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에 장문의 편지가 왔어요. 그러니 나도 진지하게 답할 수 밖에 없었지요. 젊은 심리학도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내일이면 2022년입니다. 내년에도 이 마믐 저에게 나누어 보렵니다. 


편지 잘 받았어요.

정성스러운 편지에 자세를 가다듬고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노트북을 켭니다.

 

실상 하룻밤 잤다고 뭐 별다른 일이야 있겠냐만은, 마음속에 새 출발, 새 희망이라는 글자와 함께, 기대하게 만드는 게 새해가 아닌가 싶네요.

 

우선, 실습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일을 그리 세세하게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 보니, 잘해주지 못한 것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당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학생, 존재였습니다. 덕분에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방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의 2020년은 마음속 싸움의 연속이었지 싶습니다. 내 마음이 내 것 같지 않고, 내가 나를 홀대하는 것에 대해 마음 놓지 못하고 보낸 것 같아요. 누구나 앞을 향해 가기 바빠서, 눈앞의 즐거움에 빠져서, 그런저런 이유로 스스로에게 무례해지는 경우가 많지요. 나도 나를 돌보지 않고, 현실의 무게에만 허우적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네요. 나를 지켜봐 주고 감사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나름 의미를 갖고 살았다는 것일테니까요. 당신의 2020년은 어땠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시간이었을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이 보내는 장문의 편지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냥 갑자기 외로울 때, 어디엔가 무언가를 나누고 싶을 때, 용건 없이 쓰는 편지... 좋습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요.

 

2021년에 행복00이가 되길 바래요.

 

ㅁ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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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의 생활은 이렇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때에도 나는 누군가와 함께다.

사무실에서는 누군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서재에서는 가족이 신호 없이 들어온다. 책을 읽어도 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번잡하게 읽은 지 오래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때에도 항상 남을 주시하며 산다.

 

진실로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라는 것은 혼자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혼자 있다는 건 남과 함께 있어도 나를 느낌을 의미한다.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것은 항상 누군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내 안의 나를 만나야, 비로소 만질 수 있다.

그리하여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때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가 아무와 나의 경계에 있다.

나의 생활은 이렇다.


:: 이 글은 12월 둘째주 일요일,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는데 10분 글쓰기를 하다가 나온 주제예요.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의 너머를 짧게 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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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 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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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수영장

안녕달

 

.. ... ....

 

할머니의 휴가를 읽고 봤다.

 

....

 

수박 수영장에서 노는 게, 그게 뭐... 뭐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재미라는 걸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부정적인 것은 크게 느끼고, 긍정적인 것은 그저그런 것으로 여기고 만지 꽤 오래됐다. 노는거? 재미있잖아.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노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된 내가 이 책을 알 리가 없지.

 

재미있니?

재미있었니?

 

이라고 말하기 위해 연습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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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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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ril Bookclub

2021년 12월 15일 수요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제목이 내 삶을 직시하게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밤은 부드러워라]의 다른 버전을 읽는 것 같았다. 이야기 속에서 흘러가는 파멸의 기운이 닮아 있었다. 의사 토마시는 이혼했다. 여성 편력이 있어 매일 여러 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삶을 오랜 시간 해 왔다. 그리고 테레자를 만났고, 결혼했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테레자를 만나기 전부터 관계를 맺어오던 사비나는 그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프란츠라는 유부남을 만난다. 그가 사비나와 결혼을 생각하자 떠난다.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 생활하는 동안 삶의 바닥으로 떨어져 나간다. 의사였던 토마시는 창문닦는 일, 운전하는 일을 하고, 죽음으로 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나마의 힘도 상실했으며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버텨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어둠은 무한성이 아니라 다만 그녀가 보는 것과의 불화, 보이는 것에 대한 부정, 보는 것의 거부만을 의미했다. 그는 집을 뛰쳐나와 거리로 나서듯 그의 삶으로부터 나오고 싶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해, 눈이 있던 자리엔 구멍만 있어.] 이 말이 이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보여준다. 우리가 가진 눈으로 우리는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why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저 그 자리에 구멍만 있는 것은 아닌 채 가상의 숨만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 인물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문장, 그리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근본적이며 인간적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유에서 태어난다. 작가가 자신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독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의 몸이 아니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 혹은 핵심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모든 침공은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악을 은폐한다. 이 악의 이미지는 팔을 치켜들고 입을 맞춰 똑같은 단어를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대열이었다. 그녀가 추하게 보려고 한다면 추한 것이고 예쁘게 보면 예쁘다는, 그런 식이었다. 아름다움이란 배반당한 세계.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마음의 다독임을 절실히 갈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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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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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이제 나는 서른아홉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산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낯선 곤충의 껍질처럼 무감각해졌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는 어둠 속에서 멀리 불빛이 보일 때다.

 

누구도 믿을 수 없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그해,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동안 내가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그제야 가을 햇살이 무척 노랗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삶이라는 건 직선의 단순한 길이 아니라 곡선의 복잡한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때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 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시야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소리내 읽다 보면 입에서 향기가 날 것 같다. 햇살을 받은 이파리들은 초록색 그늘을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웠고 바람에 따라 그 그늘이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금방이라도 초록색 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 내가 가진 기대 중 가장 큰 기대는 그런 모습이었다. 탐스런 초록색으로 물든 들판이 좌우로 펼쳐졌다. 그리고 내 머릿속으로는 어릴 적 일들이 떠올랐다.

 

나의 첫 번째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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