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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다양한 주제를 갖고 자신만의 글쓰기와 생각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빼어난 능력을 보이는 알랭 드 보통은 무언가에 대해서 좋은 정돈과 흥미로운 내용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동안 다뤘던 여러 주제들(사랑, 건축, 불안, 여행 등)은 무언가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들거나 독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각각의 주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요 논의들을 쉽고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어쩐지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함께 알고 싶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글쓰기의 모범 중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은 어쩐지 그동안의 알랭 드 보통의 글이 보여주었던 여러 장점들이 무엇도 제대로 발휘되지가 않는, 그의 글답지 않게 도통 흥미롭게 읽혀지지가 않고 솜씨 있게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논의를 못하고 있는데, 어쩐지 이런 실패가 그의 글이 예전만 못해졌기 보다는 선택한 주제로 인해서 그의 글의 매력을 보여주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해보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다양한 직업을 통해서 혹은 일-노동-업무를 통해서 자본주의 근대사회 혹은 지금 이후의 사회에서의 삶을 엿보려고 하는 듯이 보이는데, 그는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인 화물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고, 이어서 물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이 얼마만큼 복잡하게 이어져 있으며 거대함으로써 다가오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비스킷과 관련된 지루한 논의를 통해 얼마나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되기만 하는 비스킷과 그와 관련된 다양한 것들이 오직 돈이라는 이유를 통해서 엄숙과 진지함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런 설명과 함께 그곳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일-노동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을지를, 어떤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있고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의미와 동기부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만 알랭 드 보통은 항상 그렇듯 현실적인 논의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데, 비스킷에 대해서 논의에서도 비스킷을 만들고 판다는 것이 어쩌면 별 것 아니기는 하지만 그 별 것 아님으로 인해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살아감이 가능하지 않았을 때의 경우(실업률, 범죄율, 자살률 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런 점이야 말로 자본주의 사회가 혹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의 특이성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이라는 문장을 통해서 그가 일을 통한 기쁨과 슬픔보다 그것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현재의 세상이 어떤 구성과 구조를 갖고 있는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비스킷에 대한 논의 후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은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최초의 시대로서 지금-현재를 정의하고, 일에 대한 고귀함을 찬양하기 시작한 백과사전파에 대한 간단한 논의 후 직업 상담가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무관심한지를 그리고 “비관주의적 자부심”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그저 주어진 현재의 조건 속에서만 삶을 꾸려나가려고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기도 해서 조금은 혼란스러운데, 그가 이 시대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인지 그저 일-노동이라는 주제 속에서 무언가를 모색하려고 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읽혀지지가 않고 있다.
이런 헷갈림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로켓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시대가 천재들의 시대에서 집단의 시대로 변화되었음을 말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 “기술적 숭고함의 시대”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하는 등 그 스스로도 무엇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인지를 좀처럼 정리하지 못하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처럼 일-노동에 대해서 어떤 명확함을 찾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 그 자신이) 경험한 사례들을 통해서 이해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접근과 이해가 얼마나 일-노동에 대해서 적절한 분석으로 이어졌는지는 무척 의문스럽게 느껴진다.
송전 공학에 대한 글에서 드러나듯이 알랭 드 보통은 기존의 글들에 비해서는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려고 하고 있고, 논의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게 정리하질 못하고 있고, 어떤 흥미로움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게 될 뿐이다.
이는 일상과 회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쩐지 알랭 드 보통은 르포르타주와 같이 현장취재를 통한 무언가를 담아내려는 듯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우리들이 자주 말하게 되는 밥벌어먹기의 피곤함에 대해서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는 의문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알랭 드 보통의 글쓰기가 여전한 효과를 발휘할 때는 그런 경험 / 체험을 통한 글이 아닌 (경험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스스로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때였는데, 그런 글들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크게 차지하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극히 부분적이기 때문에) 마치 섬광과 같이 순간적으로만 그의 빼어남이 번쩍거리고만 있다.
창업자에 대한 논의를 우겨넣은 다음 항공 산업에 대한 글을 통해서 알랭 드 보통의 여전한 매력적인 글쓰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낡고 오래되어 모하비 사막에 버려진 항공기들의 잔해물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18세기 독일인들이 이탈리아의 고대 로마의 풍경에 황홀해 했다는 ‘폐허에서의 기쁨’이라는 표현과 유사한-동일한 감정으로서 이해하면서 이런 이해를 통해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를 이해하는 내용을 통해서야 알랭 드 보통의 이전과 같은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 사회가 과거와는 전혀 달라졌다는 것을 어떠한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라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어 설명하려고 하고 있고, 이로 인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일-노동이 어떠한 영속성도 갖지 못하고 끊임없이 불안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고, 이런 이해는 어쩐지 이전에 그가 발표했던 ‘불안’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는데, 아쉽게도 그가 ‘불안’에서 어떤 논의를 했었는지 잊게 된지가 오래되어서 어떤 방식으로 연결시켜서 접근할 수 있을지는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알랭 드 보통의 논의에서 폐허에서의 기쁨에 대한 과거의 정의를 그와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데, 지금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어떤 폐허로 변해가는 과정을 바라봄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시대가 해내지 못하는 동기부여가 이 시대의 잔해물인 우리 자신들이 하나의 폐허처럼 혹은 폐품과 같은 존재들로서 알게 모르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일을 통한 어떠한 기쁨도 그리고 동기부여도 부족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상적인 글쓰기를 하다 느닷없이 일-노동을 긍정하고 우리에게 안겨주는 “품위 있는 피로”를 존중해야만 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결론은 조금은 뜬금없는 것 같고, 이런 결론이 어쩐지 그가 이미 결론을 내린 다음에 여러 논의들이 이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도 항상 타협하듯이 혹은 지금을 어떤 식으로든 긍정하듯이 결론내리는 알랭 드 보통이었기 때문에 약간은 예상하기도 했지만 그가 논의하던 여러 내용들과 그가 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해서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이처럼 서투른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이 얼마나 일-노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가 얼마나 그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같은 글을 통해서 먹고 살지 못하고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으로서는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고 간간히 날카로움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가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서 제대로 읽혀지지가 않는 것 같고,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무언가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자신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알려고 하다가 결국 그 시도가 실패하는 과정으로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언가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얼마나 고민이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물론, 일-노동에 대한 글에 대한 또다른 글인 내 글에 대해서도 이런 비판은 당연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부족한 이해만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알랭 드 보통의 글로서는 어떤 식으로도 일에 대한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