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Watchmen 2 - 시공 그래픽 노블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참고 : http://acomics.co.kr/archives/17835#.U8rq4UDSxNY

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78144072

왓치맨 – 1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067280084

 

 

 

1권에서 이어지는 2권은 그동안 코스튬 히어로 생활을 그만두고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나이트 아울이 자신의 무기력하기만 한 삶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 곁에서 그를 응원하는 실크 스펙터와 다시금 코스튬 히어로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스스로를 옥죄듯이 지내던 나이트 아울이 코스튬 히어로 생활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무기력에서 벗어나 활력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성적인 무기력에서도 벗어난다는 설정은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되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서 진행되고 있는데, 나이트 아울을 통해서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고 있고, 나이트 아울이 로어셰크를 탈옥시키면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았지만, 다시금 닥터 맨해튼을 등장시키며 로어셰크-나이트 아울, 닥터 맨해튼-실크 스펙터로 분할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시간이 미래와 과거가 하나로 겹쳐져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닥터 맨해튼과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닥터 맨해튼에게 질릴 만큼 질려버린 실크 스펙터의 갈등을 ‘왓치맨’은 무척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런 갈등과 함께 실크 스펙터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함께 다루면서 감춰졌던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진실을 알게 되어 괴로움에 빠진 실크 스펙터와 그런 실크 스펙터의 모습을 바라보며 삶과 생명의 의미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 닥터 맨해튼의 모습은 약간은 주된 이야기의 진행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지만 코미디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고, 과거의 코스튬 히어로들의 복잡한 관계들과 닥터 맨해튼을 통해서 무의미함에서 의미 있음으로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내용도 함께 구성시켜서 느슨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핵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상황은 악화되어가고, 로어셰크와 나이트 아울은 코미디언의 죽음부터 시작된 모든 음모가 한때는 그들의 동료였고,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 중 하나인 오지맨디아스가 꾸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막바지로 치닫는다.

 

로어셰크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일기와 그동안의 삶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오지맨디아스, 그들이 벌이는 결투와 함께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계획했는지 그리고 실행했는지를 알려주며 지금까지 느껴졌던 수많은 궁금증들을 하나씩 해소해주고 있고,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오지맨디아스의 결과물은 한꺼번에 모든 진실을 알려주고 있으면서도 충분한 설명과 함께 놀라운 상황을 맞이하게 만든다.

 

너무나 엄청난 규모의 음모였고,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지기만 한 계획이었는데, 이야기의 진행에서 조금씩 흘려주던 조각난 사실들이 하나로 합쳐지니 당혹스러운 진실로 펼쳐지게 된다.

 

그래픽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영화에 비해서는 좀 더 각자의 입장을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논의들과 타협들을 좀 더 생각해가며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만들어내는 결말에 비해서 좀 더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는데, 여전히 오지맨디아스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런 계획을 실행하게 되기까지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지만 그걸 실제로 저질렀다는 점에 로어셰크와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저질러진 상황에서 로어셰크와 같이 끝끝내 진실에 등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커지겠지만, 단호하게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게 아니면 나이트 아울이나 닥터 맨해튼과 같이 거짓된 진실이고 추악한 평화이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무척 고민된다.

 

결국 코미디언처럼 애초부터 현실에 대해서 냉소하고 비웃듯이 살아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로어셰크처럼 구역질나는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싶으면서도 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등 돌리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더 적절한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여러 내용들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작품이고, 방대한 정보로 가득한 내용이라 한번으로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도 있고, 좀 더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도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열혈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유도 쉽게 납득하게 되고.

 

좋은 작품이고, 그래픽 소설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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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동문선 현대신서 40
알랭 바디우 지음, 이종영 옮김 / 동문선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알랭 바디우

 

이름으로만 접했을 뿐이고,

명성으로만 접했을 뿐인...

어쩐지 관심이 들기는 하지만 쉽게 이해될 것 같지 않기에 나중으로 미뤘을 뿐인...

 

그의 저서들이 하나씩 출판을 하게 되면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게 되었지만 책을 집었던 손은 잠시 집었을 뿐이었고, 다시금 제자리에 놓고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었다.

 

그러다 그의 생각을 되도록 간략하고 명확하게 써냈다는 ‘윤리학’을 알게 되었고 알랭 바디우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내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분량도 적어서(100쪽 정도의 짧은 글이다) 쉽게 읽을 수 있진 않았지만 다행히 괴로울 정도의 책읽기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옮긴이는 알랭 바디우의 글이 결코 이해하기 어렵게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다지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인지 결코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는 말을 꺼내면서 ‘윤리학’에 대해서 간단하게 끄적거린다.

 

옮긴이의 언급처럼 ‘윤리학’은 프랑스와 유럽(그리고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에서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윤리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올바름과 차이에 대한 인정과 존중에 대해서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것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우월감과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 적인 무시, 배제와 제외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듣기에는 설득력 있고 쉽게 호응하게 되는 논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틀린 점들을 찾게 되어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묘하게 찾아지는 부분들을 정교하게 풀어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윤리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세련된 방식의 지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경우도 해외에서 논의되는(유행하는)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그냥 그대로 가져오며 얘기되는 경우가 많아서 ‘윤리학’에서의 논의가 나름대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한국사회에 적용될 수 있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면서 읽어내면 좀 더 흥미로운 책읽기가 가능할 것 같다.

 

알랭 바디우는 우선 윤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날 윤리가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논의하며 왜곡된 방식의 이해를, 잘못되고 결국에는 부정적이기만 한 이해를 갖게 되는 현재의 윤리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폭로하고 반박하고 있다.

 

제대로 이해를 하면서 읽어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알랭 바디우는 지금의 논의들이 갖고 있는 위선과 잘못된 입장과 이해가 결국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기 보다는 배제하고 제외하는 결론으로 향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윤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는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허무에 대한 의지로만 가득한 현대사회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진리로 향해야 할지를, 과연 진리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 구분이 쉽게 이해되지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 앎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지금 시대의 허무에 대한 의지에 이미 너무 물들어 있기 때문에 알랭 바디우의 논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열린 자세로

개별성에 대한 이해를

진리에 대한 열망과 

무언가를 깨달음을 수 있게 되기를

 

‘윤리학’은 그런 것들을 되도록 명확하게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논의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읽고 알아가기 보다는 어렴풋하게만 느껴질 뿐이고, 쉽게 이해되진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알 듯 말 듯 하고 머리에서 정리가 되질 않고 있어서 말로 꺼내지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읽었어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고,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쉽게만 느껴질 뿐이다.

 

워낙 정신없이 지내고 있는 도중에 읽게 되어서 솔직히 읽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대충 들여다봤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래도 알랭 바디우의 글을 이런 식으로라도 접하게 되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의 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이해보다는 겨우겨우 읽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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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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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99774193

 

 

소설이 아닌 영화를 통해서 먼저 접하게 된 ‘세계대전 Z’는 좀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새로울 것 없는 영화였지만 조금은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남다른 설정들과 상황은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관심을 갖게 되어서 읽게 된 ‘세계대전 Z’는 영화와는 꽤 많은 점들이 달라서 조금은 생소한 기분으로 읽게 되기는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흥미진진하게 읽게 될 수 있기도 했다.

 

영화보다 소설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 이상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현실에 대한 싸늘한 농담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 지금껏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가볍게 뒤집으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능청스럽게 새로운 (좀비가 지배-대결하는)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세계대전 Z’의 일부분만을 다뤄내고 있는 영화는 ‘세계대전 Z’의 세계관이 갖고 있는 풍부한 재미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 쉽게 반박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자신 있게 (영화에 대해서 나쁜 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계대전 Z’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소설을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세계대전 Z’는 어떻게 이런 보고서를 남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며 읽는 이들이 ‘세계대전 Z’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좀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확산되었으며, 그들로부터 도망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으며, 반격의 과정은 어땠었는지를, 아직 완벽하게 제압되진 않았지만 어떻게 승리하고 안정을 찾게 되었는지를 인터뷰 자료들을 정리한 것처럼 내용을 꾸미고 있다.

 

실제 인터뷰(들)처럼 내용을 담고 있어서 좀 더 현실감을 느끼게 만들고 실제 벌어진 일처럼 생각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좀 더 흡인력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단지 좀비들이 어떤 존재들이고 그들과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해서 담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좀 더 내용을 확대해서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한 온갖 상상력으로 가득한 여러 내용들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어서 어떻게 저런 것들까지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 감탄하며 읽게 되었다.

 

상상력만으로 이렇게 거대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인지 놀라움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아마도 한동안 이정도의 상상력으로 채워진 소설을 쉽게 접할 수 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아는 것이 적어서 이런 소설에 너무 호들갑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재미로만 따진다면 이렇게 재미난 소설도 드물 것이고,

재미를 떠나서도 이처럼 다양하고 흥미로운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설도 드물 것 같기에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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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깊은 철학 50 - 세계의 지성 50인의 대표작을 한 권으로 만나다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김형철 감수 / 흐름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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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관련된 입문서들은 꾸준히 출판되고 있고 그런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추천할 수 있을지 망설여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입문서라는 것이 첫 시작에 불과할 뿐이지 모든 것을 담아낸다고 생각되진 않기 때문에(물론, 그것만 읽고 이미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나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최근에 출판된 책이 가장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철학자들에 관한 가장 최근의 연구까지 검토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출판된 짧고 깊은 철학 50’은 얼마나 최근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철학을 대표하는 50인을 추려내고 550쪽 가량의 분량을 통해서 그들의 대표작을 간략하게 다뤄내고 있는 짧고 깊은 철학 50’은 철학자들 50인의 대표작을 통해서 그들이 생각하고 고민하던 문제의식의 일부분을 간추려내고 정리하고 있다.

 

저자 나름대로의 기준 속에서 선별된 50인의 철학자들은 저자의 들어가는 글을 통해서 대략 어떤 기준과 의도 속에서 선택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영국과 미국의 철학자들이 중심이고 (영국과 미국의 철학과는 거리가 있는) 또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의 철학자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조금은 불편한 생각을(혹은 기대하던 인물들이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철학적 흐름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것이 없어서 조금은 생소한 기분으로 읽고 접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들도 있고 프랑스와 독일 쪽 철학적 흐름과는 또다른 특징들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조금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기도 했는데, (전혀 알고 있지 않던 논의들이 많아서 그런지) 약간은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저자가 논의를 되도록 쉽게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난해한 수준으로 느껴지진 않고 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입장과 논의들이 많기도 하고, 학자들의 간략한 소개와 대표작에 대한 간략한 정리 그리고 마지막 짧은 평가까지 각각의 학자들에 대한 분량은 적기는 하지만 학자들에 대한 이해에 오해가 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간간히 평가에 동의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고 논의하고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혹은 철학자들의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관심을 갖게 된-용기가 생긴 사람이라면 짧고 깊은 철학 50’을 길잡이 삼아 관심을 갖게 된 학자들의 저서들을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갖게 되는 학자들이 많이 있게 되어서 나쁘지 않은 책읽기가 된 것 같다.

 

몇몇 학자들의 책들을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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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피치 - 개정판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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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 월드컵 기간이라 (축구가 아닌)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한창인 상황 속에서(한국의 16강 좌절로 급격하게 열기는 꺼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욱 열정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좋은 축구를 보는 것이 우선이라...) 좀 더 유익한 책읽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닉 혼비의 피버 피치는 어쩌면 월드컵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월드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축구를 단순히 4년마다 즐기는 사람들에게 축구가 삶의 일부를 넘어선 그 무엇인 수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축구를 그리고 아스널을 접하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으며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넘어선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얘기를 꺼내게 되니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지만 실제로 피버 피치(앞선 문장을 조금은 정정해서 말한다면) 축구가 아닌 아스널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아스널에게 벗어날 수 없게 되었는지에 관한 그리고 아스널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깨닫게 된 소중한 교훈들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아스널 FC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이면서 우리들에게도 박주영이 잠시 몸담았던 팀으로 알려진 아스널은 지금은 대표적인 공격형 축구를 보여주고 있는 축구 클럽이기는 하지만 현재 감독인 아르센 뱅거 이전에는 수비 위주의 지루한 축구로 악명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꽤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기 때문에(언제나 중요한 순간에는 엉망진창의 경기력으로 경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고 닉 혼비는 말해주고 있다), 아스널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순전히 바보가 할법한 선택이고 그런 어쩔 수 없는 선택을(그가 선택했기 보다는 아스널에게 선택당한) 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처량하다는 듯-자부심을 갖고 하나씩 과거의 기억들을, 사랑의 과정들과 좌절의 경험들을 그리고 그런 수많은 좌절과 잠시 동안의 환희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들춰내며 아스널과 함께한 삶을 뒤돌아보고 있다.

 

축구가 갖고 있는 매력과 함께 그 축구가 갖고 있는 악랄함까지(‘고통으로서의 오락이라는 평가를 하게 될 정도로) 축구에 관한 모든 것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있는 피버 피치는 지나칠 정도로 아스널에 집착하는 자신의 괴로운-우울한 처지와 함께 아스널의 지루한 축구와 자신의 지루한 삶을 어떻게 접목시키는지, 들쭉날쭉한 아스널의 성적을 자신의 삶의 기복과 어떻게 맞물려 설명해내고 있는지, 그리고 단순히 아스널의 팬에서 머물지 않고 축구에 대해서 그리고 축구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적절한 판단력을 갖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내용들은 기나긴 시간을 무언가에 대해서 몰두하게 된다면 결국 어떤 통찰력을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 어쩌면 조금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만든다.

 

어리숙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성숙하지 못한 철부지-어른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고 성숙하게 되는지를,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운 변함의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한 피버 피치는 내면의 변화를 지독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한 소중한 고백록이기도 하지만 헤이젤 참사와 힐스브로 참사와 같은 영국 축구에 있어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사건들에 관한(인종차별과 그밖에도 여러 내용들도 함께 다뤄지고 있다) 생각을 후반부에 되도록 자세히 담아내 단순히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고 우승의 환희와 쓰디쓴 좌절만을 경험하는 것만이 아닌 축구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들고 축구를 이해하듯이 축구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그리고 축구에서 벗어나 삶에 관해서도 여러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아스널-축구) 팬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열혈 아스널 팬이 그동안의 아스널에 대한 애정에 대한 고백만이 아닌 축구와 삶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솔직하고 수다스럽게 자신의 과거와 경험, 기억과 추억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를 흔하지 않는 방식(지겨울 정도로 상세하게)으로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축구보다 더 축구다운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축구의 팬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피버 피치를 읽는다면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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