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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ㅣ 나남신서 72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읽어내는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각오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고,
어렵다기 보다는 난해했다.
어쨌든 다 읽어냈어도 도대체 뭘 읽었는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그의 철학적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저서이며, 그의 다양한 문제의식의 원형을 혹은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차근차근히 관심의 흐름을 보여주게 되는지를 예측할 수 있을 기념비적인 저서일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평가에 대해서 딱히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리라 생각되고, 이미 다각도의 검토가 이뤄진 푸코이기 때문에 ‘광기의 역사’에 대해서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그렇게 담겨져 있는 논의들의 주요 내용과 논의를 통해서 나타난 수많은 쟁점과 논쟁들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혹은 찾아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며, 알고 싶은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점점 더 읽혀지기 보다는 읊어지게 되어만 갈 것이다.
중세 시대에서 시작해서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고전주의 시대까지의 기간 동안
‘광인 / 광기’를 통해서 어떻게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하나의 ‘정신적 질환과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다양한 의도에 따라 받아들이게 되고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왜곡된 인상과 관심 속에서 ‘광인 / 광기’를 대하게 되는지를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는 ‘광기의 역사’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리와 진실과는 매우 다른, 실제 일어났고 벌어졌던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던 하나의 인식의 변화를 두텁고 복잡하게 논의하고 있다.
푸코의 논의는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문학적이고 풍부한 표현이라고 말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고 현란한 표현들 때문에 읽던 도중에 무엇을 읽고 있는지 헷갈리게 될 정도로 산만함을 느끼고 있었고, 이번도 마찬가지로 가뜩이나 난해한 논의를 양파껍질도 아닌데 실컷 벗겨내도 핵심에 다가가는 느낌이 들지 않고 모호하기만 했고, 해답 없는 수수께끼처럼 뭔가 풀어내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기 보다는 새로운 문제 앞에 놓이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풍부한 표현과 다채로운 분석을 통해서 보다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고 했던 의도이지는 않았을까? 어쨌든 푸코의 ‘광기’를 통해서 엿보는 사회적 그리고 개인의 심리의 변화와 함께 사회의 변화와 분류 / 체계화 그리고 분할 등 그가 ‘광기의 역사’에서 다룬 수많은 논의들은 하나의 작품 속에서 논의되고 있으면서도 이후의 그의 문제의식이 이 논의들에서 어떤 변화와 적극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는지를 생각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읽어가는 과정이 더욱 더디고 괴로울 것이다.
푸코는 중세 시대의 배제의 근원인 ‘나병’이 갑작스럽게 잠잠하게 되어가면서 새로운 배제의 대상으로 ‘광기’가 부상하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검토하고 ‘광기’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 변화를 보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해서 발생되는 ‘배제’의 대상이 되는 ‘광기’의 정의와 기준 그리고 그 정의 및 기준의 변화와 ‘광기’라는 것 자체가 갖고 있는 모호함으로 인하여 그 대상이 어떻게 부랑자 및 실업자 그리고 통틀어 비이성자 혹은 비행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의 규칙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까지 ‘광기와 광인’의 대상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그렇게 분류에 포함되었다가 어떤 사유로 제외되었는지를 논의하며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 대상이 그리고 정의와 기준이 변하고 그 정의와 대상과 기준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방식 말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광기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항상 그랬지만 자신의 논의를 쉽고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게 글을 써내기 보다는 복잡하고 아리송하게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논의 자체를 이해하기에도 벅찬 인물이고, 이해를 할 것 같다는 느낌만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광기’를 통해서 일종의 정상과 비정상의 분할선이 형성되고, 그 분할선 혹은 경계선의 변화와 함께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비정상에 대한 사회적인 입장과 입장에 따른 대응을 보이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대응의 변화를 분석하며 푸코는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에서 보여주었던 ‘광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 당시에는 확연한 분할이 이뤄지지 않던 구조에서 어떻게 뚜렷한 분할과 경계가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 뚜렷한 선긋기로 인해서 ‘광기와 광인’이 때로는 더욱 모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세밀하게 분류되기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광기 그리고 광인’이라는 대상과 정의가 얼마나 그 시대적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화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광기’를 통해서 생산되는 인식구조의 변화와 지식체계의 형성 그리고 정신의학 등 하나의 지식의 생산과 함께 그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가부장적 성격 그리고 다양한 함의에서 하나의 함의로 논의가 축소되는 과정까지 푸코는 단순하게 생각되었던 그리고 그동안 어둠 뒤에 가려지고 있던 ‘광기와 광인’을 통해서 그 어둠을 들춰내고, 그 폭로로 인해서 우리가 그리고 근대성과 이성이 감춰두고 밀어내고 있었던 수많은 어둠을 바라보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광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안에 대한 변화 속에서 대감호가 어떻게 고전주의 시대에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광기와 광인’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와 별다른 차이 없이 보았던 ‘빈곤’과 ‘범죄’가 그 경제적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 윤리적 / 의학적 관념의 변화와 등장 속에서 기존의 ‘광기와 광인’과는 별도의 존재와 의미로 취급되고 시각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결국, 푸코는 어떤 의미에서 ‘광기’를 ‘광기’로서 바라보기 보다는 항상 시대의 한계와 관심 속에서 ‘광기’를 바라봄으로써 ‘광기’가 오해가 되고 왜곡되기만 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왜곡에서만 존재했던 ‘광기와 광인’들이 어떤 관심과 오해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왜곡으로 인해서 그들이 얼마나 고통과 배제를 겪었는지 바라보고 있다. 즉, ‘광기와 광인’에 대해서 뚜렷한 정의와 기준 그리고 대상을 파악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광기와 광인’이 어떻게 에워싸이고 포위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으며, 그 둘러쌈과 정의내림 그리고 하나의 사회적 틀에 끼워 맞춰지며 단 한번도 광기가 광기로서 다뤄지지 못했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감시와 처벌’이 감옥이라는 배제의 공간을 통해서 어떻게 사회가 그리고 주체가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논의하는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면, ‘광기의 역사’는 그 공간과 사회적 틀에 어떤 존재들이 채워졌었는지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널리 알려진 저작이기도 하고,
난해함으로 악명 높기도 하기 때문에 읽어내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읽어서 큰 기대 없이 보았고, 그 기대 없는 읽음으로 인해서인지 읽어가며 보다 많은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다. 물론, 워낙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간신히 읽었다는 기분만 들지 뭘 어떻게 읽었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 얼마나 잘 파악했는지에 대한 자신도 없다.
지나치게 무더운 여름에 이걸 읽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모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 : 간신히 다 읽었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