 사건이 종결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건은 시작되고 있다.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부터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는 사립탐정으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와 내면적 갈등 그리고 자괴감은 좀 더 커졌고, 그런 고민과 함께 앤지와 가정을 꾸리고 딸아이가 있는 등의 가장으로서의 모습과 시대적으로는 경제적인 불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경제적인 곤란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전보다 더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를 바라는 기도’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의 공백기를 읽는 이들도 느끼도록 하려는 듯 다양한 소품들과 여러 대화들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변해버린 시대상을 확연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고, 그런 시대의 풍경 속에서 자신이 늙었음을 그리고 모든 것에 지쳤고 회의에 빠졌음을 알려주는 여러 독백들을 통해서 ‘문라이트 마일’은 한편으로는 다시금 사라진 아만다를 찾고 그 찾게 되는 과정 속에서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의 선택에 대한 (예상하기는 했지만) 뼈아픈-현실적인 결론을 마주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패트릭 켄지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 패트릭 켄지의 현실에 좌절하고 세상에 좌절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가 진행이 될수록 앤지 제나로는 점점 더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만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거의 비중이라고 찾을 수 없는 조역에 불과할 뿐이고 부바와 마찬가지로 예전의 개성 넘치는 모습들을 기억나게만 만들고 그 모습들마저 희미하게만 기억나게 되는 그런 미미한 존재로서 축소되는 느낌이 들어 앤지와 부바의 팬들이라면 아쉽게 느껴졌을 것 같지만 달리 본다면 데니스 루헤인은 좀 더 패트릭 켄지에 집중해 이야기를 완성시킴으로써 이 시리즈가 마치 보스턴-도체스터를 배경으로 하는 ‘오디세이아’로 완성시키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디세이아’와 엇비슷한 끝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볼 수 없기도 할 것 같다.
생각에 따라서는 이보다도 더 불편한 결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라이트 마일’은 어떤 의미에서든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의 패트릭 켄지의 선택을 철저히 부정하는 작품일 것이고, 사정없이 가혹하고 잔인하기만 한 보복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견디기 어려운 결말이고 충분히 가슴 아프고 애초의 선택에 대한 불길함을 설득력 있게 서글픈 결말로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분적으로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의 결말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아만다를 통해서 ‘신성한 관계’에서의 데지레를 좀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진행과 흡인력 그리고 박진감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결말에 가서의 반전과 슬픈 마무리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가 갖고 있는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이 갖고 있는 비극성과 완결성을 충분히 만들어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완성에 있어서의 만족감은 이전과 달리 조금은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 같다.
우선 느끼게 되는 아쉬움은 패트릭 켄지가 많은 모순과 틀렸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선택했던 그 결심들에 대해서 다시금 그 선택을 반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런 선택들로부터 도망치거나 그냥 그대로 두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인데,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고 감춰졌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거기서 더 이상의 행동을 옮기지 않고 개입하기를 꺼려하면서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아만다를 통해서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그릇된 결과를 만들었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 패트릭 켄지 본인이 아만다에 대한 선택에 후회하거나 자신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없으면서 새롭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어떤 선택이나 갈등도 없이 도망치듯 가족으로 향한다는 점은 좌절로 인한 더 이상의 선택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만 느껴진다.
변명하듯이 도망치는 모습이랄까?
그동안의 고난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갖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그동안 겪어왔던 수많은 고난들과 고비들 덕분에 모든 것으로부터 환멸을 느끼게 된다는 점과 그래서 결국 지금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보겠다는 모습에 멋진 마무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선택 전에 그동안 그가 수많은 갈림길에서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해냈던 선택들을 이번 작품에서는 그 선택에서 비켜서고 미루기만 하는 모습에서 좀 더 복잡한 존재로서 패트릭 켄지가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흔한 말로 좀 더 현실적인 인물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주어진 선택에 대해서 우리들과 다를 것 없이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자신과 무관함을 좀 더 내세우는 모습에서 패트릭 켄지가 그간 갖고 있었던 자신만의 규칙에서 사회와의 일정한 갈등에서 도망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로 선택했다는 생각을 들도록 만든다.
아마다가 겪었던 과거와 그리고 겪어야 할 미래들을 생각하며 그녀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게 되거나 한편으로 대견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선택했고 행했던 여러 잘못들에 대해서 단순히 훈계나 비판으로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은 좀 더 패트릭 켄지의 모습에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 같다.
작품은 아만다에 대해서 그릇됨을 강조하기 보다는 그녀의 선택에 어떤 매력을 불어넣고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데니스 루헤인이 부분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수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도 예전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입장의 변화 이후의 결론이 어떤 의미에서 무척 자연스럽기도 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패트릭 켄지는 세상과의 갈등을 뒤로하고 가족으로 향하고 자신의 가족과 친구인 부바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은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 그가 그 수많은 모험과 온갖 고난 끝에 선택하는 가족이라는 명확한 테두리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자신과의 무관함을 강조하는 모습은 ‘비를 바라는 기도’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등을 돌린 것이 맘에 걸려서 집요하게 사건을 파고드는 모습과 분명하게 달라졌음을 알려주고 있고, 그 자기부정과 자기긍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보다는 모든 것들을 잊고 안정과 평온을 찾겠다는 결론을 찾아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 속에서는 당연한 결말인 것 같다.
가족과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변사람들에 대한 확실한 선긋기는 이전과는 꽤 달라진 모습이고 이것을 매우 미국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동안의 서구-근대의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런 선택이 아만다와 대립되기 보다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마찬가지의 결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아만다 또한 그녀 스스로 자신만의 규칙 속에서 행동했고 그 과정 속에서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고 정당함을 항변하겠지만 자신이 정한 가족들을 만들어내는-지켜내는 과정으로 인해서 만들어낸 죽음들과 타협들(약물중독의 드레는 쉽게 죽이면서 온갖 범법을 자행하는 마피아 조직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마피아 조직 때문인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에 외면하고 있을 뿐이고, 그런 외면은 패트릭 켄지와 아만다 맥크레디 둘 다 동일한 정서와 논리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서는 누구도 죽일 수 있다는 ‘가라, 아이야, 가라’의 마지막 주장을 ‘문라이트 마일’은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그리고 지금-현재의 미국은 바로 이 논리 속에서 모든 선택이 이뤄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선택이 단순히 미국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논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대부분은 이 논리 속에서 선택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근데, 이 논리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는 쉽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게 된다면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세상과 다툼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바로 그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버지와의 격렬한 갈등과 함께 세상에 대한 냉소와 환멸 그러면서도 애정을 보여주었던 작품이 점차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는 세상 속에 머무는 것을 긍정한다는 점은 세상에서 이탈된 존재들이기도 했던 그것을 긍정하기만 했던 이들이 세상으로 귀환한다는 방식으로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이면서 서구-근대의 세계관이라는 밑바탕 위에 서있는 이야기 구조일 것이고 결론도 아주 틀린 결론은 아닐 것 같다.
하나의 성장소설일 것이며,
하나의 개인이 완성되는 작품일 것이며,
벗어난 존재가 세계 안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일 것이며,
어떤 합리화가 완성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걸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안타까움을 가져야 할 것이고 좀 더 치열하게 세상을 싸워나가길 독촉해야 할 것인가?
그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는 이미 패트릭 켄지가 겪었던 사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그런 결론을 내놓지도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어떤 결론을 내놓아야 한다면,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는 전제 속에서 조심스럽게 지금의 패트릭 켄지의 선택에 대해서 의문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그렇게는 말해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이정도만이라도 말해야 할 것 같다.
근데, 이걸 누구에게 강요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