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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탄생
필립 아리에스 지음, 문지영 옮김 / 새물결 / 2003년 9월
평점 :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영역을 통해서 중세를 바라보고 있고, 근대를 되돌아보고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자료로 취급하지도 않던 것들을 어떻게 하나의 시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지 새로운 깨우침을 안겨주고 있는 저작이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다시 말할 것이 없을 정도로 ‘아동의 탄생’은 단순히 중세에 대한 그리고 아동에 대한 역사책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와 인식의 변화, 심리의 변화와 체계가 어떻게 나타나고 분류가 어떻게 이뤄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필립 아리에스는 ‘아동’이라는 존재가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 보다는 ‘아동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이전 중세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함께 아동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이상할 정도로 높아지게 되었으며, 그 이행을 통해 두 존재가 부각되어가는 변화를 보였다고 부드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이라는 존재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들을 별도의 존재로 구분하지 않던 입장(중세)에서 특별한 존재로서 구분(근대)하고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고 양육하며 가족이라는 집단이 재구성되는지를 필립 아리에스는 수많은 사례들과 자료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이의 말대로(아마도 폴 벤느가 아닌가 싶다) 아리에스의 분석은 미셸 푸코의 계보학적 분석과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데, 아리에스의 분석은 보다 역사적인 분석이고 정치적 성격이 적은 대상에 대한 분석이라면, 푸코는 굉장히 정치적인 성향이 짙기 때문에 보다 다방면에 걸쳐서 논쟁적인 여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둘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보다 더 자세히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쉽게 생각해서는 푸코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서 일종의 철학적 혹은 정치적 폭탄을 만들려는 의도를 깔고 있었다면, 아리에스는 보다 학문적 입장에서만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켰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정치적인 성향 보다는 죽음, 삶 등 철학적 혹은 하나의 삶의 태도에 보다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아리에스는 아동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는지,
그들이 등장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새로운 분류체계와 구분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탐구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아동이라는 존재가 별도의 존재로 나타나게 되는지에 대한 원인을 다루지는 않고 있다. 다만, 서문에서는 각 시대마다 특징적인 세대가 나타난다고 말을 하고 있고, 부르주아 계급의 부각과 함께 계급적 구분이 드러남에 따라 아동 및 기타 구성이 더욱 확연한 구분이 이뤄지고 있다는 식의 방식으로 얘기를 한다.
푸코와 같이 ‘권력’이라는 추상적 대상 혹은 전략에 의해서 그러한 구분들이 이뤄지게 되었다는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타고난 역사가일 것이고, 하나의 사실들을 말하고 있을 뿐이고, 그 사실을 통해서 그의 통찰력을 논의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푸코는 거기에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제시한다. 그것이 둘의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어쩌면 필립 아리에스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 자체와 그 시대적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 그 과정에서의 원인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나 노베르트 엘리아스 식의 사회적 구별짓기[아비투스(Habitus)]에 대한 생각도 특별히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하고 있었다고 해도 언급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언뜻 그런 생각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더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아리에스는 다양한 자료와 분석을 토대로 아동의 등장 자체를 다각도로 분석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세대로서의 아동과 삶에 대한 시기적 구분
복장 변화를 통해서 바라보는 아동 등장
아동에 대한 지칭 또는 명칭의 등장을 통한 인식의 변화
다양한 놀이에 대한 시대적 분류와 그 놀이를 즐기는 집단으로서의 아동의 등장
귀여워하기의 대상으로서의 아동
도덕성 주입 대상으로서의 아동
학교의 등장과 세분화 그리고 그런 분절화에서의 아동
규율을 통한 규제와 도덕성 통제 그리고 그 대상으로서의 아동
매너의 등장으로 인한 아동에 대한 사회적 / 문화적 제재 및 교육의 등장
아리에스는 말 그대로 온갖 것들을 토대로 아동의 등장과 가족의 탄생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고, 그 분석을 통해서 중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리에스의 아동에 대한 이와 같은 풍부한 분석은 동시대의 그리고 이후 세대의 학자들에게 수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그의 글을 읽은 사람으로서 그의 글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이와 같은 논의가 없었다면 과연 아날 학파는 지금보다 더 풍부해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필립 아리에스 없이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있었을까?
물론, 완전무결한 분석은 없듯이 아리에스의 아동에 대한 분석도 아날 학파와 기타 비판자들의 비판이 뒤따르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아리에스의 반박도 정당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비판의 중심인 실제로 과거에는 아동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가에 대한 논의) 아동에 대한 관심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떠나서 관심이 근대로 이행되며 얼마나 더 높아졌고 집중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단순히 아동의 탄생만이 아니라 언어, 체계, 구분, 분류, 교육, 예절, 가족 등 하나의 특정 대상의 등장이 그로 인해서 관련된 수많은 것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탁월한 저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