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힘

 

"지하 1층입니다."

 자동문이 열리고, 내 파란 모닝차로 다가갔다. 차에 타며, ‘맞다. 기름이 별로없지? 어떡하지? 다음까지 버틸까?’ 고민하다가 출근길보다 조금 더 돌아가야 있는 주유소에 당도했다. 조금 더 돌아가야 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지난번 이 주유소의 불친절한 말투와 가득 주유를 하고 휴지 하나만 달라고 하자, 나를 무슨 도둑으로 보듯이 째려보며, “저희는 그런 거 없습니다”라고 말하던 것이 생각나, 이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그래도 근처에 하나밖에 없는 곳이라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더 불쾌한 것이리라. 주유소에 도착하자, 역시나 내 차를 툭툭 두드리며 안내를 하더니, “그만!”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보라지.

더욱이 “3만원이요~”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차 주유구에는 기름이 이제 막 들어가고 있건만, “계산부터 해드릴게요”하더니, 이미 기름이 다 들어갔다는 계산서가 내 손에 먼저 쥐어진다. 그리고 조금 뒤 주유구 뚜껑도 닫지 않은 채, 다 됐다며 내 차를 두드린다.

물론, 물건을 사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치에 맞는 일이기는 하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문방구로 하겠다. 자, 연필, 볼펜을 고르고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온다. 그렇다. 물건을 고르고, 돈을 지불해야 그 물건을 내 손에 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 보통 주유소에서는 어떠한가. 리터에 해당하는 만큼 기름이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돈을 지불하지 않는가? 왜? 은연중에 이 주유소가 나를 속이고 기름을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의 눈을 하고 바라보게 되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고, 실제로 속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가 되리라. 그렇게 분하다. 한마디도 못하다니. 생각하는데, 주유소에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저희는 고객님에게 속이지 않는 다는 플랭~카드가 나를 더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게 했다. 이 눔의 주유소.

또 그렇게 다신 가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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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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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글들이다.

예전에 내가 박완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데, 그 글들을 읽지 않을 수 없는 나 자신에, 그렇게 글을 잘 쓰는 그녀에게 화가 난다고 썼던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이가 든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는 것.

내가 늙음을 인정하지 않는 소설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것.

 

나에게도 나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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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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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켠에 있던 책. 그러다가 차에 있기도 하고, 사무실에 있기도 했던 책.

신경숙의 짧은 소설 한권을 읽고나서 다시 집어든 책.

그리고 감정이 복받쳐, 계속 울어대느라, 몇날 며칠을 붙들고 있었던 책.

내가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나보다.

 

소설의 내용은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지고, 가족들이 모여 엄마를 찾으면서 그 가족의 히스토리를 가족 구성원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글이다.

신경숙. 참. 잘 쓴다.

읽고 나선, 이 책을 잡기가 무서워지리라.

 

박완서의 글들도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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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로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는 대학원 생활에서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전공인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위축되는 나를 보면서 옳다구나 하며 덤벼들었다. 비단 학교폭력이 청소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특히 곪아있고, 폐쇄되어 있는 곳일수록.

얼마 전 그렇게 나의 피 맛을 보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선물을 샀다. 그리곤 방어였는지 두려움이었는지, 한동안 전하지 못하고 방 한 켠에 방치했더랬다. 그러다가 편지지를 사서, 한 장씩 써내려 가는데, 참으로도 쓸 말이 없었다. 손바닥만한 편지지 한 장에 이리도 쓸 말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씁쓸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동물 중 희생양의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기라도 하듯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는 말을 써내려가는 내 손을 보면서, ‘그래도 나도 나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동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를 보면서 그들은 지금.. 그래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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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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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예감

요시모토바나나

 

요시모토바나나, 츠지히토나리, 에쿠니 가오리.

20대 초반 이들의 소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때가 있었다.

30대에 접어든 요즘 다시 슬픈 예감을 집어 들었다.

 

얼마 전 친구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사람들은 왜 읽은 책을 또 읽는지 모르겠다는 내 입장과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것이 있고, 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친구의 입장.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얼마 전 나는, 잊혀져서 다시 읽으니 새롭게 되더라는 나의 달라진 입장.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만은 않은 요시모토바나나의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비가 내렸고, 30분 정도 멍하니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전을 부쳤는데, 참, 맛이 없다.

 

기억의 저편에 머물고 있는 나와 기억을 끌어올리고 어쩌면 다시 시작해야할 나의 인생의 시작을 보여주는 ‘슬픈 예감’은 어쩌면 나와도 맞물려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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