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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피치 - 개정판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평점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기간이라 (축구가 아닌)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한창인 상황 속에서(한국의 16강 좌절로 급격하게 열기는 꺼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욱 열정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좋은 축구를 보는 것이 우선이라...) 좀 더 유익한 책읽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닉 혼비의 ‘피버 피치’는 어쩌면 월드컵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월드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축구를 단순히 4년마다 즐기는 사람들에게 축구가 삶의 일부를 넘어선 그 무엇인 수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축구를 그리고 아스널을 접하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으며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넘어선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얘기를 꺼내게 되니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지만 실제로 ‘피버 피치’는 (앞선 문장을 조금은 정정해서 말한다면) 축구가 아닌 아스널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아스널에게 벗어날 수 없게 되었는지에 관한 그리고 아스널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깨닫게 된 소중한 교훈들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아스널 FC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이면서 우리들에게도 박주영이 잠시 몸담았던 팀으로 알려진 아스널은 지금은 대표적인 공격형 축구를 보여주고 있는 축구 클럽이기는 하지만 현재 감독인 아르센 뱅거 이전에는 수비 위주의 지루한 축구로 악명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꽤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기 때문에(언제나 중요한 순간에는 엉망진창의 경기력으로 경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고 닉 혼비는 말해주고 있다), 아스널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순전히 바보가 할법한 선택이고 그런 어쩔 수 없는 선택을(그가 선택했기 보다는 아스널에게 선택당한) 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처량하다는 듯-자부심을 갖고 하나씩 과거의 기억들을, 사랑의 과정들과 좌절의 경험들을 그리고 그런 수많은 좌절과 잠시 동안의 환희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들춰내며 아스널과 함께한 삶을 뒤돌아보고 있다.
축구가 갖고 있는 매력과 함께 그 축구가 갖고 있는 악랄함까지(‘고통으로서의 오락’이라는 평가를 하게 될 정도로) 축구에 관한 모든 것들을 하나씩 들춰내고 있는 ‘피버 피치’는 지나칠 정도로 아스널에 집착하는 자신의 괴로운-우울한 처지와 함께 아스널의 지루한 축구와 자신의 지루한 삶을 어떻게 접목시키는지, 들쭉날쭉한 아스널의 성적을 자신의 삶의 기복과 어떻게 맞물려 설명해내고 있는지, 그리고 단순히 아스널의 팬에서 머물지 않고 축구에 대해서 그리고 축구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적절한 판단력을 갖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내용들은 기나긴 시간을 무언가에 대해서 몰두하게 된다면 결국 어떤 통찰력을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 어쩌면 조금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만든다.
어리숙하고 어른이 되지 못한, 성숙하지 못한 철부지-어른아이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고 성숙하게 되는지를,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운 변함의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한 ‘피버 피치’는 내면의 변화를 지독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한 소중한 고백록이기도 하지만 헤이젤 참사와 힐스브로 참사와 같은 영국 축구에 있어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사건들에 관한(인종차별과 그밖에도 여러 내용들도 함께 다뤄지고 있다) 생각을 후반부에 되도록 자세히 담아내 단순히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고 우승의 환희와 쓰디쓴 좌절만을 경험하는 것만이 아닌 축구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들고 축구를 이해하듯이 축구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그리고 축구에서 벗어나 삶에 관해서도 여러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아스널-축구) 팬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열혈 아스널 팬이 그동안의 아스널에 대한 애정에 대한 고백만이 아닌 축구와 삶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에 대해서 솔직하고 수다스럽게 자신의 과거와 경험, 기억과 추억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를 흔하지 않는 방식(지겨울 정도로 상세하게)으로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축구보다 더 축구다운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축구의 팬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피버 피치’를 읽는다면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